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진 길 위의 지도와 작은 가게, 느린 에세이를 모아 골목 하나를 통째로 품었습니다.
노포의 붉은 등불부터 카페의 정겨운 온기까지, 공간이 숨 쉬는 하루를 곁에서 바라봅니다.
빛바랜 간판과 오르는 임대료 사이, 골목이 바뀌는 이유를 에디터가 가만히 짚어 봅니다.
지금 이 순간 거리에서 펼쳐지는 전시와 축제를 전합니다. 일정이 지나면 고요히 사라집니다.
글에서 만난 작은 가게와 장소를 골목별, 분류별로 찾아볼 수 있는 곳입니다.
빠른 도시의 흐름 속에서 잊히기 쉬운 길목을 천천히 걸으며 기록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여섯 갈래의 길 가운데 마음이 가는 곳부터 들어서 보세요.
길은 다시 시리즈와 동네, 가게의 결에 따라 나뉩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고른 결에 맞는 글과 가게를 한자리에 펼쳐 둡니다.
글이 끝나면 같은 골목의 다음 기록과 가게가 이어져, 돌아서지 않고 더 걸어갈 수 있습니다.
거친 붉은 벽돌 수제화 공장 지대와 하이엔드 팝업이 교차하는 골목
인왕산 자락 아래 한옥 지붕선과 구멍가게, 독립서점, 에스프레소 바가 공존하는 골목
낮에는 인쇄기가 돌고 밤에는 간판 없는 가게가 불을 켜는 골목
한옥 사이로 좁은 길이 이어지는, 서울에서 가장 촘촘한 골목
쇳소리와 페인트 냄새가 같은 골목에서 나는 자리
남산 아래 비탈을 따라 계단으로 이어지는 골목
연무장길과 같은 동네인데 걷는 속도가 다른 길
철길이 걷어진 자리에 생긴 긴 공원과 그 양옆 골목
시장과 주거지와 새 가게가 한 블록 안에 섞인 동네
몇 해 사이에 만들어진, 가장 최근에 생긴 골목
시장 좌판 사이에 젊은 가게가 끼어 앉은 자리
봉제와 문구 도매가 함께 남아 있는 언덕 동네
대학가의 값과 취향이 같이 걸린 길
백 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먹는 일이 이어진 곳
종묘 돌담을 따라 한쪽만 가게가 들어선 길
주택가 사이에 가게가 조용히 섞여 든 동네
돌담과 갤러리가 번갈아 나오는 오르막
한옥이 주거지에서 카페·게스트하우스로 바뀌어 온 변화 자체가 소재
전통 공예 상가와 프랜차이즈가 자리다툼하는 거리
관광객 급증 후 주민이 벽화를 직접 지운 이력
관광특구 지정 이후 임대료·업종 구성이 통째로 바뀐 거리
종묘 앞, 시계 부품·수리공만 남은 좁은 상가골목
몽골타워 중심 중앙아시아 이주노동자 상권
이슬람 사원 아래 다문화 상점이 늘어선 오르막
옛 프랑스인 마을 자리에 남은 저층 카페거리
등산로 입구, 등산객 상대 두부요리 노포 골목
노포 대구탕집이 줄지어 남은 골목
덕수궁 돌담을 따라 이어지는 근대 건축 골목
만화 원작지에 조성된 벽화 골목
한옥거리형 카페·소품샵 밀집, 경기관광공사가 직접 '핫플레이스'로 표기
카페 밀집 상권
카페 중심 문화거리
아라뱃길 운하변 상업지구, 야간 음악분수·조명
'-리단길' 네이밍의 신흥 카페상권
국내 최초 스트리트형 쇼핑몰, '일산의 명동'
신도시 호수공원 옆 카페 상권
예술인마을·프랑스마을 컨셉 상업지구
경리단길 작명법을 물려받은 신생 카페거리, 석촌호수와 롯데타워를 함께 보며 걷는 길
조선시대 악취 나던 자리에 '향기'를 붙인 시장이 과자·인쇄를 거쳐 포장재 도매의 중심이 된 곳
옛 육군중앙경리단 자리에서 이국적 상권으로 떴다가, 임대료 상승으로 다시 가라앉은 언덕길
조선 어영청 북둔에서 시작해 대사관저와 문인들의 터전이 된, 서울에서 담장이 가장 높은 동네
명동 디자이너들이 옮겨와 '패션 1번지'로 떴다가, 가로수길에 밀려 침체 후 다시 살아나는 중인 강남 패션거리
해 질 녘 사라진다고 해서 '도깨비시장'이라 불렸던, 청계천 고물상에서 시작된 중고·주방 거리
부산이 임시수도였던 시절 헌책 노점 하나에서 시작해 칠십 년을 이어온 헌책방 골목
1899년 개항 후 쌀 수탈의 거점이 됐던 일본인 거류지, 그 시절 지어진 건물이 지금 거리의 얼굴
신라 때부터 천 년 가까이 행정 중심지였던 구도심이, 낡은 건물을 헐지 않고 커피거리로 되살아난 곳
100년을 버틴 철도 관사촌을 부수는 대신 지키기로 한, 대전역 뒤편 카페·갤러리 골목
이태원 경리단길 이름을 본떠, 신라 고분 곁에서 부활한 초기 '○리단길' 상권
일본 상업 확장에 맞서 조선인들이 집단으로 지은 '도시형 한옥' 100년 동네, 지금은 오버투어리즘을 겪는 중
가수 김광석의 생가였던 피란민 시장이, 2010년 벽화 프로젝트로 다시 불려나온 길
1883년 인천 개항과 함께 외국인 조계가 들어선 원도심, 개항기 건축과 신포시장이 공존하는 거리
조계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전쟁 뒤엔 전국 3대 헌책방거리를 일군 동네
