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왕십리 곱창골목) 낮과 밤이 다른 골목
아침 여덟 시에 문을 여는 가게와 오후 네 시에야 셔터를 올리는 가게가 한 골목에 함께 있다. 같은 거리인데, 해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거리가 된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13
- 골목
- 서울 왕십리 곱창골목

오전 아홉 시, 왕십리 곱창골목은 의외로 조용하다. 간밤의 소란이 무색하게 셔터가 내려간 가게들 사이로 커피 로스팅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낮게 울린다.
이 거리의 카페 한 곳은 평일 오전 여덟 시에 문을 연다. 반면 곱창집 상당수는 해가 뉘엿해져야 불을 켠다. 어떤 집은 오후 네 시, 또 어떤 집은 오후 다섯 시가 돼서야 첫 손님을 받는다.
물론 예외는 있다. 거리를 대표하는 한 곱창집은 낮 열두 시부터 문을 열어 점심 손님을 받는다. 그래도 정작 줄이 길어지는 시간은 퇴근 무렵부터다.
거리 안쪽의 한 노포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낮 열두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문을 연다. 월요일 하루만은 모든 조명이 꺼진 채 골목의 다른 쉼표가 된다.

그래도 전체 그림을 보면 낮에 문을 여는 집보다 저녁에야 문을 여는 집이 훨씬 많다. 이 거리가 본래 밤에 북적이던 포장마차 거리였다는 사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에 밴 리듬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불이 옮겨붙는 시각
숯불과 치킨을 함께 파는 한 가게는 평일 오후 네 시, 토요일은 오후 한 시가 돼서야 문을 연다. 저녁 시간대는 예약 없이 가면 자리를 못 잡을 수 있다는 안내가 입구에 붙어 있을 정도다.
같은 시각, 아침부터 문을 열었던 카페는 저녁 일곱 시 반이면 마지막 주문을 받는다. 곱창집들이 막 분주해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시간에, 카페는 하루를 정리하고 불을 끌 준비를 한다. 두 생활권이 교대하듯 자리를 넘겨받는 셈이다.

주말에는 사정이 또 다르다. 카페는 평일보다 늦은 오전 열한 시에야 문을 열고, 숯불 바베큐를 파는 가게도 토요일은 오후 한 시로 개점 시간을 당긴다. 평일에는 두 시간 넘게 벌어져 있던 간격이, 주말에는 조금 더 가까워지는 셈이다.
줄은 두 번 생긴다
저녁 다섯 시 반이 되기 전부터 몇몇 가게 앞에는 대기 기기가 놓이고 줄이 생긴다. 어느 곱창집은 원격으로 줄을 걸어 두고 거리를 산책하다 돌아오라고 안내하고, 또 다른 곱창집은 예약하지 않으면 테이블을 보장할 수 없다고 미리 알린다. 모두 다른 가게들이지만, 줄이 생기는 시간만은 거의 겹친다.

줄을 서는 얼굴도 시간마다 다르다. 저녁 일찍부터는 퇴근한 회사원들이 자리를 채우고, 밤이 깊어질수록 근처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늘어난다. 숯불 바베큐를 파는 가게 쪽은 특히 그렇다. 나이도 복장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같은 줄 안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낮의 골목과 밤의 골목은 같은 간판 아래 있으면서도 서로 마주칠 일이 별로 없다. 아침 손님이 돌아갈 즈음에야 저녁 손님이 모여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 번, 이 거리는 다른 얼굴로 문을 연다.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은 이 거리를 반쪽만 알게 된다. 낮에만 들른 손님은 조용한 카페 거리로 기억하고, 밤에만 들른 손님은 고기 연기 자욱한 포차 거리로 기억한다. 양쪽을 다 지나 봐야 이 골목의 생김새를 온전히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