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명동거리) 불이 꺼지는 순서, 켜지는 순서
낮의 거리와 밤의 거리는 같은 길을 걷고도 전혀 다른 곳을 다녀온 것 같다. 명동거리는 해가 넘어가는 그 짧은 시간에 완전히 다른 얼굴로 바뀐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천안 명동거리

낮의 명동길은 조용하다. 셔터를 반쯤 내린 가게와 완전히 올린 가게가 뒤섞여 있고, 사람보다 골목을 가로지르는 바람이 먼저 지나간다. 간판 아래 붙은 스쿠터 한 대가 종일 그 자리에 세워져 있는 걸 보면, 이 시간의 거리는 누군가의 출근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 조용함 속에서도 하루를 여는 가게들이 있다. 노부부가 함께 꾸리는 돌솥밥집은 점심 손님을 받으려고 이른 아침부터 반찬을 준비한다. 가자미를 굽고 나물을 무치는 손길이 분주한 시간, 거리의 다른 가게들은 아직 셔터를 올리지도 않았다. 한 상에 오르는 반찬 가짓수만큼, 이 집의 아침은 길다.
오후 네 시를 넘기면 공기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문화로 쪽 노포 식당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안쪽에서 숯불 냄새가 골목으로 새어 나온다. 아직 손님은 많지 않다. 이 시간에 먼저 와 앉는 사람들은 대개 이 거리를 오래 다닌 이들이다. 어느 자리가 가장 먼저 구워지는지, 어느 가게가 몇 시쯤 가장 한산한지를 아는 사람들.
버들로 쪽 시장 입구에서는 마늘 냄새가 먼저 마중을 나온다. 알싸하고 화한 그 냄새를 따라가면 벽 가득 학생들의 낙서가 남은 떡볶이집이 나온다. 바로 옆 골목, 중앙시장 맞은편에서는 또 다른 냄새가 난다. 갓 튀긴 땅콩빵이 식는 냄새다. 장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 냄새 앞에서 한 번씩 멈칫거린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면 거리는 다른 쪽 얼굴을 꺼내 보인다. 포장마차식 간판을 내건 가게들이 야외 테이블에 의자를 꺼내 놓고, 그 위로 백열등 색의 불빛이 번진다. 소주잔 부딪는 소리가 골목 한쪽에서 들려오면, 다른 쪽에서는 아직 저녁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섞인다. 같은 길인데 걷는 속도가 사람마다 다르다.
골목 안쪽,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끝에서는 또 다른 소리가 난다. 바늘이 판을 긁는 특유의 지지직 소리. 음악을 틀어주는 사람은 손님이 말하는 가수 이름을 듣고 그 자리에서 판을 고른다. 지상의 소음이 이 계단 몇 칸 아래로는 거의 닿지 않는다. 오래된 음반 재킷이 벽을 채운 자리에서, 누군가는 자기 부모 세대의 노래를 처음 들어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중앙시장 쪽으로 몇 걸음 더 옮기면 춘장 볶는 냄새가 골목을 채운다. 혼자 가게를 보는 중식당 주인이 손님이 몰리면 눈치껏 돌아가 달라는 안내문을 붙여두었을 정도로 작은 가게지만, 그 작은 주방에서 나오는 냄새만큼은 골목 끝까지 퍼진다. 그 냄새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시장 쪽 포장마차 간식집 앞에 줄이 늘어서 있는 걸 보게 된다.

문화로의 치킨집 앞을 지나면 고양이 두 마리가 사람을 알은체한다. 세월이 느껴지는 간판 아래 자리를 잡고 손님을 구경하는 이 고양이들은, 이 거리에서 나고 자란 또 다른 터줏대감이다. 그 앞을 지나 지하 술집으로 내려가면 김현식과 조용필의 LP판 재킷이 벽에 걸려 있다. 누군가에게는 자기 어머니가 즐겨 듣던 노래이고, 누군가에게는 처음 들어보는 가락이다. 같은 음악이 세대를 가로질러 같은 테이블 위로 흐른다.
조금 더 걸으면 낯선 글자가 적힌 간판들이 섞여 든다.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외국 음식점의 주방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는 한국어가 아니다. 그 옆 골목에서는 할머니 혼자 중식당을 지키며 반죽을 치대는 소리가 난다. 서로 다른 언어가 몇 걸음 간격으로 공존하는 이 거리에서는, 낯섦이 오히려 익숙한 풍경이 되어 있다.
낮에는 후텁지근하던 공기가 밤이 되면 살짝 선선해지는 계절, 그 온도 차 하나로 야장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오래된 골목길 안쪽, 삼겹살 굽는 연기가 낮게 깔리는 가게 앞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구도심 골목이라 전용 주차장은 없지만, 노상 주차 구역에 타이밍 좋게 자리를 잡는 사람들의 요령도 이 거리에서는 자연스럽게 익혀진다.

밤이 깊어질수록 테이블 사이의 대화는 더 커지고, 그만큼 더 편안해진다. 처음 온 사람도 몇 순배가 돌고 나면 옆 테이블의 웃음소리에 자연스럽게 섞인다. 좁은 골목이 주는 거리감이 오히려 사람을 가깝게 만든다. 모르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저마다의 저녁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이 거리의 밤을 유독 떠들썩하게 만든다.
버스 정류장 맞은편 골목에서는 할머니 혼자 꾸리는 중식당의 조리대 불빛이 늦게까지 꺼지지 않는다. 사람이 몰리면 눈치껏 나왔다가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들어오라는 당부가 붙어 있을 만큼 작은 가게다. 그 골목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곰탕을 끓이는 집, 국밥에 순대를 올리는 집, 꽈배기를 튀기는 좌판이 차례로 나타난다. 시장과 거리의 경계가 어디서부터인지는, 걷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그어진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불이 꺼지는 순서도 제각각이다. 일찍 문을 닫는 노포가 있고, 새벽까지 불을 밝히는 포차가 있다. 마지막까지 남은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고 나면, 거리는 다시 낮의 고요함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네 시, 같은 순서로 다시 불이 켜질 것이다.
번화가였던 기억과 지금의 풍경 사이, 이 거리가 매일 반복하는 건 그 전환의 리듬이다. 낮에서 밤으로, 조용함에서 떠들썩함으로. 그 리듬을 알고 나면 이 거리를 다시 찾는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