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6 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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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스팟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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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약령시장) 약방 사이로, 다른 발걸음이 끼어들었다

반세기 넘게 약재 냄새로만 설명되던 골목에, 몇 해 전부터 전혀 다른 걸음걸이가 섞여 들어왔다. 상인들은 그 발걸음을 반기면서도, 동시에 낯설어한다.

글
alleymag.
발행
2026.10.13
골목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약령시장
약방 사이로, 다른 발걸음이 끼어들었다
Artwork by alleymag.

한약방이 늘어선 골목 중간에, 나무 서랍장을 벽 가득 채운 가게 하나가 있다. 약재를 재던 서랍에는 이제 약 대신 원두가 들어 있고, 서랍 위로는 종이봉투에 싸인 조명이 매달려 은은한 빛을 흘린다. 이름은 커피한약방. 메뉴판에는 수정과를 넣은 커피까지 있다. 옆집 한약방 주인이 창 너머로 이 가게를 흘깃 보는 모습은, 이 골목에서 더는 드문 장면이 아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 거리를 찾는 얼굴은 대체로 비슷했다. 약을 지으러 온 중장년, 반찬거리를 사러 나온 동네 사람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거리의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이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려졌다. 스무 살 안팎의 방문객들이 약재 좌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옛 극장을 고친 카페의 계단식 좌석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약령시의 손님과 경동1960의 손님이 같은 골목, 다른 층에서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다른 시장의 소문이 이 시장으로 흘러온 날

이 유입에는 이 골목 바깥에서 시작된 사연도 섞여 있다. 지난해 다른 전통시장에서 벌어진 바가지 요금 논란이 뉴스를 타면서, 그 반사이익으로 경동시장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다녀간 이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가격에 데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는, 정찰제에 가깝게 운영되는 이곳의 좌판이 오히려 안심하고 들를 수 있는 자리로 보였던 모양이다. 소문은 시장과 시장 사이를 건너다니고, 그 소문을 타고 온 걸음이 이 골목의 풍경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Artwork by alleymag.

이 거리는 원래 젊은 층과 거리가 먼 동네로 여겨졌다. 오래 다닌 이들 사이에서는 어르신들이 하루를 보내러 모이는 동네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런 거리에 또래보다 한참 어린 얼굴들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것이니, 처음에는 상인들도 손님도 서로를 낯설어했을 법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둘은 서로를 비켜 가는 법을 익혔다. 약재를 사러 온 어르신은 여전히 좌판 앞에서 흥정을 하고, 사진을 찍으러 온 젊은 손님은 그 흥정을 방해하지 않을 자리를 찾아 카메라를 든다.

청년몰과 경동1960이 들어선 층은 이 섞임을 물리적으로도 보여준다. 1층과 지하의 좌판 사이를 걷다가 계단을 올라가면 전혀 다른 공기가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방문객들은 입을 모아 전한다. 약재 냄새가 밴 통로에서 몇 걸음, 계단 몇 개를 오르면 빵 굽는 냄새와 커피 냄새로 바뀐다는 것이다. 같은 건물 안에서 두 세대가 서로 다른 층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Artwork by alleymag.

노포는 노포대로, 새 가게는 새 가게대로

이 변화가 기존 상인들에게 달갑지만은 않을 거라 짐작하기 쉽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그 짐작과는 결이 다르다. 간짜장과 탕수육을 수십 년째 같은 방식으로 내는 중식당도, 청국장과 보리밥을 아침마다 새로 끓이는 식당도 여전히 줄을 서야 자리를 얻는다. 새로운 손님이 늘었다고 해서 오래된 손님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두 줄이 나란히 길어졌다는 쪽에 가깝다.

달라진 것은 그 줄을 서는 이들의 평균 나이다. 손칼국수와 수육을 내는 한 노포 앞에는 이제 교복을 벗은 지 얼마 안 된 얼굴들도 섞여 선다. 방송에 소개된 뒤로 발길이 늘었다는 가게도 있지만, 입소문을 타고 늘어난 가게도 적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손님들이 약을 지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 노포 하나를 목적지로 삼고 이 골목까지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시장 전체를 지나칠 필요 없이, 노포 하나만 보고 들어와 노포 하나만 보고 나가는 걸음도 늘었다.

청년몰에 입주한 이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베이커리와 소품 가게, 디퓨저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 대다수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개업 초기의 어색함을 지나, 지금은 아래층 상인들과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공실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작은 가게들이 단순히 스쳐 가는 유행이 아니라 이 골목의 생태 안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쪽을 가리킨다.

Artwork by alleymag.

물론 모든 상인이 이 변화를 같은 속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약재만 다뤄온 이들 중 일부는 카페와 사진 명소로 북적이는 거리가 낯설다고도 말한다. 장을 보러 온 손님과 구경하러 온 손님이 뒤섞이면서 좁은 통로가 더 붐비게 됐다는 불편도 있다. 변화에는 늘 둘 다 섞여 있다. 반가움과 낯섦이 같은 자리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그럼에도 이 거리를 오래 지켜본 이들은 지금의 흐름을 나쁘게만 보지 않는다. 한 자리에서 수십 년을 버텨온 가게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는 동안, 그 곁에서 전혀 다른 손님층이 새로 생겨나는 일은 흔치 않다. 약을 지으러 오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 한, 그리고 그 옆에서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굽는 손이 늘어나는 한, 이 골목은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을 것이다. 약재 냄새와 커피 냄새가 같은 통로에서 섞이는 그 어색한 공존이, 어쩌면 이 시장이 다음 세대에도 살아남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옛 약장이 조명이 된 자리
제기동 토박이라 밝힌 onahan1988_official이 커피한약방 내부를 촬영했습니다. 한약재를 재던 나무 서랍장이 벽을 가득 채우고,
▲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 2026.08 / 사진 onahan1988_official · https://blog.naver.com/onahan1988_official/224367628516 제기동 토박이라 밝힌 onahan1988_official이 커피한약방 내부를 촬영했습니다. 한약재를 재던 나무 서랍장이 벽을 가득 채우고, 그 위로는 약봉지 모양의 조명이 은은하게 빛을 흘립니다. 한약방이었던 공간의 구조를 거의 그대로 남긴 채 카페로 쓰고 있다는 것이 사진 한 장에서 바로 읽힙니다.
같은 상 위에 놓인 오래된 메뉴들
thederuwa가 경동시장 안 노포 식당에서 받은 상차림을 기록했습니다. 손칼국수와 보쌈, 빈대전을 한 상에 올린 사진과 연탄불에 구운 돼지갈비를 따로 담은 사진입니다.thederuwa가 경동시장 안 노포 식당에서 받은 상차림을 기록했습니다. 손칼국수와 보쌈, 빈대전을 한 상에 올린 사진과 연탄불에 구운 돼지갈비를 따로 담은 사진입니다.
▲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 · 2026.10 / 사진 thederuwa · https://blog.naver.com/thederuwa/224431661845 thederuwa가 경동시장 안 노포 식당에서 받은 상차림을 기록했습니다. 손칼국수와 보쌈, 빈대전을 한 상에 올린 사진과 연탄불에 구운 돼지갈비를 따로 담은 사진입니다. 같은 식당가를 찾은 손님이 늘었어도, 상에 오르는 메뉴와 조리 방식은 수십 년째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2026년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올라온 네이버 블로그 방문 기록 59건과, 경동시장·서울약령시장에 관한 공식 자료를 종합했다. 특정 가게를 찾는 손님의 연령대나 매출 변화에 관한 서술은 공식 집계가 아니라 다녀간 이들의 체감과 기록을 바탕으로 썼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내용이 있으면 갱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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