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원곡동 다문화거리) 국경이 없기로, 이 마을은 그렇게 정했다
안산역을 나서 몇 블록만 걸으면 한글 간판이 드물어진다. 이 거리가 지금의 얼굴을 갖게 된 데에는, 공장이 사람을 불러들이고 외환위기가 그 사람들을 이 골목에 눌러앉힌 삼십 년의 시간이 있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안산 원곡동 다문화거리

골목 하나를 건너면 말이 바뀐다. 중국어 간판 옆에 러시아어가 붙고, 그 옆엔 베트남어와 아랍어가 나란하다. 과일가게 앞에서 흥정하는 말소리도 한국어가 아닐 때가 더 많다. 이 거리를 처음 걷는 사람은 안산역에서 걸어서 몇 분밖에 안 걸렸다는 사실에 자주 놀란다.
이런 거리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안산은 1977년부터 반월공단 조성이 추진되어 1987년 완공됐고, 그 성공이 1986년 안산시 승격으로 이어졌다. 공단이 일손을 필요로 했고, 사람들이 그 일손을 채우러 모여들었다. 원곡동은 그 공단과 가장 가까운 동네였다.

1990년대 초, 힘들고 위험한 일을 기피하던 한국인 노동자들이 하나둘 공단을 떠났다. 그 빈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업체들이 줄줄이 흔들렸고, 공단 기숙사에서 더는 머물 수 없게 된 이들이 대거 원곡동으로 옮겨왔다. 일자리를 따라 왔다가, 머물 곳을 찾아 이 골목에 남은 사람들이었다.
국경이 없기로 한 이유
처음부터 반겼던 것은 아니다. 1999년, 쓰레기종량제가 시행되면서 주민과 외국인 노동자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이 좁은 골목 안에서 부딪혔다. 그 틈을 메운 것은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한 목사가 제안한 마을 청소였다. 함께 빗자루를 들고 같은 골목을 쓸어내는 동안, 마음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운동에 사람들은 '국경없는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가 1999년부터 원곡동 일대에서 이어온 이 운동은, 피부색과 말이 달라도 서로 마음을 열면 함께 살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같은 골목을 쓸던 손에서 시작된 말이었다.
다문화마을특구가 된 거리
그 이름값은 2009년 5월, 원곡동 일대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되며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한 동네가 통째로 이런 이름을 받은 것은 이 거리가 처음이었다.
지금 이 거리를 걷는 사람 다섯 중 넷은 외국인이다. 2019년 1월, 안산시 전체에는 107개국에서 온 외국인 8만6천여 명이 살았고, 그 가운데 57개국 2만1천여 명이 원곡동 한 동네에 모여 살았다. 특구 안의 주민 2만1121명 중 1만7825명, 그러니까 다섯 명 중 넷이 외국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이 거리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도네시아 식료품점, 중국 식당, 베트남 쌀국수집, 태국과 네팔과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의 음식점,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마트까지. 한 골목 안에 이만큼 많은 나라의 부엌이 모여 있는 곳은 전국을 통틀어도 흔치 않다. 간판에는 한글보다 외국어가 더 많이 쓰여 있다.
공단이 사람을 불러들였고, 외환위기가 그들을 이 골목에 눌러앉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남아 가게를 열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 원곡동은 어쩌다 보니 다른 동네가 되어 있었다. 이 거리가 앞으로도 지금의 다정함을 지킬 수 있을지는, 오늘도 같은 골목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말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