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해미읍성 골목) 조명은 성벽까지만 닿는다
드론쇼와 조명이 성벽을 물들이는 사흘이 지나면, 성 안은 다시 평일의 조도로 돌아간다. 그 평일에도 변함없이 줄을 세우는 가게는, 축제가 아니라 방송 하나가 만들어 놓은 줄이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13
- 골목
- 서산 해미읍성 골목

평범한 주말 오후, 해미읍성 안쪽 잔디밭은 야단스럽지 않다. 초가지붕을 얹은 정자 아래 가족들이 돗자리를 펴고, 감나무 가지마다 주황빛 열매가 달려 있다. 아이는 성벽 돌 틈에 손가락을 넣어 보고, 어른들은 그 옆에서 느릿하게 걷는다. 이곳이 조선시대 병영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해마다 10월이 되면 이 조용한 마당이 전혀 다른 곳으로 바뀐다. 서산시가 여는 해미읍성축제 기간이다. 성벽을 따라 조명이 걸리고, 밤이면 드론 수백 대가 하늘에 그림을 그린다. 가수 공연과 조선시대 무과시취 재현, 어린이 체험 부스까지 사흘 동안 성 안을 가득 채운다. 평소라면 한적했을 돌담 아래로 인파가 몰려든다.

조명이 닿는 자리와 닿지 않는 자리
축제의 조명은 공평하지 않다. 가장 환하게 켜지는 곳은 성벽과 진남문, 그리고 무대가 선 너른 마당이다. 사람들은 그 빛을 향해 모이고, 사진을 찍고, 드론이 그리는 그림을 올려다본다. 하지만 성 바깥쪽, 오래전부터 식당들이 늘어선 먹자골목에는 그 조명이 그대로 번지지 않는다. 축제 포스터 한 장이 가게 유리문에 붙는 정도가 전부인 집도 있다.
골목 안에서 축제와 상관없이 줄이 끊이지 않는 가게가 있다면, 그 줄의 시작은 축제가 아니라 2019년이다. 그해 방영된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이 골목의 호떡집, 돼지찌개집, 곱창집, 쪽갈비김치찌개집 네 가게를 다뤘고, 그중 호떡집만이 지금까지 전국구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해미호떡이라는 그 가게 앞은 축제가 열리든 말든 사철 줄이 선다. 방송 한 번이 만든 줄은 조명처럼 꺼지지 않는다.

같은 방송에 함께 소개됐던 나머지 가게들의 사정은 블로그 기록만으로는 또렷하게 가늠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상호가 바뀌었을 수도, 누군가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화제가 된 가게와 그렇지 못한 가게 사이의 거리가 성벽과 골목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멀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성 바로 옆에는 해미읍성전통시장이 붙어 있다. 두 곳을 함께 걸으면 동선이 편하다고 여행 기록마다 입을 모은다. 하지만 축제 포스터와 인파는 대개 성벽 안쪽에서 멈추고, 시장과 골목으로는 그 열기가 절반쯤만 건너온다. 같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도 북적임의 온도가 다르다.

평일의 골목은 또 다르다. 관광버스 대신 동네 트럭이 드나들고, 집 앞 평상에 나와 앉은 상인과 지나가는 주민이 가볍게 인사를 나눈다. 축제 사흘을 빼면 삼백예순 날 넘게 이 골목을 채우는 것은 결국 그런 사람들이다. 화려한 조명이 없어도 돌아가는 일상이, 이 골목의 더 오래된 디폴트값이다.
축제가 끝나면 조명은 꺼지고 드론은 돌아간다. 성벽은 다시 낮의 색으로 돌아오고, 잔디밭에는 다시 돗자리와 감나무 그늘만 남는다. 그러나 골목 어귀, 호떡 굽는 냄새가 나는 그 집 앞의 줄만은 그대로다. 성을 밝히는 빛은 사흘마다 바뀌지만, 사람을 세우는 냄새는 해가 바뀌어도 그대로인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