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해미읍성 골목) 성돌 틈에 손가락을 넣어본다
아이는 성벽 돌 틈마다 손가락을 넣어 보느라 열 걸음을 가는 데 한참이 걸리고, 어른은 그 뒤에서 호떡 냄새를 따라 걷는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13
- 골목
- 서산 해미읍성 골목

진남문 홍예 아래에 서면 소리가 달라진다. 둥글게 파낸 돌 천장이 목소리를 모아 되돌려주는 탓이다. 누군가 아, 하고 소리를 내 보면 그 소리가 한 번 더 울려 돌아온다. 그 울림이 신기해서 한참을 그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성 안으로 몇 걸음 더 들어가면 가을에는 색이 먼저 말을 건다. 붉고 검붉게 물든 댑싸리가 밭을 이루고, 그 사이사이 꽃무릇이 가늘고 붉은 줄기를 세운다. 은행나무 한 그루가 그 가운데 서 있고, 잔디밭 끝으로 작은 정자가 보인다. 걷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지는 구간이다.
성벽 아래로 다가가면 아이들은 꼭 돌 틈에 손가락을 넣어 본다. 울퉁불퉁한 돌과 돌 사이, 그 좁은 틈을 더듬으며 열 걸음을 가는 데 한참이 걸린다. 어른들은 그 뒤를 느긋하게 따른다. 서두를 이유가 없는 걸음이다.

냄새가 먼저 마중 나온다
성 안쪽 넓은 잔디밭을 가로지르면 아이들이 공을 차거나 솔방울을 모으며 뛰어다니고, 그 옆으로 유모차를 밀고 가는 부모들의 걸음이 느긋하다. 이곳이 한때 병사들이 열을 맞춰 서던 연병장이었다는 사실은, 지금은 돗자리 한 장 펼 자리를 찾는 사람들의 눈에는 전혀 다른 풍경으로 읽힌다.
성 바깥, 골목 쪽으로 방향을 틀면 공기가 바뀐다. 마가린이 달궈지는 냄새가 먼저 코끝에 닿는다. 골목 안쪽 어딘가에서 호떡을 굽고 있다는 뜻이다. 냄새를 따라 걷다 보면 줄이 보이고, 줄의 끝에는 늘 비슷한 표정이 있다. 기다림을 이미 받아들인 얼굴이다.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할 일은 많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설탕과 씨앗으로 채워진 호떡이 철판 위에서 노릇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고소한 냄새를 한 번 더 들이마시는 것. 금방금방 줄이 줄어드는 편이라고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그 몇 분도 길게 느껴진다.
호떡을 손에 들고 들어서는 골목 카페의 공기는 또 다르다. 우드톤 테이블과 통창이 있는 작은 가게는 엔틱한 소품 몇 개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낸다.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많아 가족 단위 손님들이 자연스레 자리를 채우고, 통창 너머로는 방금 지나온 골목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걷다가 쉬고, 쉬다가 다시 창밖을 내다보는 리듬이 이 골목에는 있다.

다시 성 안쪽으로 걸음을 돌리면 소나무 그늘이 짙다. 한낮에도 그 그늘 아래는 서늘해서, 아이는 떨어진 솔방울을 줍느라 주머니가 불룩해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성벽과 골목, 그 사이를 오가는 몇 걸음 안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머문다.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돌리면 다시 평범한 동네가 펼쳐진다. 넓은 주차장과 익숙한 간판들, 월요일이면 문을 닫는 가게들의 안내문까지 영락없는 소도시 골목이다. 성 안에서 본 육백 년 전 돌담과 성 밖에서 만난 오늘의 간판이 한 걸음 차이로 겹친다는 사실이, 이 산책을 묘하게 만든다.
해가 기울면 성벽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돌담을 쓰다듬던 손은 그제야 멈춘다. 성문을 나서는 걸음은 들어올 때보다 조금 느리다. 무엇을 보고 왔는지보다, 무엇을 만지고 왔는지가 더 오래 남는 자리인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