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육림고개) 간판이 바뀌는 속도
한때 이 고개는 '청년창업의 신화'라 불렸다. 지금은 그 신화를 쓴 간판 옆에 임대 문의 전화번호가 붙는다. 같은 거리에서 벌어지는 두 가지 속도.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춘천 육림고개

2006년 극장이 문을 닫은 뒤, 육림고개는 한동안 춘천 사람들에게도 잊힌 고개였다. 그 고개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춘천시가 고개 일부 구간에 막걸리를 파는 가게들을 모아 특화거리를 조성하면서, 재생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017년부터는 더 큰 사업이 포개졌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청년몰 조성사업과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함께 들어왔다. 두 사업을 합쳐 217억 규모의 돈이 2021년까지 이 고개에 흘러들었고, 빈 점포마다 청년 상인들의 간판이 새로 걸렸다. 수제 에이드를 파는 카페, 손으로 만든 액세서리를 파는 소품샵, 한방차를 내는 작은 찻집. 극장이 떠난 자리를 이번에는 가게 수십 곳이 채웠다.

효과는 분명했다. 한동안 이 거리는 '청년창업의 신화'라 불렸다. 춘천의 핫플레이스라는 말도 따라붙었다. 저녁이면 플리마켓이 열렸고, 사람들은 골목 사이사이를 걸으며 소품샵을 구경하고 수제 에이드 한 잔을 손에 들었다. 극장이 사라진 뒤 조용하던 고개가, 이번에는 청년들의 가게로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런데 그 소란이 오래가지 않았다. 신화라는 말이 붙을수록 건물주들도 그 소문을 들었다. 임대료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어렵게 자리를 잡은 청년 상인들은 그 인상분을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둘 거리를 떠났다. 한 사람이 떠난 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신화라 불리던 거리에, 이번에는 빈 점포라는 말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지금 이 고개를 걸으면 두 가지 속도가 동시에 보인다. 어느 가게는 어제 문을 연 것처럼 간판이 반짝이고, 바로 옆 가게는 셔터가 내려간 채 상가 임대라고 적힌 종이만 창에 붙어 있다.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인 빈 점포 안으로 들여다보면, 뜯어낸 마감재와 공구 상자가 어수선하게 놓여 있다. 누군가는 이제 막 짐을 들였고, 누군가는 이제 막 짐을 뺐다.
흥미로운 것은 이 들고 남의 흐름 속에서도 꿈쩍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가게들이 있다는 점이다. 극장이 있던 시절부터,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이 고개에서 국수를 삶아온 노포가 그렇다. 방송에 소개된 적도 있다는 이 집은 날마다 면을 받아다 봉지에 나눠 담는다. 청년몰이 생기기도 전부터, 청년몰이 흔들리는 지금도, 이 가게의 하루는 크게 다르지 않다.

청년몰이 들어오기 전에도 이 가게는 있었고, 청년 상인들이 떠난 뒤에도 이 가게는 남을 가능성이 크다. 신화도 아니고 침체도 아닌, 그저 매일 면을 삶는 일로 버텨온 시간이다. 새로 걸리는 간판과 오래 걸려 있던 간판이 같은 골목에서 마주친다는 것. 어쩌면 이 고개의 진짜 저력은 화제가 된 신화보다, 화제가 되지 않고도 버텨낸 이 평범한 지속에 더 가까이 있는지도 모른다.
극장이 떠난 자리를 청년들이 채웠고, 청년들이 떠난 자리는 아직 다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 사이에서도 면을 삶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이 고개의 간판은 앞으로도 몇 번은 더 바뀔 것이다. 다만 바뀌는 속도와 바뀌지 않는 속도가, 같은 길 위에서 나란히 걷고 있다는 사실만은 지금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