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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천안 명동거리) 문을 닫은 가게 수만큼, 문을 연 사람들

천안역 앞 패션 골목이 번화가였던 시절을 아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다. 상권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조용히 다시 불을 켜고 있다.

글
alleymag.
발행
2026.10.05
골목
천안 명동거리
문을 닫은 가게 수만큼, 문을 연 사람들
Artwork by alleymag.

천안역 1번 출구를 나오면 금방 알아챌 수 있다. 길 건너로 보이는 간판들의 색이 조금씩 바래 있다는 것을. 명동길과 대흥로,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문화로. 세 갈래 길이 얽힌 이 블록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명동거리라 불러왔다.

지금 이 거리를 처음 걷는 사람은 그 이름이 다소 과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60년대, 이 골목이 처음 상권으로 자리를 잡던 무렵에는 이름값을 했다. 천안역과 그때의 천안시청 사이에 패션 상점 약 200개가 들어섰고, 주말이면 옷을 사러 온 인파가 길을 메웠다. 그 시절 이 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을 젊음의 거리라 부른다.

번화가의 수명은 길지 않았다. 2005년을 전후로 천안시청이 불당동으로 옮겨 가고, 신부동에 백화점이 들어서고, 두정동에 새 택지가 열리면서 손님들은 조금씩 다른 길로 빠져나갔다. 패션 상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사이, 이 거리에 남은 사람들은 2006년 상인회를 꾸려 천안 명동 패션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상가 등록을 했다. 이듬해인 2007년 9월부터는 주말 저녁마다 명동 루비 거리 축제를 열어 사람을 다시 불러보려 했다.

Artwork by alleymag.

그 노력이 거리를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패션 상점이 있던 자리에, 이번에는 다른 간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명동길 47번지, CGV 천안이 들어선 건물 5층에는 천안중진작가회 대표를 지낸 화가 변영환이 명동갤러리라는 이름의 공간을 열었다. 전시실만 70평에 이르는 이 공간에서, 변영환은 1970~80년대 대흥동이 천안의 정치와 경제, 문화를 모두 끌어안던 중심지였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250평 규모의 이 공간에는 전시실 말고도 아트살롱이라는 체험 공간과 개인 화실 여섯 곳이 함께 들어서 있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전시하고, 그 자리에서 작품을 거래까지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명동갤러리는 올해 봄 천안 명동, 예술로 다시 숨 쉬다라는 제목으로 시·도 미술교류전을 열었고, 지금은 천안의 갤러리 네 곳이 이 거리를 중심으로 연합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8월 초에는 또 다른 전시가 같은 자리에서 막을 올렸다. 프로젝트10·2026 천안중진작가전, 제목은 낯선 숲을 걷다였다. 강우석, 고성희, 김근배, 김성준, 김재선, 민성동, 박정옥, 변영환, 여태명, 이영하. 한평생 붓과 돌, 유리와 문자를 다뤄온 열 명의 중진 작가가 8월 4일부터 18일까지 같은 공간에 작품을 걸었다. 11일 저녁 5시에는 작가들과 문화예술 관계자가 모이는 오프닝 행사도 열렸다.

Artwork by alleymag.

전시 초대글에서 변영환은 콘텐츠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요즘을 짚었다. 모니터 화면을 채운 자극적인 이미지가 시선을 붙잡지만 그 끝에는 공허함이 남는다며, 눈을 유쾌하게 하고 머릿속을 상쾌하게 할 볼거리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 답을 찾아 헤매는 일이 미술가의 숙명일 수 있다며, 방황과 모색이라는 말을 다시 꺼내 들었다. 전시된 작품 중 하나인 강우석의 산정에서 백구는 목줄을 끊고 낯선 산으로 들어간 흰 개가 길을 잃고 헤매다 정상에 올라서는, 그리고 다시 현실로 내려오는 장면을 한 화면에 담았다. 떠남과 방황, 그리고 돌아옴. 전시 제목처럼, 이 골목의 최근 몇 해도 그런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가 떨어지면 거리는 또 다른 얼굴을 보인다. 문화로를 따라 포장마차 간판을 내건 가게들이 하나둘 불을 켜고, 야외 테이블에 의자가 놓인다. 낮 동안 조용하던 골목이 저녁에는 술잔 부딪는 소리로 채워진다. 오래 이 거리를 다닌 이들은 이쪽을 그냥 포차거리라 부른다.

