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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춘천 육림고개) 극장은 문을 닫았지만, 고개는 남았다

영화관 하나가 동네의 이름이 되는 일은 흔치 않다. 춘천 육림고개는 그 드문 경우 가운데 하나다. 극장이 사라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또 한 번 이 거리를 일으켜 세웠다.

글
alleymag.
발행
2026.10.05
골목
춘천 육림고개
극장은 문을 닫았지만, 고개는 남았다
Artwork by alleymag.

길 이름이 극장에서 왔다는 동네는 흔치 않다. 춘천 중앙시장에서 언덕 하나를 넘어가면 나오는 이 고갯길의 이름은 육림고개다. 1967년, 그 고갯마루에 육림극장이 문을 열었다. 중앙시장과 극장을 잇는 고개라는 뜻으로 사람들은 이 길을 육림고개라 부르기 시작했다. 간판 하나가 길 전체의 이름이 된 셈이다.

1980년대의 육림고개는 춘천에서 가장 북적이는 거리였다. 육림극장과 소양극장이 나란히 간판을 내걸었고, 중앙시장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고개를 끊임없이 오갔다. 영화를 보러 온 사람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람이 같은 자리에 섞여 있었다. 이 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그 시절 춘천에서 가장 생기 있는 곳으로 간다는 뜻이었다.

Artwork by alleymag.

그 활기가 영원히 가지는 않았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단관 극장은 설 자리를 잃었다. 육림극장도 다르지 않았다. 버티고 버티던 극장은 결국 2006년 가을 문을 닫았다. 극장이 꺼지자 고개를 넘나들던 발걸음도 함께 줄었다. 이름을 준 자리가 사라졌는데도 이름만은 그대로 남아, 한동안 이 고개는 자기 이름의 유래를 아는 사람만 드문드문 찾는 거리가 되었다.

개못안에서 죽림동으로

이 고개가 걸쳐 있는 동네의 이름도 사연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은 죽림동이라 부르지만, 정작 이 동네에 대나무숲은 없다. 원래 이 일대는 못의 안쪽에 있다 해서 개못안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며 가연리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지금의 죽림동성당 부근에 있던 가연이라는 큰 못에서 따온 이름이었다고 전한다.

Artwork by alleymag.

1939년에는 대화정 2정목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1946년 일본식 지명을 한국식으로 고치는 작업 속에서 지금의 죽림동이 되었다. 못이 있던 동네가 대나무숲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경위는 정확히 전하지 않는다. 다만 이 동네가 가진 것 중 가장 오래 변하지 않은 것은, 이름이 두 번 세 번 바뀌는 와중에도 그 이름이 가리키는 땅은 늘 같은 자리였다는 사실이다.

극장의 이름을 물려받은 고개와, 못의 흔적을 지우지 못한 동네. 육림고개는 이 두 겹의 사연 위에 서 있다. 하나는 사람이 지은 간판에서 왔고, 다른 하나는 땅이 가진 물길에서 왔다. 둘 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극장은 헐렸고, 못은 메워졌다. 그런데도 두 이름은 여전히 이 거리를 부르는 말로 남아, 지나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Artwork by alleymag.

극장이 문을 닫고도 한동안 이 고개는 조용했다. 그러다 2015년, 춘천시가 이 고개의 일부 구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사라진 극장을 대신해 이번에는 젊은 상인들이 이 고개의 새 이름을 써 내려가려 했다. 그 이야기는 간판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은 가게가 몇 있다. 극장이 있던 시절부터 이 고개에서 장사를 해온 집들이다. 영화가 끝나면 쏟아져 나오던 사람들에게 뭔가를 팔던 그 손들이, 극장이 사라진 뒤에도 같은 자리에서 셔터를 올리고 내렸다. 이름이 두 번 바뀌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마 이런 손들일 것이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이름을 준 자리
kimnayeon151이 담은 육림고개의 옛 극장 건물입니다. 간판은 그대로 남아 있고, 바로 아래 골목 벽에는 영화 포스터를 본뜬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kimnayeon151이 담은 육림고개의 옛 극장 건물입니다. 간판은 그대로 남아 있고, 바로 아래 골목 벽에는 영화 포스터를 본뜬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중앙로77번길 · 2026.04 / 사진 kimnayeon151 · https://blog.naver.com/kimnayeon151/224255530452 kimnayeon151이 담은 육림고개의 옛 극장 건물입니다. 간판은 그대로 남아 있고, 바로 아래 골목 벽에는 영화 포스터를 본뜬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극장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그 흔적을 지우지 않으려는 손길이 느껴집니다.
SCENE 02 : 못이 있던 자리
roaddeep이 찍은 죽림동성당의 모습입니다. 뾰족한 첨탑과 돌로 쌓은 외벽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가연이라는 못이 있던 자리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roaddeep이 찍은 죽림동성당의 모습입니다. 뾰족한 첨탑과 돌로 쌓은 외벽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가연이라는 못이 있던 자리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죽림동 · 2026.08 / 사진 roaddeep · https://blog.naver.com/roaddeep/224365758128 roaddeep이 찍은 죽림동성당의 모습입니다. 뾰족한 첨탑과 돌로 쌓은 외벽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가연이라는 못이 있던 자리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이 성당의 묵직한 돌벽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이 글은 2026년 춘천 육림고개 일대에 올라온 네이버 블로그 방문 기록과, 육림고개의 역사를 다룬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사실이 있으면 내용을 갱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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