하나의 골목을 온전히 마음에 품을 수 있도록, 그 안의 모든 서사를 단 한 편의 에세이로 엮어내는 메인 콘텐츠입니다.
봉래산이 바다로 뚝 떨어지는 그 끝에서 마을이 시작된다. 일흔 해 전에는 피할 곳이 없어 멈춰 선 자리였고, 지금은 사람들이 일부러
조선의 사신이 묵던 집 뒤편 골목이, 서울의 한 동네 이름을 빌려 쓰며 전주에서 가장 젊은 거리가 되었다. 재개발로 묶여 있던 10년
시청이 떠난 뒤 한동안 이 거리는 불이 꺼진 채였다. 그 자리를 다시 채운 것은 관공서가 아니라 작업실 스물일곱 개였다.
속초관광수산시장 안쪽, 닭을 팔던 좁은 통로 하나가 고속도로 하나와 방송 한 번을 지나며 전국이 줄을 서는 골목이 됐다. 그런데도 머
법정동 이름이 있고, 행정이 붙인 사업명이 있고, 몇 해 전부터 사람들 입에 붙은 애칭이 있다. 순천 원도심의 이 거리는 같은 골목을
안산역을 나서 몇 블록만 걸으면 한글 간판이 드물어진다. 이 거리가 지금의 얼굴을 갖게 된 데에는, 공장이 사람을 불러들이고 외환위기
대형마트에 밀리고 화재와 외환위기까지 겹쳐 발길이 끊겼던 원주중앙시장 2층. 2016년, 그 막막한 공간에 청년들이 들어와 길을 냈다
원도심을 살리겠다는 공약이 발표되자 동네가 술렁였다. 그런데 그 공약이 말하는 풍경은, 이 거리 안에서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진행 중
한때 이 고개는 '청년창업의 신화'라 불렸다. 지금은 그 신화를 쓴 간판 옆에 임대 문의 전화번호가 붙는다. 같은 거리에서 벌어지는
서른 곳 가까운 간판이 전부 찜닭을 판다. 메뉴판까지 비슷하게 맞춰놓고도 이 골목이 싸우지 않는 이유는, 각자 솥 안에서 조금씩 다른
지도 앱에 '전포카페거리'를 치면 바로 옆에 '전포공구거리'라는 이름이 함께 뜬다. 간판을 모두 커피로 바꾸지 못한 이 골목의 현재.
빈 점포를 공방으로 채운 지 십 년이 넘었다. 그런데 이 골목을 어릴 때부터 다닌 사람들은 요즘도 같은 말을 한다. 사람이 줄고, 빈
60년 된 중국집 간판과 이제 막 내건 로스터리 간판이 같은 골목, 같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본다. 화교거리라 불리던 자리에 커
슬로시티로 지정된 지 열아홉 해. 이 마을의 주말은 이제 카페 웨이팅으로 채워진다. 국밥집은 간판 색으로 손님을 가른다.
카페거리라는 이름이 붙기 한참 전부터 이 골목에는 철물을 두드리고 유기그릇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간판이 바뀌는 속도가 빨라진 지금
2016년, 비어 있던 점포마다 청년 상인이 들어서며 이 시장은 전통시장 재생의 모범 사례로 불렸다. 열 해가 지난 지금, 이 거리에
주민들이 아직 그 계단으로 장을 보러 다니는 동안, 바다를 면한 창문들은 하나둘 커피값을 받는 자리로 바뀌었다.
2016년, 재개발구역이 풀린 이 골목에 처음 들어선 것은 카페와 빵집이었다. 그런데 요즘 이 골목의 기록을 찾아보면 안주와 야장,
큰길로 나가면 전국 어디서나 보던 브랜드가 줄을 섰다. 골목 안쪽으로 몇 걸음만 들어가면, 월세를 나눠 내며 자리를 지키는 손들이 있
만석이냐 중앙이냐, 아니면 TV에 나왔다는 그 집이냐. 닭전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같은 선택 앞에 선다. 좁은 통로 하나에 간판
문화예술업종을 들이려고 담장을 새로 바른 거리다. 그런데 지금 이 거리에서 가장 먼저 자리가 차는 건 한옥을 고친 카페와, 줄을 서야
다섯 집 중 넷이 외국어 간판을 단 거리에서, 삼십 년 가까이 같은 자리를 지키는 한식집이 있다. 특구 안의 주민 다섯 명 가운데 넷
2017년 73개의 불이 한꺼번에 켜졌던 미로시장 2층. 2025년 지금 그 불은 17개만 남았다. 그런데 매출이 꾸준히 줄기만 한
낮의 거리와 밤의 거리는 같은 길을 걷고도 전혀 다른 곳을 다녀온 것 같다. 명동거리는 해가 넘어가는 그 짧은 시간에 완전히 다른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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