그 사이사이, 조금 다른 풍경도 섞여 든다. 천안역 근처로 일자리를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식당과 가게들이 이 블록 안에 조금씩 자리를 넓혀 왔다. 간판의 글자들이 한글과 다른 문자를 나란히 쓰기 시작한 지도 얼마간 되었다. 아무도 크게 주목하지 않는 사이에 거리 스스로 먼저 다른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던 셈이다.

Artwork by alleymag.

패션 상점들이 떠난 자리를 두고 오랫동안 이 거리를 설명하는 말은 쇠락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거리를 메운 간판들을 하나씩 세어 보면, 떠난 자리보다 새로 들어온 자리가 더 많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야장에서 고기를 굽는 사람, 지하 LP바에서 음악을 트는 사람, 낯선 언어로 된 메뉴판을 내건 사람. 이들 모두가 같은 블록 안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이 거리를 다시 쓰고 있다.

행정 서류에서 이 거리는 명동대흥로라는 이름으로 등록돼 있다. 천안시가 지정한 상점가 목록에 신부문화거리, 두정동, 천안역 지하상가와 나란히 이름을 올린 공식 명칭이다. 사람들이 입으로 부르는 명동거리와, 서류에 적힌 명동대흥로. 같은 골목을 가리키는 두 개의 이름이 지금도 함께 쓰이고 있다.

명동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 다만 그 이름이 가리키는 풍경은 이제 예전 사진 속의 그것과 다르다. 번화가였던 시절의 기억과, 지금 막 자리를 잡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이 같은 간판 아래 겹쳐 있다. 이 거리가 다음에 어떤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문화로의 노포
eiru2004가 문화로의 노포 석산장을 찾아 찍은 사진입니다. 4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킨 벽돌 건물 외관과, 여름휴가 안내문이 붙은 숯불갈비 간판 글씨를 가까이서 담았습니다.eiru2004가 문화로의 노포 석산장을 찾아 찍은 사진입니다. 4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킨 벽돌 건물 외관과, 여름휴가 안내문이 붙은 숯불갈비 간판 글씨를 가까이서 담았습니다.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문화로 30 · 2026.09 / 사진 eiru2004 · https://blog.naver.com/eiru2004/224424615333 eiru2004가 문화로의 노포 석산장을 찾아 찍은 사진입니다. 4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킨 벽돌 건물 외관과, 여름휴가 안내문이 붙은 숯불갈비 간판 글씨를 가까이서 담았습니다. 패션 거리였던 시절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이런 간판들이 지금 이 거리의 얼굴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SCENE 02 : 저녁의 포차거리
k5727710이 문화로의 포차거리를 찾아 찍은 사진입니다. 노란 플라스틱 의자와 천막 조명이 늘어선 가게 앞으로, 옆 건물의 통닭집 간판까지 이어지는 밤거리가 담겼습니다.k5727710이 문화로의 포차거리를 찾아 찍은 사진입니다. 노란 플라스틱 의자와 천막 조명이 늘어선 가게 앞으로, 옆 건물의 통닭집 간판까지 이어지는 밤거리가 담겼습니다.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문화로 8 · 2026.07 / 사진 k5727710 · https://blog.naver.com/k5727710/224350512737 k5727710이 문화로의 포차거리를 찾아 찍은 사진입니다. 노란 플라스틱 의자와 천막 조명이 늘어선 가게 앞으로, 옆 건물의 통닭집 간판까지 이어지는 밤거리가 담겼습니다. 패션 상점들이 떠난 자리에, 이제는 이런 야장 간판들이 저녁의 공기를 채운다고 적었습니다.
명동 시장(명동거리)은 1960년대부터 천안역과 옛 천안시청 사이 일원에 형성된 상권으로, 2005년 전후 천안시청 이전과 신흥 상권 확산으로 쇠퇴했다. 2006년 상인회가 '천안 명동 패션 시장'으로 등록했고 2007년 9월부터 거리 축제를 열었다. 명동갤러리·변영환 관련 서술은 2026년 보도를 인용했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사실이 있으면 내용을 갱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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