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후암동) 카페가 넘어오는 속도
경리단길과 이태원의 임대료가 오르자 그 자리를 채우던 것들이 흘러넘쳤다. 해방촌을 지나 이제는 후암동의 낡은 집 한 채까지 밀려들어온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12
- 골목
- 서울 후암동

이태원과 경리단길의 임대료가 오르면서 그 거리를 채우던 가게들이 자리를 비켜야 했다. 비슷한 공기를 원하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낮은 해방촌으로, 그리고 다시 후암동 쪽 골목으로 흘러들었다. 상권이 넘치면 가장 먼저 채워지는 것은 가장 가까운 빈자리다.
후암동에는 그 빈자리가 유난히 많았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적산가옥과 해방 이후 올라간 집들이 뒤섞인 저층 주거지. 큰 공사가 더뎠던 탓에 오래된 집의 골격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골격은 지금 카페 자리로 다시 쓰이고 있다.
지붕은 그대로 두고
기와지붕을 얹은 일본식 가옥 한 채가 카페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안다. 벽을 허물지 않는다. 지붕의 각도도, 창틀의 위치도 손대지 않는다. 그 골격 안에 커피 머신을 들이고 의자를 놓을 뿐이다. 낡은 집의 겉모습은 그대로 두고 쓰임만 바꾸는 방식, 이 동네 카페들이 대체로 고르는 길이다.

그래서 후암동의 골목을 걷다 보면 낡은 간판과 새 간판이 한 벽에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을 자주 만난다. 오래된 공간의 흔적 위로 이제 막 문을 연 카페의 조명이 걸린다. 어느 쪽도 상대를 밀어내지 않은 채로 같은 벽을 나눠 쓴다.
트럭과 유모차가 같은 골목을 쓴다
문제는 골목의 폭이다. 이 동네 골목은 애초에 자동차를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좁은 골목 안쪽까지 짐을 실은 트럭이 들어오면 그 뒤로 지나가려던 사람은 몸을 벽에 붙이고 기다려야 한다. 오래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불편이지만, 처음 걸어보는 사람에게는 낯선 긴장이다.

그 골목에서 마주치는 두 걸음의 속도는 분명히 다르다. 짐을 지고 오르막을 오르는 걸음과, 사진을 찍으려 잠시 멈춰 서는 걸음. 이 둘이 같은 골목, 같은 시간에 섞여 있다는 사실이 지금 후암동의 풍경을 말해준다.
내려다보는 자리
골목 가장 높은 자리에는 새로 생긴 카페의 옥상 테라스가 있다. 그 난간에 기대면 방금 걸어 올라온 낮은 지붕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누군가에게는 사진 찍기 좋은 전망이고, 누군가에게는 매일 보는 익숙한 동네 풍경이다. 같은 자리에서 보는 같은 풍경인데, 그걸 바라보는 사람의 거리는 서로 다르다.
임대료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모이는 건 아니다. 오래된 골목이 가진 불편함, 그러니까 좁고 가파르고 차가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바로 그 특징이 역설적으로 매력이 되기도 한다. 반듯하게 정리된 신상권에서는 느낄 수 없는 굴곡이 여기에는 아직 남아 있다.

그래서 이 골목의 변화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임대료가 오르면 새로운 자본이 들어오고, 그 자본이 들어오면 다시 임대료가 오른다. 지금 이 골목이 서 있는 지점은 그 순환의 초입에 가깝다. 아직은 오래된 집과 새 카페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한 벽을 나눠 쓰는 단계라는 뜻이다.
낡은 집이 카페가 되는 속도를 누구도 정확히 재지 못한다. 다만 그 속도가 이 골목이 가진 경사만큼 가파르다는 것은, 여기를 걸어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그 경사가 언제까지 이런 속도를 버텨낼지는,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