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원곡동 다문화거리) 한글 간판 하나가, 이 골목에서 버틴다
다섯 집 중 넷이 외국어 간판을 단 거리에서, 삼십 년 가까이 같은 자리를 지키는 한식집이 있다. 특구 안의 주민 다섯 명 가운데 넷이 외국인이 된 지금, 이 거리에서는 누가 원주민이고 누가 이방인인지부터 헷갈린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안산 원곡동 다문화거리

저녁 여섯 시, 원곡동 골목 안쪽의 한 식당에서는 여전히 김치찌개가 끓는다. 돼지고기와 서대구이를 파는 이 집은 간판부터 메뉴판까지 한글이다. 옆집은 러시아어 간판을 달았고, 그 옆은 중국어, 또 그 옆은 베트남어다. 한글 간판은 이 블록에서 오히려 드물다. 가게 이름은 그냥 '골목집'. 이 거리에서는 그 수수한 이름 자체가 하나의 이력이 된다.
이 거리를 걷다 보면 누가 이 동네의 원래 주인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 숫자로 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다문화마을특구 안에 사는 주민 2만1121명 가운데 1만7825명이 외국인이다. 다섯 명 중 넷이라는 뜻이다. 2019년 1월에는 안산시 전체에 107개국 8만6천여 명이 살았고, 그 가운데 57개국 2만1천여 명이 이 동네 하나에 모여 있었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간판을 세어 보지 않아도, 이 거리의 무게중심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는 걷는 내내 몸으로 느껴진다.

가게 수는 줄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거리가 비어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다문화거리에는 약 150에서 200여 곳의 음식점이 모여 있다. 인도네시아 음식점이 열 곳, 중국 음식점이 여덟 곳, 베트남과 파키스탄과 네팔 음식점이 각각 네 곳 안팎씩 자리를 채운다. 한 나라의 음식만 파는 거리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부엌이 한 블록 안에서 경쟁하듯 늘어서 있다. 빈 점포가 나면 그 자리는 길어야 몇 주 안에 다시 누군가의 가게로 채워진다고, 이 골목을 오래 드나든 이들은 말한다.

골목 초입의 중국 음식점은 아예 인도까지 밀고 나와 길가에 커다란 들통을 늘어놓는다. 간장에 조린 고기가 여섯 개의 통에서 각기 다른 색으로 끓고, 주인은 손님이 멈춰 설 때마다 뚜껑을 열어 보인다. 이런 가게 하나하나가 이 거리의 생계이자, 이 동네가 비어가지 않는 이유다. 하나의 간판이 내려가면 그 자리에 다른 나라 말로 된 또 다른 간판이 금세 올라간다는 것도, 이 거리에서 오래 장사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손님과 주인이 자리를 바꾸는 거리
한식집 사장에게는 이제 외국인 손님이 낯설지 않다. 공단에서 퇴근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음식을 먹으러 들르고, 반대로 한국인 손님이 쌀국수나 나시고랭을 먹으러 옆 골목으로 건너가는 일도 흔하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는, 그날 그 가게에 들어선 사람이 정한다. 저녁 손님이 들고 나는 짧은 몇 분 사이에도, 이 거리에서는 그렇게 역할이 수시로 뒤바뀐다.

그래서 이 거리의 진짜 변화는 간판이 몇 개나 외국어로 바뀌었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삼십 년 전 공단이 불러들인 사람들이 이제는 가게를 내고, 그 가게에서 한국인 손님을 맞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옆에서 한글 간판을 단 노포가 여전히 불을 켠다는 사실. 두 장면이 같은 블록 안에서 나란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 거리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