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해미읍성 골목) 이 성은 늘 지키는 자리였다
조선의 병사를 지키려 쌓은 성벽은 신자들이 묶여 죽은 자리가 되었고, 지금은 호떡집 앞에 선 줄을 지킨다. 해미읍성은 지키는 일을 한 번도 그만둔 적이 없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13
- 골목
- 서산 해미읍성 골목

진남문 홍예 아래를 지나는 순간, 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둥글게 파낸 돌 천장이 만든 그늘 때문만은 아니다. 발밑의 돌 하나하나가 육백 년 가까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아채는 것 같다.
해미읍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부터 세종 3년(1421년)까지 쌓은 병영성이다. 왜구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충청도 서해안을 지키려던 자리였다. 처음에는 흙으로 쌓았고, 세월이 흘러 성종 22년(1491년)에 이르러 돌로 다시 보강해 지금 우리가 걷는 성벽의 골격을 갖췄다.

그렇게 두 번에 걸쳐 완성된 성은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사적 제116호로 지정되었다. 지키려고 쌓은 돌담이 이번에는 지켜야 할 대상이 된 셈이다. 성벽은 한 번도 역할을 바꾼 적이 없다. 다만 지키는 대상이 병사에서 유적으로, 다시 지금의 이 골목으로 바뀌어 왔을 뿐이다.
성벽 안에서 사람이 죽던 자리
그러나 이 성이 지켜온 역사가 전부 평온하지는 않았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가 거세지던 시절 충청도 각지에서 붙잡혀 온 신자들이 바로 이 성 안에서 처형되고 생매장되었다. 해미 현감이 충청좌도의 국사범을 처형할 권한을 쥐고 있었던 탓이다. 병사를 사열하던 마당이 하루아침에 형장이 되었다.

성 안에는 지금도 그 흔적을 몸에 새긴 나무가 서 있다. 사람들이 호야나무라 부르는 회화나무로, 심긴 지 삼백 년 가까이 된 이 나무는 신자들을 매달아 고문하는 데 쓰였다고 전한다. 철사줄에 묶였던 자리가 줄기의 흠집으로 아직 남아 있다. 충청남도는 이 나무를 기념물 제172호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2014년 8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성과 순교지를 직접 찾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성벽 아래 줄이 선다
조선시대 해미읍성에는 충청병마절도사가 주둔했다. 충무공 이순신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이곳에서 군관으로 근무하며 훈련을 맡았다고 전한다. 병사를 길러내던 자리였다는 뜻이다. 그 마당에서 지금은 전혀 다른 줄이 선다.

2019년, SBS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이 성 안 먹자골목을 찾았다. 호떡집과 돼지찌개집, 곱창집과 쪽갈비김치찌개집까지 네 가게가 솔루션을 받았고, 그중 호떡집은 방송 이후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지금도 해미호떡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이어가며, 그 집 가족이 차린 카페 오아시스까지 함께 블로그마다 자주 오르내린다. 성벽을 등지고 선 그 줄은, 공교롭게도 예전 병사들이 열을 맞춰 서던 자리에서 멀지 않다.
지키는 대상은 몇 번이나 바뀌었다. 외적으로부터 성을, 성벽으로부터 돌 자체를, 그리고 지금은 호떡 한 장을 받으려는 줄을. 처음 이 성을 쌓은 이들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언젠가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창이 아니라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인내일 줄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