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명동거리) 아무도 모르게 먼저 와 있던 거리
원도심을 살리겠다는 공약이 발표되자 동네가 술렁였다. 그런데 그 공약이 말하는 풍경은, 이 거리 안에서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진행 중이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천안 명동거리

2026년 여름, 천안시장 선거를 앞두고 한 후보가 공약 하나를 내놨다. 천안역 인근 원도심에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종교·커뮤니티 시설을 짓고, 그 일대를 글로벌 스트릿이라는 이름의 거리로 조성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안산시의 외국인 특화 거리를 참고 모델로 들었다. 주말이면 비어버리는 원도심에 사람을 다시 불러모으겠다는 취지였다.
공약은 발표되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2026년 8월 기준 천안시 외국인 인구 비율이 6퍼센트를 넘긴 상황에서, 주민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고 특정 지역에 외국인 시설을 몰아넣으면 문화적 갈등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천안역 인근에서는 이미 외국인 밀집과 종교시설을 둘러싼 주민 불편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같은 당 소속 국회의원조차 처음 들어봤다며, 사전에 전혀 협의되지 않은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이 공약을 둘러싼 뉴스를 접한 사람 중 상당수는, 정작 그 거리를 와본 적이 없다. 명동거리를 걸어본 사람이라면 다른 생각이 든다. 이곳에는 이미 외국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자리를 잡고 영업 중이다. 인도와 네팔식 요리를 내는 식당이 거리 안쪽에 들어선 지 오래고, 천안역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익숙하지 않은 글자가 적힌 간판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공약이 그리는 미래가, 이 블록 안에서는 이미 몇 해째 조용히 진행되고 있던 셈이다.

이 거리에서 오래 장사를 해온 이들의 말은 한결같다. 천안역 쪽이 한때 핫했는데, 그 시절 이야기라는 것이다. 공단과 산업단지를 오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퇴근길에 들를 수 있는 식당과 가게가 자연스럽게 이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누가 계획해서 만든 거리가 아니라, 값싼 임대료와 역에서 가까운 위치가 사람을 불러모은 결과에 가깝다.
그래서 이 공약을 둘러싼 논쟁은 묘하게 어긋나 있다. 한쪽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다른 한쪽은 이미 와 있는 현재를 말한다. 정치의 언어가 거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명동거리는 공약도 반대 여론도 없이 스스로 자리를 바꿔왔다.
세계음식거리라는 말도 이미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천안역 인근을 둘러보던 한 방문객이 세계음식거리가 어디냐고 묻자, 저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행정이 공식 명칭을 정하기도 전에, 이 동네 사람들은 이미 그런 이름으로 그 자리를 부르고 있었던 셈이다.

서류상의 이름은 따로 있다. 명동거리와 대흥동 일대는 천안시가 지정한 상점가 목록에 명동대흥로라는 이름으로 올라 있다. 신부문화거리, 두정동, 천안역 지하상가와 나란한 자리다. 바로 옆 천안중앙시장에는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이 373곳 등록돼 있어 충남에서 공주산성시장 다음으로 많고, 그중 266곳은 모바일 결제까지 지원한다. 숫자로 보면 이 일대는 이미 작지 않은 상권이다. 다만 그 숫자가 가게 하나하나의 사정과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거리 안에서 다른 종류의 변화도 함께 일어나고 있다. 문화로의 노포 식당 앞에 붙은 안내판에는 이쪽 골목이 야장으로 유명해지고 있어서 사람들이 조금씩 오가는 동네가 되고 있다는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4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킨 가게의 주인이 새로 늘어나는 야장 손님을 두고 쓴 말이다. 패션 거리로 번성하던 시절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 블록은 다시 사람을 끌어모으고 있다.
화가들의 갤러리가 생기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생활 상권이 넓어지고, 저녁이면 포장마차 간판에 불이 켜진다. 세 가지 변화는 서로 약속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같은 블록 안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공약 하나가 발표되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거리를 다시 쳐다봤지만, 거리는 누가 봐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천안역은 이 거리의 운명을 쥔 또 다른 변수이기도 하다. 경부선과 장항선이 지나는 이 역은 철도가 도시를 동쪽과 서쪽으로 가르는 경계이기도 하다. 동쪽에는 명동거리를 품은 대흥동·문화동 원도심이, 서쪽에는 와촌동을 중심으로 한 역세권 개발사업이 자리한다. 서쪽의 도시재생혁신지구는 2019년 국가시범지구로 지정된 뒤 지금까지 계획을 다듬어 왔다.
부동산 업계에서 나오는 말은 간단하다. 천안역 동서를 잇는 연결 통로가 구체화되면, 천안역에서 동부광장을 지나 대흥동과 명동거리로 이어지는 보행 흐름이 실제로 만들어지는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다만 연결통로가 생긴다고 모든 골목 상권이 동시에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단서도 붙는다. 중요한 것은 통로의 출입구가 어디로 나는지, 사람들이 실제로 어느 길을 걷는지다. 같은 몇백 미터라도 보행 동선에 붙은 상가와 골목 안쪽 상가는 체감하는 변화가 전혀 다를 수 있다.
글로벌 스트릿이라는 이름이 실제로 이 거리에 붙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름을 붙이는 일보다, 그 이름이 가리키는 풍경을 먼저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이 거리에는 이미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