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전시장) 아홉 시를 넘기면, 다른 시장이 열린다
짐을 부리는 상인들의 아침과, 줄을 서는 사람들의 낮은 같은 골목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산다. 그 사이 어느 한 골목은 아예 미션 수행의 무대가 되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13
- 골목
- 부산 부전시장

문을 일찍 여는 가게는 많지만, 정작 이 골목이 북적이기 시작하는 시간은 따로 있다. 아홉 시를 넘기지 않으면 구경할 것이 많지 않다는 말이 방문객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돈다. 그 전까지는 장을 보러 온 사람과 물건을 받는 상인들만의 시간이다.
아홉 시를 넘기고 나면 완전히 다른 골목이 열린다. 평일 월요일 낮인데도 간판 앞으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놀랐다는 기록이 여럿이다. 주말이면 그 줄은 한층 길어진다. 예전엔 재래시장이라고 하면 오래되고 눅눅하고 불편한 곳을 먼저 떠올렸는데, 요즘 와서 보면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고 적은 사람도 있다.

줄은 특정 가게 앞에서만 길어지는 것이 아니다. 몇 걸음 간격으로 떡갈비집과 김밥집과 어묵집이 저마다 줄을 세우고 있어서, 처음 온 사람은 어느 줄이 어느 가게 줄인지부터 헷갈린다. 한 집은 한 사람당 포장 개수를 제한하는 안내문을 벽에 붙여 두었다. 일행이 대표로 줄을 서고 나중에 합류하는 것도 금지다. 손님이 몰리는 골목에서나 필요한 규칙이다.
장보기의 골목과 먹거리의 골목
같은 통로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둘로 갈린다. 카트를 끌고 와 생선과 채소를 담는 사람과, 포장 용기를 손에 들고 다음 줄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어깨를 스친다. 전자는 가격표를 들여다보고, 후자는 웨이팅 시간을 검색한다. 둘 다 같은 골목을 걷고 있지만 보고 있는 것은 다르다.

이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봉투 하나다. 부산관광공사의 자유여행 상품 공모전에서 선정됐다는 지역 미션 투어가 이 시장을 통째로 무대로 쓴다. 참가자는 근처 숙소에서 비밀번호로 탐험 키트를 받아, 시장 곳곳에 숨은 단서를 따라 걷는다. 키트 안에는 초대장과 힌트 카드, 암호 해독기가 들어 있다. 봉투를 연 사람에게는 생선 대신 다음 단서가 쥐어진다.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같은 말을 한다. 그냥 시장을 구경하는 것보다 이야기를 따라 움직이니 골목 하나하나를 더 자세히 보게 된다고. 장을 보러 온 사람에게는 통로일 뿐인 자리가, 미션을 쥔 사람에게는 단서가 숨어 있을지 모르는 자리가 된다. 같은 벽, 같은 간판이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된다.

둘은 부딪히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골목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벽부터 장을 봐 온 단골은 여전히 같은 시간에 같은 가게를 찾고, 줄을 서는 사람들은 그 단골들 틈을 비집고 지나간다. 미션을 쫓는 참가자도 생선 좌판 앞을 지나며 사진을 찍고, 장을 보던 사람도 긴 줄을 흘끗 보고 지나간다. 서로의 용건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만 스친다.
시장이 통째로 게임판이 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가질 법도 하다. 그런데 정작 이 골목에서는 그런 긴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장보기의 시간과 먹거리의 시간, 그리고 미션의 시간이 같은 통로를 나눠 쓰는 동안에도, 가게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것을 판다. 바뀐 것은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용건뿐이다.
아홉 시 이전의 골목과 아홉 시 이후의 골목, 그리고 단서를 쫓는 사람들의 골목. 이 셋이 하루 안에 번갈아 들어선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시장이 아직 한 가지 모습으로 굳지 않았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