노래 한 곡이 불 붙인 관광 붐을 타고 2016년 조성된, 거북선대교 아래 포장마차 거리
영사관이었다가 시청이, 은행이었다가 음악당이 된 건물들이 뼈대를 이루는 목포 원도심
철거될 뻔한 중앙시장 뒷산 달동네를, 2007년 벽화 공모전이 지켜낸 비탈 마을
1884년 5일장으로 발족해 대화재와 재건을 거친, 진주냉면의 명맥이 이어지는 시장
백제 때부터 흐르던 하천 옆, 오래 낡아 있다가 청년들의 한옥 재생으로 다시 불 켜진 골목
성벽은 백 년 전 헐렸어도 이름은 그대로 남은, 청주 최대 상권이었던 원도심 거리
일제강점기 철로가 있던 자리, 산업도시 울산의 청춘들이 밤늦도록 서성이던 번화가
탐라시대 칠성단에서 이름을 얻어 '제주의 명동'까지 됐던, 다시 불을 켜는 중인 원도심 거리
선교사들이 남긴 서양식 건축물과 한옥이 뒤섞이고, 흉가였던 빈집은 주민들이 공예거리로 되살린 골목
통닭을 팔던 골목이 양념치킨 유행에 맞서 직접 개발한 메뉴로 정체성을 바꾼, 서른 곳 간판이 나란한 골목
시청이 떠나 불 꺼졌던 원도심에, 작업실 스물일곱 개가 들어와 다시 이름 지은 거리
세곡 나르던 창고 마을이 번화가로 떴다가 비워졌고, 그 자리를 예술가들이 다시 채운 곳
피난민 장터에서 자란 시장 안, 닭을 팔던 좁은 통로가 고속도로 개통과 방송 한 번으로 전국이 줄 서는 골목이 됐다
극장 이름을 딴 고갯길, 그 극장이 문 닫은 뒤 청년 상인들이 두 번째 전성기를 만든 곳
화재와 외환위기로 비어가던 중앙시장 2층을, 청년들이 미로 같은 골목으로 되살린 곳
조선시대 순천읍성 자리, 법정동명·사업명·애칭 세 개로 불리는 공방·갤러리 거리
공단이 불러들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외환위기 이후 눌러앉으며 생긴, 국내 최초 다문화마을특구
'젊음의 거리'였던 패션 상가가 쇠락한 자리에, 예술가와 이주노동자가 각자 새 바람을 들이는 원도심 거리
가죽·수제화 공장이 떠난 자리를 카페와 브랜드가 메운, 성수동에서 카페 밀도가 가장 높은 구역
참배길이던 108계단 아래, 적산가옥이 카페로 바뀌는 골목
피난민이 벼랑에 깎아 올린 집들이, 지금은 바다를 보려는 사람들과 영화 카메라가 드나드는 마을
공구와 부품을 팔던 뒷골목이 통째로 비었다가, 커피 내리는 사람들이 하나씩 채운 카페거리
'길다'는 사투리에서 이름을 얻은, 양반을 피해 다니던 뒷길이자 대구 최고 부잣집 동네였던 좁은 골목
1913년 역과 함께 생긴 역전시장이 청년몰로 다시 태어났다가, 10년 만에 다시 활력을 묻고 있는 곳
2천 년 전 가야 취락이 있던 구릉 자락, 도시재생으로 피어난 카페골목
조선 객사 뒤편, 경리단길 이름을 빌려 10년 재개발 족쇄가 풀리자마자 1년 만에 바뀐 카페거리
세종이 눈병을 고치려 몸을 담근 뒤 조선 임금들이 대를 이어 찾았던, 가장 오래된 온천 거리
월봉산 물줄기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자리, 500년 고택과 돌담이 남은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카페·공방 골목상권
재생형 상점 골목
벽화 계단 골목·오션뷰
읍성 안 노포 먹자골목
백순대 특화 식문화거리
전국 최대 한약재 시장
부산 최대 재래시장
야시장+영화의거리
수도권 최대 5일장
곱창 특화 포차골목
고시촌 컵밥 노점거리
대전 원도심 번화가
200g에 8,900원. 나가는 손님이 사장님께 이렇게 물었다는 이야기가 후기마다 반복됩니다. 신림로 358-7번지, 오후 네 시에
백순대를 먹으러 간 동네에서 어떤 사람들은 카레 냄새를 따라 계단을 오릅니다. 신림로 309번지 2층, 등촌 칼국수 간판 옆 작은 인
밖에서 보면 오래된 다방 같은 간판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야 비로소 알게 되는 공간이 신림로59길 골목 2층에 있습니다.
방송에 여러 번 나왔다는 말보다 먼저 와닿는 건 따로 있습니다. 순대볶음집들이 한 층에 빼곡히 들어찬 모습 자체가, 처음 보는 사람에
중학생 때 처음 온 사람도 있고, 20대부터 다닌 사람도 있습니다. 민속순대타운 306호, 삼촌네를 몇 년씩 다시 찾는 사람들의 이야
해가 지면 이 골목은 철판 부딪히는 소리로 가장 먼저 열린다. 간판 불이 하나씩 켜지는 동안, 냄새가 먼저 골목 끝까지 걸어나간다.
이름이 하나여도 거리는 한 가지 메뉴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신림로59길을 한 바퀴 돌면 순대 철판 옆으로 커피 향과 카레 냄새가 차례
자취생과 고시생의 허기가 다진 골목에 지하철이 닿았고, 어느 날 관악구가 이 거리 전체의 이름 밑에 도장을 찍었다. 반백 년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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