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미로시장) 비어 있던 2층에, 미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대형마트에 밀리고 화재와 외환위기까지 겹쳐 발길이 끊겼던 원주중앙시장 2층. 2016년, 그 막막한 공간에 청년들이 들어와 길을 냈다. 길을 잃어야 비로소 다 보이는 골목이 거기서 시작됐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원주 미로시장

원주 중앙동,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적힌 '미로예술중앙시장' 간판 아래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목도리를 두르고 서 있다. 간판을 올려다보다 계단 쪽으로 눈을 돌리면 어둑한 통로가 2층으로 이어진다. 처음 온 사람은 여기서부터 길을 잃는다. 그런데 이 시장은 애초에 길을 잃으라고 이름을 지었다.
원주중앙시장의 시작은 특별할 것 없는 오일장이었다. 1950년대 중앙동 일대에 서던 5일장이 1953년 2월 8일 정식 시장으로 자리를 얻었고, 1965년 3월에는 시장으로 등록됐다. 지금의 건물 골격이 들어선 것은 1970년이다. 철근콘크리트로 2층을 올린 상설 시장 건물이 그해 완공되면서, 장이 서는 날에만 북적이던 동네가 매일 문을 여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순탄하지는 않았다. 1992년 화재를 겪은 뒤 건물을 새로 짓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때마침 터진 외환위기로 계획은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도시 곳곳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장을 보러 오는 발길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나마 1층은 생필품을 사러 오는 손님들로 버텼지만, 계단을 올라야 하는 2층은 찾는 사람이 더 적었다. 셔터가 하나둘 내려간 자리에는 먼지만 쌓여 갔다.
미로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그 비어 있던 2층에 2016년 다른 제안이 들어왔다. 중소벤처기업부(당시 중소기업청)의 청년몰 조성사업이었다. 임대료와 인테리어 비용을 2년간 15억 원 지원받으며, 2017년 청년 상인 73개 점포가 이 층에 들어왔다. 공방을 차린 사람도 있었고, 소품을 늘어놓은 사람도 있었고, 식당 한 칸을 받아 솥을 건 사람도 있었다.
시장 건물은 가동, 나동, 다동, 라동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 네 개 동 사이의 통로가 서로 얽히고 되돌아오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반듯한 복도 하나로 뻗은 1층 상가와 달리, 2층은 걷다 보면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거나 갑자기 다른 동으로 넘어가 있는 식이었다. 처음 이 공간을 맡은 청년 상인들은 그 구조를 굳이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이름을 하나 지어 붙였다. 미로예술시장.

2019년 여름에는 방송 하나가 이 골목을 바깥세상에 알렸다. 6월 19일부터 7월 24일까지 방영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원주중앙시장을 찾아와, 칼국수를 삶던 어머니손칼국수와 스테이크를 굽던 미로시장꿈, 타코를 말던 부리또만나, 에비돈을 튀기던 카츠예미까지 네 곳을 차례로 다뤘다. 방송 이후 한동안 이 골목 이름을 검색해 찾아오는 사람이 늘었다고, 그 무렵을 기억하는 상인들은 말한다.
지금 이 골목에 남은 것
2022년 정부의 청년몰 지원사업이 끝났다. 공교롭게도 그 뒤로 중앙시장 나동에서 화재가 났고, 코로나19가 길게 이어졌고, 소비가 움츠러드는 시기까지 겹쳤다. 한때 73개였던 점포는 지금 많이 줄어 있다. 계단을 올라 처음 만나는 통로에는 불 꺼진 점포가 더러 섞여 있고, 그 옆 칸에는 여전히 조명을 환하게 켠 가게가 있다.

그런데도 이 골목을 다녀간 사람들이 쓴 글에는 불평보다 다른 말이 더 자주 나온다. 길을 잘못 들어도 결국 중앙광장으로든 다른 통로로든 이어진다는 것, 그러니 서두르지 않고 한 바퀴 돌아보면 된다는 것. 빈 점포와 살아 있는 점포가 나란히 붙어 있는 풍경이 이 시장의 지금 얼굴이다. 미로라는 이름은 한때 마케팅을 위한 작명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이 골목의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이 되어 있다.
9년 전 73개의 간판이 한꺼번에 켜졌던 그 밤과, 지금 듬성듬성 불이 켜진 이 복도 사이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이 갈렸을 뿐, 골목의 구조는 그대로다. 그리고 어쩌면 이 골목이 다음에 어떤 모습이 될지는, 지금 저 불 켜진 칸들이 얼마나 오래 버텨주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