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후암동) 오르는 이유가 바뀐 계단
두터운 바위에 자손을 빌던 자리에,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참배길이 났다. 그 계단을 지금은 전혀 다른 이유로 오른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서울 후암동

후암동이라는 이름은 마을에 있던 바위 하나에서 왔다. 두텁바위라고 불린 그 바위는 둥글고 두터웠는데, 자손이 귀한 사람들이 몰래 찾아와 자손 얻기를 빌던 자리였다고 전한다. 두텁의 옛말은 두꺼비였다니, 이 동네의 이름은 처음부터 바위를 향한 간절한 손짓에서 시작된 셈이다.
그 이름이 늘 지금 모습으로 불린 것은 아니다. 1914년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이 일대는 삼판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후암동이라는 원래 이름을 되찾은 것은 1946년의 일이다. 이름 하나를 두고도 이 동네는 한 번 잃었다가 되찾는 시간을 거쳤다.

오르기 위해 만든 계단
남산 자락으로 올라붙은 이 동네의 중심에는 계단이 있다. 108개의 계단. 지금은 관광객도 주민도 아무렇지 않게 오르내리지만, 이 계단이 처음부터 산책을 위해 놓인 것은 아니었다. 1943년 일제가 전몰장병을 추모하겠다며 지은 경성호국신사, 그 신사로 올라가는 참배길이 이 계단의 시작이다. 아래쪽에 살던 사람들이 좀 더 수월하게 참배할 수 있도록 놓은 길이었다.
지금 그 신사는 흔적도 없다. 터만 남았고, 그 자리 인근에는 복지시설이 들어섰다. 참배하러 가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함께 사라졌다. 남은 것은 계단뿐이다. 오르는 사람은 여전히 있지만, 무엇을 향해 오르는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경사가 삼킨 세월
가파른 계단을 매일 오르내리는 일은 누구에게도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2018년, 계단 한가운데 폭 2미터 자리를 파내 15인승 경사형 승강기를 놓았다. 이제는 양손 가득 짐을 든 사람도, 무릎이 예전 같지 않은 사람도 단추 하나로 그 높이를 오른다. 편해졌다고 해서 이 동네의 경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승강기에서 내리면 또 다른 오르막이 기다린다.

계단 옆 골목에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집과 해방 이후 올라간 집이 나란히 서 있다. 낡은 기와지붕 아래로 빨래가 널리고, 그 옆에는 누군가 최근에 새로 칠한 담장이 있다. 어느 집이 먼저고 어느 집이 나중인지는 걸어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게 아니라 뒤섞여 버린 동네라서다.
넘어온 사람들
최근 몇 년 사이 이 골목에는 전에 없던 발걸음이 늘었다. 이태원과 경리단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해방촌을 거쳐, 이제는 후암동 골목 안쪽까지 들어온다. 오래된 집 한 채가 카페가 되고, 낡은 간판 옆에 새 간판이 걸린다. 변화의 속도는 걸어 보면 몸으로 느껴진다.

옛 미군기지 터에 커다란 공원이 들어설 거라는 기대도 이 동네를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녹지를 향한 기대가, 완성되지 않은 채로도 이미 땅값과 발걸음을 끌어당기고 있다. 공원이 실제로 열리기 전부터 골목의 표정이 먼저 바뀌는 셈이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걸음도 제각각이다.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든 주민의 걸음과, 카메라를 목에 건 방문객의 걸음은 속도부터 다르다. 같은 108개의 단을 밟고 있어도 두 사람이 보는 것은 서로 다른 풍경일지 모른다.
두터운 바위를 향해 빌던 손짓도, 신사를 향해 오르던 발걸음도 이제는 없다. 계단은 그대로 남아서 전혀 다른 이유를 가진 사람들을 계속 올려 보낸다. 다음에 이 계단을 오르는 사람은 또 무엇을 향해 걷고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