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골목을 온전히 마음에 품을 수 있도록, 그 안의 모든 서사를 단 한 편의 에세이로 엮어내는 메인 콘텐츠입니다.
모란시장은 이름대로라면 닷새에 한 번만 깨어나야 한다. 그런데 정작 발 디딜 틈 없는 몇몇 가게는 장이 없는 날에도 불을 켠다.
드론쇼와 조명이 성벽을 물들이는 사흘이 지나면, 성 안은 다시 평일의 조도로 돌아간다. 그 평일에도 변함없이 줄을 세우는 가게는, 축
장을 보러 온 사람과 고기를 구우러 온 사람, 소품을 고르러 온 사람이 각자 다른 목적으로 들어선 통로에서, 냄새만은 피할 수 없이
짧은 골목 하나를 걷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골목은 아침과 낮, 저녁의 냄새가 전부 다르다.
낮의 으능정이거리와 밤의 스카이로드는 같은 자리에서 다른 공기를 낸다. 발밑 거리의 소리부터 머리 위 LED가 음악에 맞춰 반짝이는
저녁이 되면 이 골목은 빛과 냄새로 먼저 다가온다. 삼겹살 익는 냄새, 설탕 녹는 냄새, 그리고 영어 단어를 외우는 소리.
곱창골목을 걷는 순서는 언제나 같다. 냄새가 먼저 오고, 그다음 소리, 마지막으로 자리에 앉고 나서야 사람이 보인다.
건물 하나에 통째로 들어앉은 시장이 아니라서, 걷다 보면 몇 번이고 길을 잃는다. 대신 그만큼 오래 걷게 된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턱까지 차오르는 숨과, 꼭대기에서 마주치는 윤슬 사이. 그 사이 어딘가에 이 골목의 진짜 얼굴이 있다.
같은 골목이 아침에는 조용하고 낮에는 분주하고 밤에는 낮아진다. 그 낙차를 따라 걸으면 금리단길의 진짜 얼굴이 조금씩 보인다.
제기동역 2번 출구를 나서기도 전에, 이 골목은 걸음보다 코가 먼저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 냄새를 따라 걷다 보면, 하루의
평일의 모란시장과 장날의 모란시장은 다른 공기를 가진 곳처럼 느껴진다. 닷새를 주기로 옷을 갈아입는 이 골목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걸
아이는 성벽 돌 틈마다 손가락을 넣어 보느라 열 걸음을 가는 데 한참이 걸리고, 어른은 그 뒤에서 호떡 냄새를 따라 걷는다.
경리단길과 이태원의 임대료가 오르자 그 자리를 채우던 것들이 흘러넘쳤다. 해방촌을 지나 이제는 후암동의 낡은 집 한 채까지 밀려들어온
천안역 앞 패션 골목이 번화가였던 시절을 아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다. 상권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조
영화관 하나가 동네의 이름이 되는 일은 흔치 않다. 춘천 육림고개는 그 드문 경우 가운데 하나다. 극장이 사라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안동 구시장 한편, 통닭을 튀기던 좁은 골목은 전국 치킨 브랜드가 밀려들자 다른 길을 택했다. 지금 이 골목에는 같은 메뉴를 내건 간
부산진구 전포동의 이 골목은 한때 기계 부품과 나사를 팔았다. 그 거리가 통째로 비었던 적이 있고, 다시 채운 것은 상인이 아니라 커
이름부터가 창고였던 동네다. 세곡을 쌓아 두던 자리가 번화가가 되었다가 텅 비었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다시 상품이 아니라 사람이
대구 한복판,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또 다른 시간이 흐르는 좁은 골목이 있다. 그 골목의 이름은 그저 '길다'는 뜻이다. 그런데
창평면 삼지내마을. 월봉산에서 내려온 물이 월봉천, 운암천, 유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자리에 조선은 현청을 두었다. 느림이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의 부사는 이 구릉의 생김새를 보고 봉황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로부터 이백 년 가까이 지나, 그 날개 아래 골목은 또
광주송정역 맞은편, 백 년도 더 전에 역과 함께 생겨난 시장이 있다. 한 번은 청년의 손으로 다시 태어났고, 지금은 그 다음을 묻고
두터운 바위에 자손을 빌던 자리에,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참배길이 났다. 그 계단을 지금은 전혀 다른 이유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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