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의 중심에서 비즈니스와 문화가 어떻게 피어나고 지는지 짚어내는 시선
이름이 하나여도 거리는 한 가지 메뉴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신림로59길을 한 바퀴 돌면 순대 철판 옆으로 커피 향과 카레 냄새가 차례
다른 도시의 야시장은 대개 따로 구역을 낸다. 부평깡통시장은 그러지 않았다. 낮에 장을 보던 그 통로에, 밤이 되면 포장마차가 그대로
일흔에서 여든 미터 남짓한 이 골목에, 둘째 주 토요일이면 하루 천오백 명이 넘는 사람이 몰린다. 그 하루를 만들기 위해 쉰 곳 넘는
빵을 사려는 줄은 좀처럼 줄지 않지만, 그 줄에서 한 블록만 벗어나면 셔터 내린 지하상가와 임대 안내문이 먼저 보인다. 원도심은 다시
노량진 학원가의 수험생이 줄어들면서, 컵밥거리의 노점 수는 그대로인데 손님의 줄만 눈에 띄게 짧아졌다.
아침 여덟 시에 문을 여는 가게와 오후 네 시에야 셔터를 올리는 가게가 한 골목에 함께 있다. 같은 거리인데, 해가 어디 있느냐에 따
짐을 부리는 상인들의 아침과, 줄을 서는 사람들의 낮은 같은 골목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산다. 그 사이 어느 한 골목은 아예 미션 수
2025년 묵호역 이용객이 11만 명 넘게 늘었다. 그 늘어난 걸음 전부가 이 비탈 꼭대기의 좁은 집들 옆을 지나간다.
통학로로 정비된 길이 주말이면 외지 차량으로 가득 찬다. 금리단길은 지금 두 가지 생활을 한 폭에 담느라 매번 빠듯하다.
반세기 넘게 약재 냄새로만 설명되던 골목에, 몇 해 전부터 전혀 다른 걸음걸이가 섞여 들어왔다. 상인들은 그 발걸음을 반기면서도, 동
모란시장은 이름대로라면 닷새에 한 번만 깨어나야 한다. 그런데 정작 발 디딜 틈 없는 몇몇 가게는 장이 없는 날에도 불을 켠다.
드론쇼와 조명이 성벽을 물들이는 사흘이 지나면, 성 안은 다시 평일의 조도로 돌아간다. 그 평일에도 변함없이 줄을 세우는 가게는, 축
경리단길과 이태원의 임대료가 오르자 그 자리를 채우던 것들이 흘러넘쳤다. 해방촌을 지나 이제는 후암동의 낡은 집 한 채까지 밀려들어온
원도심을 살리겠다는 공약이 발표되자 동네가 술렁였다. 그런데 그 공약이 말하는 풍경은, 이 거리 안에서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진행 중
한때 이 고개는 '청년창업의 신화'라 불렸다. 지금은 그 신화를 쓴 간판 옆에 임대 문의 전화번호가 붙는다. 같은 거리에서 벌어지는
서른 곳 가까운 간판이 전부 찜닭을 판다. 메뉴판까지 비슷하게 맞춰놓고도 이 골목이 싸우지 않는 이유는, 각자 솥 안에서 조금씩 다른
지도 앱에 '전포카페거리'를 치면 바로 옆에 '전포공구거리'라는 이름이 함께 뜬다. 간판을 모두 커피로 바꾸지 못한 이 골목의 현재.
빈 점포를 공방으로 채운 지 십 년이 넘었다. 그런데 이 골목을 어릴 때부터 다닌 사람들은 요즘도 같은 말을 한다. 사람이 줄고, 빈
60년 된 중국집 간판과 이제 막 내건 로스터리 간판이 같은 골목, 같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본다. 화교거리라 불리던 자리에 커
슬로시티로 지정된 지 열아홉 해. 이 마을의 주말은 이제 카페 웨이팅으로 채워진다. 국밥집은 간판 색으로 손님을 가른다.
카페거리라는 이름이 붙기 한참 전부터 이 골목에는 철물을 두드리고 유기그릇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간판이 바뀌는 속도가 빨라진 지금
2016년, 비어 있던 점포마다 청년 상인이 들어서며 이 시장은 전통시장 재생의 모범 사례로 불렸다. 열 해가 지난 지금, 이 거리에
주민들이 아직 그 계단으로 장을 보러 다니는 동안, 바다를 면한 창문들은 하나둘 커피값을 받는 자리로 바뀌었다.
2016년, 재개발구역이 풀린 이 골목에 처음 들어선 것은 카페와 빵집이었다. 그런데 요즘 이 골목의 기록을 찾아보면 안주와 야장,
바로가기 등록하시면, 더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