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육림고개) 극장은 문을 닫았지만, 고개는 남았다
영화관 하나가 동네의 이름이 되는 일은 흔치 않다. 춘천 육림고개는 그 드문 경우 가운데 하나다. 극장이 사라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또 한 번 이 거리를 일으켜 세웠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춘천 육림고개

길 이름이 극장에서 왔다는 동네는 흔치 않다. 춘천 중앙시장에서 언덕 하나를 넘어가면 나오는 이 고갯길의 이름은 육림고개다. 1967년, 그 고갯마루에 육림극장이 문을 열었다. 중앙시장과 극장을 잇는 고개라는 뜻으로 사람들은 이 길을 육림고개라 부르기 시작했다. 간판 하나가 길 전체의 이름이 된 셈이다.
1980년대의 육림고개는 춘천에서 가장 북적이는 거리였다. 육림극장과 소양극장이 나란히 간판을 내걸었고, 중앙시장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고개를 끊임없이 오갔다. 영화를 보러 온 사람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람이 같은 자리에 섞여 있었다. 이 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그 시절 춘천에서 가장 생기 있는 곳으로 간다는 뜻이었다.

그 활기가 영원히 가지는 않았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단관 극장은 설 자리를 잃었다. 육림극장도 다르지 않았다. 버티고 버티던 극장은 결국 2006년 가을 문을 닫았다. 극장이 꺼지자 고개를 넘나들던 발걸음도 함께 줄었다. 이름을 준 자리가 사라졌는데도 이름만은 그대로 남아, 한동안 이 고개는 자기 이름의 유래를 아는 사람만 드문드문 찾는 거리가 되었다.
개못안에서 죽림동으로
이 고개가 걸쳐 있는 동네의 이름도 사연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은 죽림동이라 부르지만, 정작 이 동네에 대나무숲은 없다. 원래 이 일대는 못의 안쪽에 있다 해서 개못안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며 가연리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지금의 죽림동성당 부근에 있던 가연이라는 큰 못에서 따온 이름이었다고 전한다.

1939년에는 대화정 2정목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1946년 일본식 지명을 한국식으로 고치는 작업 속에서 지금의 죽림동이 되었다. 못이 있던 동네가 대나무숲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경위는 정확히 전하지 않는다. 다만 이 동네가 가진 것 중 가장 오래 변하지 않은 것은, 이름이 두 번 세 번 바뀌는 와중에도 그 이름이 가리키는 땅은 늘 같은 자리였다는 사실이다.
극장의 이름을 물려받은 고개와, 못의 흔적을 지우지 못한 동네. 육림고개는 이 두 겹의 사연 위에 서 있다. 하나는 사람이 지은 간판에서 왔고, 다른 하나는 땅이 가진 물길에서 왔다. 둘 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극장은 헐렸고, 못은 메워졌다. 그런데도 두 이름은 여전히 이 거리를 부르는 말로 남아, 지나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극장이 문을 닫고도 한동안 이 고개는 조용했다. 그러다 2015년, 춘천시가 이 고개의 일부 구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사라진 극장을 대신해 이번에는 젊은 상인들이 이 고개의 새 이름을 써 내려가려 했다. 그 이야기는 간판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은 가게가 몇 있다. 극장이 있던 시절부터 이 고개에서 장사를 해온 집들이다. 영화가 끝나면 쏟아져 나오던 사람들에게 뭔가를 팔던 그 손들이, 극장이 사라진 뒤에도 같은 자리에서 셔터를 올리고 내렸다. 이름이 두 번 바뀌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마 이런 손들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