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흰여울문화마을) 창문 하나가 카페 자리가 되는 값
주민들이 아직 그 계단으로 장을 보러 다니는 동안, 바다를 면한 창문들은 하나둘 커피값을 받는 자리로 바뀌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부산 흰여울문화마을

흰여울문화마을에 차를 세우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마을 입구 가까운 주차장은 자리가 금방 들어차고, 조금 떨어진 공영 주차장은 요금은 싸지만 경사가 가파른 길을 한참 걸어 올라야 한다. 주말 오후, 주차장이 만차라는 안내판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차들이 드물지 않다.
이 작은 마찰이 이 마을의 지금을 가장 잘 보여준다. 한 세기 가까이 사람이 걸어 다니던 비탈에, 이제는 차를 세우고 바다를 보러 오는 이들이 하루에도 몇백 명씩 몰린다. 집이 있던 자리에 길을 낸 게 아니라, 이미 있던 좁은 길 위로 사람의 숫자만 불어난 셈이다.

창문 하나가 카페가 되는 값
마을을 걷다 보면 바다 쪽으로 창이 난 집은 거의 예외 없이 카페이거나, 카페가 되는 중이다. 오션뷰라는 말이 붙은 간판이 골목 곳곳에서 눈에 띈다. 작은 테라스 하나, 유리창 하나를 두고 사람들이 줄을 서는 풍경이 이 마을에서는 낯설지 않다.
그 창을 두고 벌어지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집 한 채가 가진 창문의 방향이 그 집의 쓰임을 결정한다. 바다를 바로 마주한 집은 카페나 숙소로 쓰임이 바뀌는 속도가 빠르고, 골목 안쪽으로 등을 돌린 집은 여전히 사람이 사는 집으로 남아 있다. 같은 마을인데, 창이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 집의 운명이 갈린다.
이 마을 뒤로는 해운대와 광안리의 높은 건물들이 바다 건너로 보인다. 그 스카이라인은 지난 수십 년 사이 새로 세워진 것들이다. 반면 흰여울의 집들은 그 자리, 그 높이 그대로다. 성장한 도시와 그대로인 비탈이 같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비탈은 여전히 비탈이다
사람이 늘어난 만큼 비탈이 넓어진 것은 아니다. 산사태를 막기 위해 비탈 곳곳에 그물을 덧씌운 공사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바다를 보겠다고 몰려드는 걸음의 무게를, 이 벼랑은 칠십 년 전과 똑같은 경사로 받아 내고 있다.
그 비탈 난간에는 작은 테트라포드 모양 조형물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사람들이 저마다 글씨를 적어 둔 것들이다. 어떤 것에는 날짜가, 어떤 것에는 이름 두 글자가 적혀 있다. 다녀간 사람의 숫자만큼, 난간 위에는 작은 흔적이 하나씩 늘어난다.
주차장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차와, 그 차들이 찾던 카페의 빈자리 없는 테라스는 결국 같은 이야기다. 비탈은 늘어나지 않는데 찾아오는 걸음은 계속 늘어난다. 그 틈에서 이 마을이 다음에 어떤 표정을 지을지는, 아직 누구도 확실히 말하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주차장 안내판 앞에서 돌아서는 차들이 있는 한, 그리고 바다 쪽 창문에 카페 간판이 하나씩 늘어나는 한, 이 비탈은 계속 두 개의 속도로 움직일 것이다. 사는 사람의 속도와, 보러 오는 사람의 속도로.
골목 안쪽, 바다를 등진 집들에서는 여전히 빨래가 널리고 화분이 놓인다. 그 집들은 카페가 되지 않았을 뿐, 사라진 것도 아니다. 창이 어느 쪽을 보느냐로 쓰임이 갈리긴 했어도, 이 비탈 전체가 관광지로 통째로 바뀐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두 종류의 창이 한 지붕 선 아래 나란히 있다는 사실이, 이 마을을 설명하는 더 정확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