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은행동 으능정이거리) 불빛이 걸음보다 먼저 켜지는 거리
낮의 으능정이거리와 밤의 스카이로드는 같은 자리에서 다른 공기를 낸다. 발밑 거리의 소리부터 머리 위 LED가 음악에 맞춰 반짝이는 순간까지, 하루치의 얼굴을 따라 걸어본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13
- 골목
- 대전 은행동 으능정이거리

낮의 걸음
낮의 으능정이거리는 큰길보다 골목이 먼저 말을 건다. 메인스트리트를 벗어나 한 발 안쪽으로 들어서면 작은 소품샵과 사진관, 분식집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속도로 걷는다. 누군가는 가게 앞에 세워둔 캐릭터 입간판을 사진으로 남기고, 누군가는 그 옆을 바쁘게 지나친다.
성심당 쪽 골목에서는 갓 나온 빵 냄새가 먼저 코끝에 닿는다. 줄을 서지 않는 사람들도 그 냄새 때문에 걸음이 느려진다. 여름이면 거리 한쪽에서 쿨링포그가 뿜어내는 미세한 물방울이 안개처럼 깔려, 땀을 식히려는 사람들이 잠시 그 아래 멈춰 선다.

저녁이 켜는 불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거리의 주인공이 바뀐다. 낮 동안 조용히 간판 구실만 하던 스카이로드가 머리 위에서 화면을 켜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걷는 속도를 조금 당긴다. 위를 올려다보던 사람들은 어느새 발밑보다 하늘 쪽을 더 자주 쳐다보며 걷는다.
그 불빛 아래로 돈까스 접시가 비워지는 소리, 포장마차 철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 인형뽑기 기계의 효과음이 한데 뒤섞인다. 소리만 들으면 이 거리가 몇 가지 업종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만큼 많은 것들이 동시에 켜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블록 뒤의 시간
큰길만 따라 걸으면 이 거리의 절반밖에 보지 못한다. 메인스트리트에서 한 번만 꺾어 들어가면 작은 전시 공간과 사진 부스, 소품샵이 얼굴을 내밀고, 그 골목을 따라 걷는 재미가 따로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른 간판이 나타나는 것이 이 거리를 오래 다닌 사람들이 꼽는 매력이다.

중앙시장 쪽 골목은 냄새부터 다르다. 기름 냄새와 단내가 뒤섞인 골목에서 튀김과 칼국수, 순대국 냄비가 동시에 김을 뿜어낸다. 깔끔하게 정돈된 대형 쇼핑몰과는 다른, 이 거리 특유의 북적한 공기가 거기서 난다.
메인스트리트에서 한 블록만 벗어나면 소리가 줄어든다. 중앙시장 쪽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오래된 간판을 단 가게들이 여전히 불을 켜고 있고, 그 앞을 지나는 걸음은 아까보다 느긋하다. 화려한 불빛과 오래된 불빛이 몇 걸음 차이로 공존하는 자리다.

대전천 변까지 걸음을 옮기면 거리의 소음이 한풀 꺾인다. 조명이 하나둘 켜지는 물가를 따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거리 안쪽보다 한결 느리다. 같은 저녁인데도 몇 걸음 차이로 거리의 표정이 달라진다.
물가에 서서 뒤돌아보면 스카이로드의 빛이 먼 하늘색처럼 번져 보인다. 가까이에서는 소리와 냄새로 정신없던 거리가,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는 그저 하나의 풍경으로 가라앉는다. 같은 거리를 두고도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이 남는 셈이다.
낮에는 냄새로, 저녁에는 빛으로 걸음을 붙잡는 거리다. 하루 동안 이 거리가 몇 번이나 얼굴을 바꾸는지 세어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얼굴들을 다 지나 대전천 변에 닿았을 때, 걸음은 처음보다 조금 느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