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6 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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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춘천 육림고개) 간판이 바뀌는 속도

한때 이 고개는 '청년창업의 신화'라 불렸다. 지금은 그 신화를 쓴 간판 옆에 임대 문의 전화번호가 붙는다. 같은 거리에서 벌어지는 두 가지 속도.

글
alleymag.
발행
2026.10.05
골목
춘천 육림고개
간판이 바뀌는 속도
Artwork by alleymag.

2006년 극장이 문을 닫은 뒤, 육림고개는 한동안 춘천 사람들에게도 잊힌 고개였다. 그 고개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춘천시가 고개 일부 구간에 막걸리를 파는 가게들을 모아 특화거리를 조성하면서, 재생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017년부터는 더 큰 사업이 포개졌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청년몰 조성사업과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함께 들어왔다. 두 사업을 합쳐 217억 규모의 돈이 2021년까지 이 고개에 흘러들었고, 빈 점포마다 청년 상인들의 간판이 새로 걸렸다. 수제 에이드를 파는 카페, 손으로 만든 액세서리를 파는 소품샵, 한방차를 내는 작은 찻집. 극장이 떠난 자리를 이번에는 가게 수십 곳이 채웠다.

Artwork by alleymag.

효과는 분명했다. 한동안 이 거리는 '청년창업의 신화'라 불렸다. 춘천의 핫플레이스라는 말도 따라붙었다. 저녁이면 플리마켓이 열렸고, 사람들은 골목 사이사이를 걸으며 소품샵을 구경하고 수제 에이드 한 잔을 손에 들었다. 극장이 사라진 뒤 조용하던 고개가, 이번에는 청년들의 가게로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런데 그 소란이 오래가지 않았다. 신화라는 말이 붙을수록 건물주들도 그 소문을 들었다. 임대료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어렵게 자리를 잡은 청년 상인들은 그 인상분을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둘 거리를 떠났다. 한 사람이 떠난 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신화라 불리던 거리에, 이번에는 빈 점포라는 말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Artwork by alleymag.

지금 이 고개를 걸으면 두 가지 속도가 동시에 보인다. 어느 가게는 어제 문을 연 것처럼 간판이 반짝이고, 바로 옆 가게는 셔터가 내려간 채 상가 임대라고 적힌 종이만 창에 붙어 있다.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인 빈 점포 안으로 들여다보면, 뜯어낸 마감재와 공구 상자가 어수선하게 놓여 있다. 누군가는 이제 막 짐을 들였고, 누군가는 이제 막 짐을 뺐다.

흥미로운 것은 이 들고 남의 흐름 속에서도 꿈쩍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가게들이 있다는 점이다. 극장이 있던 시절부터,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이 고개에서 국수를 삶아온 노포가 그렇다. 방송에 소개된 적도 있다는 이 집은 날마다 면을 받아다 봉지에 나눠 담는다. 청년몰이 생기기도 전부터, 청년몰이 흔들리는 지금도, 이 가게의 하루는 크게 다르지 않다.

Artwork by alleymag.

청년몰이 들어오기 전에도 이 가게는 있었고, 청년 상인들이 떠난 뒤에도 이 가게는 남을 가능성이 크다. 신화도 아니고 침체도 아닌, 그저 매일 면을 삶는 일로 버텨온 시간이다. 새로 걸리는 간판과 오래 걸려 있던 간판이 같은 골목에서 마주친다는 것. 어쩌면 이 고개의 진짜 저력은 화제가 된 신화보다, 화제가 되지 않고도 버텨낸 이 평범한 지속에 더 가까이 있는지도 모른다.

극장이 떠난 자리를 청년들이 채웠고, 청년들이 떠난 자리는 아직 다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 사이에서도 면을 삶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이 고개의 간판은 앞으로도 몇 번은 더 바뀔 것이다. 다만 바뀌는 속도와 바뀌지 않는 속도가, 같은 길 위에서 나란히 걷고 있다는 사실만은 지금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새로 걸린 간판들
skywings95가 육림고개를 걸으며 찍은 간판들입니다. 노란 차양을 두른 케이크 가게와, 벽돌 건물에 금빛 글자를 붙인 수공예 소품샵이 몇 걸음 간격으로 서 있습니다.skywings95가 육림고개를 걸으며 찍은 간판들입니다. 노란 차양을 두른 케이크 가게와, 벽돌 건물에 금빛 글자를 붙인 수공예 소품샵이 몇 걸음 간격으로 서 있습니다.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죽림동 · 2026.06 / 사진 skywings95 · https://blog.naver.com/skywings95/224313563010 skywings95가 육림고개를 걸으며 찍은 간판들입니다. 노란 차양을 두른 케이크 가게와, 벽돌 건물에 금빛 글자를 붙인 수공예 소품샵이 몇 걸음 간격으로 서 있습니다. 청년몰 사업으로 새로 들어선 가게들이 이런 모습입니다.
SCENE 02 : 비어 있다는 안내문
kimnayeon151이 찍은 상가 임대 안내문입니다. 하얀 벽에 붙은 파란 현수막에 부동산 전화번호가 적혀 있습니다. 청년창업의 신화라 불리던 거리에,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죽림동 · 2026.04 / 사진 kimnayeon151 · https://blog.naver.com/kimnayeon151/224255530452 kimnayeon151이 찍은 상가 임대 안내문입니다. 하얀 벽에 붙은 파란 현수막에 부동산 전화번호가 적혀 있습니다. 청년창업의 신화라 불리던 거리에, 이제는 이런 안내문도 드물지 않게 보입니다.
SCENE 03 : 닫히고, 비워지고
같은 날 skywings95가 지나친 두 가게입니다. 하나는 안내 표시와 함께 새 단장 중인 듯 닫혀 있고,같은 날 skywings95가 지나친 두 가게입니다. 하나는 안내 표시와 함께 새 단장 중인 듯 닫혀 있고,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죽림동 · 2026.06 / 사진 skywings95 · https://blog.naver.com/skywings95/224313563010 같은 날 skywings95가 지나친 두 가게입니다. 하나는 안내 표시와 함께 새 단장 중인 듯 닫혀 있고, 다른 하나는 안쪽 집기까지 비운 채 '일반음식점' 스티커만 유리문에 남아 있었습니다. 간판이 바뀌는 중이라는 말이 눈앞의 풍경으로 와닿습니다.
SCENE 04 : 그래도 그 자리를
suhjiye가 들른 올챙이국수 노포입니다. 낡은 철문에 방송 출연 스티커가 붙어 있고, 가게 앞 테이블에는 그날 뽑은 면이 봉지마다 나뉘어 쌓여 있었습니다.suhjiye가 들른 올챙이국수 노포입니다. 낡은 철문에 방송 출연 스티커가 붙어 있고, 가게 앞 테이블에는 그날 뽑은 면이 봉지마다 나뉘어 쌓여 있었습니다.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중앙로77번길 38 · 2026.05 / 사진 suhjiye · https://blog.naver.com/suhjiye/224284568441 suhjiye가 들른 올챙이국수 노포입니다. 낡은 철문에 방송 출연 스티커가 붙어 있고, 가게 앞 테이블에는 그날 뽑은 면이 봉지마다 나뉘어 쌓여 있었습니다. 청년몰의 들고 남과 상관없이 이 집의 하루는 면을 삶는 일로 채워집니다.
이 글은 2026년 춘천 육림고개 일대에 올라온 네이버 블로그 방문 기록과, 청년몰 조성사업·도시재생사업을 다룬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사실이 있으면 내용을 갱신합니다.
육림고개춘천청년몰죽림동앨리매거진alleym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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