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전시장) 짐을 부린 자리에서, 없는 것 없는 골목이 되었다
피난민의 보따리가 부전역 앞에 내려진 뒤, 이 골목은 생선과 명란김밥과 수제 양과자가 나란히 쌓이는 여섯 개의 시장이 되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13
- 골목
- 부산 부전시장

비가 오는 평일, 서면 네거리에서 한 블록만 꺾으면 이 건물이 나온다. 희미해진 간판에 '인삼시장'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고, 그 아래로 차양이 줄지어 이어진다. 우산을 쓴 사람 하나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이에도, 건물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서 장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골목의 시작은 시장이 아니었다. 6·25전쟁 이후, 기장과 서생, 일광, 월내 같은 부산 근교에서 농수산물을 이고 온 보따리 장수들이 동해남부선 부전역 앞에 짐을 풀고 좌판을 벌였다. 사람들은 그 노점을 기장골목시장이라 불렀다.

봇짐 하나가 자리를 잡자 다른 봇짐들이 뒤따라 모였다. 기장골목시장은 부전시장이 되었고, 그 곁으로 부전상가와 서면종합시장, 부전인삼시장, 부전종합상가, 부산전자종합상가가 차례로 들어서며 여섯 개의 시장이 한 이름 아래 모였다. 지금 이 일대를 부르는 이름이 부전마켓타운이다.
장사가 자라나 미로가 되었다
입구에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길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건물 하나에 통째로 들어앉은 시장이 아니라, 좁은 통로가 끝없이 이어 붙은 모양이라서 처음 온 사람은 방금 지나온 길과 지금 선 길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그 미로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간판만 세어봐도 짐작이 간다.
수산물과 건어물로만 이 골목을 설명하면 나머지 반이 사라진다. 건어물 가게 옆에 수입품점이 있고, 그 옆에는 정육점과 옷을 줄여주는 집이 나란하다. 조금 더 걸으면 포목과 이불을 파는 집, 그릇가게와 서점, 당구장이 차례로 나온다. 전자제품 매장과 채소가게도 이 미로의 어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떡갈비집 앞에 줄을 서던 사람이 몇 걸음 옮기면 손칼국수집 문을 열고, 명란김밥을 포장한 손엔 어느새 수제 양과자 봉투가 들려 있다. 초밥집 수조에서는 활어가 헤엄치고, 그 골목 끝에서는 사람들이 봉투 하나를 손에 쥔 채 서 있기도 하다. 봉투 안에 든 것은 생선이 아니라 다음 단서가 적힌 쪽지다.
지하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길
이 골목은 땅 위에서만 이어지지 않는다. 부전역과 서면역 사이는 지하상가로 연결돼 있어서,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 없이 걸어서 오갈 수 있다. 지상의 간판들이 지하에서 다시 다른 얼굴로 이어지는 셈이다.

짭짤한 먹거리들 사이로 단 것들도 쌓여 있다. 유과와 떡이 쟁반마다 색깔별로 나뉘어 놓였고, 그 옆 수레에는 과일을 넣은 모찌가 오전 한때만 나왔다가 사라진다. 이 골목은 끼니를 해결하는 자리만이 아니라, 잠깐 들러 입이 심심한 것을 채우고 가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이 골목에는 누가 드나드는가
이른 아침에는 새벽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늦은 오전부터는 먹거리를 찾아온 사람들이 같은 통로를 지난다. 두 발걸음의 속도가 다르고 드나드는 시간도 다른데, 결국은 같은 좁은 길 위에서 어깨를 스친다.
칠십여 년 전 보따리 하나가 내려졌던 그 자리에, 지금은 여섯 개의 이름이 포개져 있다. 다음 보따리는 또 무슨 이름이 되어 이 골목에 내려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