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진골목) 짜장면 냄새 옆에 원두 냄새가 걸렸다
60년 된 중국집 간판과 이제 막 내건 로스터리 간판이 같은 골목, 같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본다. 화교거리라 불리던 자리에 커피 냄새가 섞여 들고 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대구 진골목

진골목은 오래전부터 화교거리로도 불렸다. 19세기 말 화교들이 이 일대에 정착하면서 중국집들이 자리를 잡았고, 그 간판은 지금도 몇 개가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같은 골목 담장 아래로 전혀 다른 간판들이 하나둘 늘었다. 로스터리 카페, 베이커리, 한옥을 개조한 프랜차이즈 커피점. 짜장면 냄새가 나던 자리에 원두 냄새가 섞이기 시작했다.
대구 종로 34-1, 명덕반점은 60년 된 화상 중국집이다. 원래는 지금은 폐업한 대구백화점 본점 맞은편에서 오래 영업하다가 약 10여 년 전 이 자리로 옮겨왔다. 물만두로 이름난 노포이자, 가지튀김을 만두 속처럼 채워 튀겨내는 메뉴로 단골을 붙잡는 집이다. 한 방문자는 명덕반점이 이 자리로 옮겨왔을 무렵 사촌 형님의 블로그에서 이 집을 처음 봤다고 적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이 간판은 추억의 연결고리에 가깝다.

한옥 담장 너머로 두 번째 간판
그 노포들과 멀지 않은 자리에, 베이커리 카페 오디너리하우스가 2호점을 열었다. 동성로 본점에 이어 낸 종로점으로, 스타벅스 대구종로고택점 맞은편이다. 층고가 높은 1층과 노키즈존으로 운영되는 2층, 책장이 열리면 안쪽 공간이 나오는 구성까지, 기존 화교거리의 분위기와는 결이 다른 가게다. 그리고 그 한옥 스타벅스 역시, 1919년 지어진 고택을 그대로 쓰면서 안에서는 사이렌 로고가 찍힌 컵을 내준다.

진골목길 12번지에는 로스터리 카페 하나가 더 있다. 주소 자체를 간판에 그대로 쓴 이 가게는 아늑한 우드톤 인테리어로 소문이 났다. 한 방문자는 사장이 직접 커피를 내리는 모습에서 창업과 운영에 대한 고민이 깊게 담긴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적었다. 커피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라는 말도 덧붙였다.
유명세는 쏠리고, 노포는 남는다
화교거리라는 수식은 요즘 주로 영생덕 같은 이름난 노포 중국집 하나로 수렴된다. 그 유명세 옆에서 명덕반점처럼 작은 중국집들은 관광객보다는 여전히 이 동네를 아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유지된다. 화려한 신식 중식당이 아니라 오래된 분위기가 그대로인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이다.

새로 들어온 카페들도 이 골목의 역사를 완전히 지우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오디너리하우스는 자신을 '대구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대구 종로 진골목'의 2호점이라 소개하고, 스타벅스는 기와와 창살을 그대로 둔 채 영업한다. 간판은 바뀌었지만 건물의 뼈대와 골목의 좁은 폭은 그대로다. 새 가게들도 이 좁은 폭에 맞춰 들어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진골목을 걷는 일은 두 개의 시간을 동시에 지나는 일이 된다. 한쪽 담장에는 수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킨 중국집 간판이, 다른 쪽 담장에는 이제 막 걸린 로스터리 간판이 나란히 서 있다. 둘 중 어느 쪽도 아직 밀려나지 않았다. 다만 이 좁은 골목이 앞으로 몇 해나 그 둘을 동시에 품을 수 있을지는, 다음에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어느 간판 앞에 더 오래 멈춰 서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