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흰여울문화마을) 더 갈 곳이 없어서, 집을 지었다
봉래산이 바다로 뚝 떨어지는 그 끝에서 마을이 시작된다. 일흔 해 전에는 피할 곳이 없어 멈춰 선 자리였고, 지금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 걸음을 멈추는 자리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부산 흰여울문화마을

봉래산 남쪽 사면이 바다로 뚝 떨어지는 지점에서 마을이 시작된다. 길이 끝나는 자리, 땅이 끝나는 자리다. 더 내려갈 데가 없는 벼랑 끝에 사람들은 집을 올렸다.
이름은 물줄기에서 왔다. 봉래산 기슭을 타고 흘러내린 물이 바다와 만나는 자리에서 흰 포말을 일으켰고, 그 모습이 눈이 쏟아지는 것 같다 하여 흰여울이라 불렸다. 산에서 내려온 물과 바다에서 밀려온 파도가 부딪히며 생긴 이름을, 지금은 마을 전체가 쓰고 있다.
그 벼랑에 처음 집을 올린 이들은 땅을 고른 게 아니라 땅을 고를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한국전쟁이 사람들을 부산까지, 그리고 부산에서도 더 갈 곳 없는 이 절벽까지 밀어 보냈다. 피난민들은 가파른 비탈에 몸을 붙이듯 집을 지었다.

바다 건너로 보이는 백사장은 제1송도라 불렸다. 사람들은 이 벼랑의 마을을 제2송도라 불렀다. 같은 이름을 나눠 가졌지만 사정은 정반대였다. 하나는 사람들이 쉬러 가는 해수욕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쫓기듯 닿은 마지막 자리였다.
그렇게 올라간 집들은 오래 피난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었다. 사정이 바뀐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11년 12월, 빈집을 고치고 낡은 벽에 색을 입히는 작업이 시작됐다. 사람이 떠난 자리를 허물지 않고 고쳐 쓰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 작업을 거치며 마을은 흰여울문화마을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피난의 마을이 문화예술마을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은, 피난이 시작된 뒤로 셈하면 반백 년이 넘는다.
열네 개의 골목, 다섯 개의 계단
지금 마을 안에는 열네 개의 좁은 골목과 다섯 개의 계단이 촘촘히 엮여 있다. 평평한 땅이 없으니 집과 집 사이는 계단으로 이어졌다. 경사를 이기지 못한 집들이 서로의 어깨를 짚고 선 모양으로, 마을 전체가 비탈을 그대로 받아 안은 채 서 있다.

그 계단들은 이제 저마다 이름을 얻었다. 피아노 건반을 닮은 계단, 무지개 빛깔을 칠한 계단, 하트 모양을 낸 계단. 사람들은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 한때는 오르내리기도 버거웠을 그 가파름이, 지금은 걸음을 세우는 이유가 됐다.
2018년 12월에는 해안 암벽을 뚫어 터널 하나를 냈다. 피아노계단과 파도광장 사이, 약 70미터 길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기 어려운 사람도 바다와 맞닿은 산책로까지 닿을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걷기 힘든 이들을 위해 뚫은 길이, 지금은 이 마을에서 가장 많이 사진에 담기는 자리 중 하나가 됐다.
카메라가 두 번 다녀간 자리
영화 변호인과 범죄와의 전쟁이 이 마을에서 촬영됐다. 손대지 않고 남겨 둔 좁은 골목과 낡은 벽이, 카메라 앞에서는 시대를 보여주는 배경이 됐다. 지우지 않고 버틴 것들이 뜻밖의 쓸모를 얻은 셈이다.

감천과 헷갈리지 않는 법
부산에는 산비탈에 색을 입힌 마을이 두 곳 있다. 감천문화마을과 이 마을이다. 둘은 자주 같은 문장 안에 나란히 놓이지만 서로 다른 동네다. 감천은 사하구에 있고, 이곳은 영도구 영선동에 있다. 산토리니라는 말도, 어느 여행기에 붙은 다른 유럽 도시의 이름도 걸음마다 따라붙지만 공식 이름은 아니다. 이 벼랑의 이름은 흰여울문화마을이고, 그 이름을 얻기 전에는 그냥 사람이 살던 마을이었다.
피난으로 시작된 마을에서 지금 사람들이 마주하는 것은 끝이 아니라 풍경이다. 칠십 년 전에는 더 갈 곳이 없어 멈춰 섰던 그 벼랑 끝을, 지금은 바다를 보려고 일부러 걸어 올라간다. 같은 비탈을 오르는데, 그때와 지금 걸음의 이유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