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동 순대타운) 이름 하나에 다 담기지 않는 골목
자취생과 고시생의 허기가 다진 골목에 지하철이 닿았고, 어느 날 관악구가 이 거리 전체의 이름 밑에 도장을 찍었다. 반백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 골목을 먹여온 것은 결국 한 가지 메뉴였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30
- 골목
- 서울 신림동 순대타운

신림역 4번 출구에서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건물 하나가 간판으로 뒤덮여 있는 걸 보게 된다. 처마 아래 '원조민속순대타운'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고, 그 아래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든다. 사람들이 신림동 순대타운이라고 부르는 곳의 정문이다.
여러 가게의 간판이 한꺼번에 겹쳐 걸린 외관부터 이 골목 특유의 공기가 느껴진다는 감상이 방문자들 사이에 자주 남는다. 간판 하나하나를 다 읽기도 전에 발이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있다.
이 거리를 먹여온 메뉴는 하나다. 백순대. 양념하지 않은 순대와 당면, 채소를 철판 위에서 그대로 볶아낸 뒤, 양념장은 따로 덜어 찍어 먹는다. 매운 양념을 먼저 올리고 볶는 다른 동네의 순대볶음과는 손이 가는 순서부터 다르다.

허기가 다진 뒷골목
이 골목이 지금의 성격을 갖게 된 계기는 멀지 않다. 1975년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학교가 관악구 신림동으로 캠퍼스를 옮기면서, 혼자 밥을 해결해야 하는 자취생과 고시생이 이 동네로 몰려들었다. 그 허기가 신림동 순대촌을 키운 첫 손이었다.
1984년에는 지하철 2호선 신림역이 뚫렸다. 걸어서나 버스로만 오가던 동네에 지하철 출구가 생기자, 순대를 먹으러 오는 발걸음은 더 이상 신림동 주민만의 것이 아니게 됐다.
자취생과 고시생이 주 손님이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신림역에서 내린 외지 손님이 더 많다는 인상을 받는 방문자들이 적지 않다. 골목을 채우는 얼굴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철판 위에서 볶아내는 조리법만큼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름을 걸고 나선 날
2013년 1월 1일, 관악구는 이 일대를 '음식문화의 거리'로 지정했다. 그날 간판 102개가 같은 약속 밑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그 약속은 세 가지 '하지 않음'과 세 가지 '가까움'으로 적혔다. 음식을 재사용하지 않고 원산지를 속이지 않고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 것, 그리고 환경과 사람과 건강에 가깝게 음식을 내는 것. 새로 온 손님에게는 새 음식을 낸다는 다짐도 그 자리에서 함께 적혔다.
건물 하나, 가게 여럿
지금 이 골목의 중심은 신림로59길 14번지, 원조민속순대타운이라는 이름을 단 건물 하나다. 삼촌네, 미자네, 전주익산 같은 상호들이 같은 건물 안에서 층과 호실만 나눠 쓴다. 엘리베이터를 한 번 오르내리는 사이 손님은 가게를 바꾼다.

한 층에 여러 집이 늘어서 있어 오래된 시장 골목 같다는 말이 방문객들 사이에서 자주 나온다. 테이블마다 커다란 철판이 놓이고, 재료를 볶는 소리와 냄새가 가게와 가게 사이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든다.
메뉴판에 적힌 가격은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차림새는 크게 다르지 않다. 커다란 철판에 당면과 채소, 순대를 수북이 쌓아 볶고 그 옆에 양념장 종지를 따로 놓는다. 어느 호실 문을 열고 들어가도 낯설지 않은 이유다.
순대타운이라는 이름을 걸고 반백 년 가까이 이 골목을 드나든 사람들이 있다. 동시에 그 이름 때문에, 이 일대 전체가 순대 간판으로만 채워져 있다고 짐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신림로59길을 따라 몇 걸음만 더 걸어보면, 그 짐작이 얼마나 빨리 무너지는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