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6 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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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안산 원곡동 다문화거리) 국경이 없기로, 이 마을은 그렇게 정했다

안산역을 나서 몇 블록만 걸으면 한글 간판이 드물어진다. 이 거리가 지금의 얼굴을 갖게 된 데에는, 공장이 사람을 불러들이고 외환위기가 그 사람들을 이 골목에 눌러앉힌 삼십 년의 시간이 있었다.

글
alleymag.
발행
2026.10.05
골목
안산 원곡동 다문화거리
국경이 없기로, 이 마을은 그렇게 정했다
Artwork by alleymag.

골목 하나를 건너면 말이 바뀐다. 중국어 간판 옆에 러시아어가 붙고, 그 옆엔 베트남어와 아랍어가 나란하다. 과일가게 앞에서 흥정하는 말소리도 한국어가 아닐 때가 더 많다. 이 거리를 처음 걷는 사람은 안산역에서 걸어서 몇 분밖에 안 걸렸다는 사실에 자주 놀란다.

이런 거리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안산은 1977년부터 반월공단 조성이 추진되어 1987년 완공됐고, 그 성공이 1986년 안산시 승격으로 이어졌다. 공단이 일손을 필요로 했고, 사람들이 그 일손을 채우러 모여들었다. 원곡동은 그 공단과 가장 가까운 동네였다.

Artwork by alleymag.

1990년대 초, 힘들고 위험한 일을 기피하던 한국인 노동자들이 하나둘 공단을 떠났다. 그 빈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업체들이 줄줄이 흔들렸고, 공단 기숙사에서 더는 머물 수 없게 된 이들이 대거 원곡동으로 옮겨왔다. 일자리를 따라 왔다가, 머물 곳을 찾아 이 골목에 남은 사람들이었다.

국경이 없기로 한 이유

처음부터 반겼던 것은 아니다. 1999년, 쓰레기종량제가 시행되면서 주민과 외국인 노동자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이 좁은 골목 안에서 부딪혔다. 그 틈을 메운 것은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한 목사가 제안한 마을 청소였다. 함께 빗자루를 들고 같은 골목을 쓸어내는 동안, 마음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Artwork by alleymag.

그렇게 시작된 운동에 사람들은 '국경없는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가 1999년부터 원곡동 일대에서 이어온 이 운동은, 피부색과 말이 달라도 서로 마음을 열면 함께 살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같은 골목을 쓸던 손에서 시작된 말이었다.

다문화마을특구가 된 거리

그 이름값은 2009년 5월, 원곡동 일대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되며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한 동네가 통째로 이런 이름을 받은 것은 이 거리가 처음이었다.

지금 이 거리를 걷는 사람 다섯 중 넷은 외국인이다. 2019년 1월, 안산시 전체에는 107개국에서 온 외국인 8만6천여 명이 살았고, 그 가운데 57개국 2만1천여 명이 원곡동 한 동네에 모여 살았다. 특구 안의 주민 2만1121명 중 1만7825명, 그러니까 다섯 명 중 넷이 외국인이라는 뜻이다.

Artwork by alleymag.

그래서 지금 이 거리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도네시아 식료품점, 중국 식당, 베트남 쌀국수집, 태국과 네팔과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의 음식점,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마트까지. 한 골목 안에 이만큼 많은 나라의 부엌이 모여 있는 곳은 전국을 통틀어도 흔치 않다. 간판에는 한글보다 외국어가 더 많이 쓰여 있다.

공단이 사람을 불러들였고, 외환위기가 그들을 이 골목에 눌러앉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남아 가게를 열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 원곡동은 어쩌다 보니 다른 동네가 되어 있었다. 이 거리가 앞으로도 지금의 다정함을 지킬 수 있을지는, 오늘도 같은 골목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말해줄 것이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간판이 먼저 알려주는 것
KBS 다큐3일 촬영 차 들렀다는 thename2008은 머리 위로 각국 깃발이 걸린 골목과, 할랄마트 앞에 노랗게 쌓인 과일 더미를 나란히 남겼다.KBS 다큐3일 촬영 차 들렀다는 thename2008은 머리 위로 각국 깃발이 걸린 골목과, 할랄마트 앞에 노랗게 쌓인 과일 더미를 나란히 남겼다.
▲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 2026.07 / 사진 thename2008 · https://blog.naver.com/thename2008/224353635453 KBS 다큐3일 촬영 차 들렀다는 thename2008은 머리 위로 각국 깃발이 걸린 골목과, 할랄마트 앞에 노랗게 쌓인 과일 더미를 나란히 남겼다. 베트남 쌀국수 간판 아래로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낮의 풍경과, 저녁 햇살 아래 바나나와 오렌지가 쌓인 좌판이 이 거리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SCENE 02 : 골목이 품은 생활의 결
안산9경 답사로 들른 bwsphoto가 전신주 하나에 다닥다닥 붙은 간판을 올려다보며 찍었다. 해외송금 업체와 은행,
▲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 2026.01 / 사진 bwsphoto · https://blog.naver.com/bwsphoto/224166222009 안산9경 답사로 들른 bwsphoto가 전신주 하나에 다닥다닥 붙은 간판을 올려다보며 찍었다. 해외송금 업체와 은행, 미얀마 관련 가게 안내가 다문화음식거리 표지판과 나란히 걸려 있다. 이 골목에서는 돈을 보내는 일도, 밥을 먹는 일도 모두 한 블록 안에서 끝난다.
SCENE 03 : 고향의 맛을 파는 가게
486kj는 화덕 안에 줄지어 구워지는 삼사 반죽과, 유리 진열장에 쌓인 둥근 빵들을 함께 담았다. 장작 대신 가스 불로 데운 전통 화덕이지만 굽는 방식은 그대로다.486kj는 화덕 안에 줄지어 구워지는 삼사 반죽과, 유리 진열장에 쌓인 둥근 빵들을 함께 담았다. 장작 대신 가스 불로 데운 전통 화덕이지만 굽는 방식은 그대로다.
▲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 2026.04 / 사진 486kj · https://blog.naver.com/486kj/224256908312 486kj는 화덕 안에 줄지어 구워지는 삼사 반죽과, 유리 진열장에 쌓인 둥근 빵들을 함께 담았다. 장작 대신 가스 불로 데운 전통 화덕이지만 굽는 방식은 그대로다. 고향의 빵을 파는 가게가 있다는 것은, 그 골목이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집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산 반월공단 조성과 안산시 승격, 외국인 노동자 유입과 '국경없는 마을' 운동, 2009년 다문화마을특구 지정, 2019년 1월 기준 거주 외국인 숫자는 지지씨(경기문화재단), 한국일보, 주간경향, 서울신문, 대한민국 구석구석(한국관광공사), 디지털안산문화대전의 보도와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사실이 있으면 내용을 갱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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