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은행동 으능정이거리) 으능정이는 명동이라는 이름을 두 번째로 받았다
은행나무 정자가 있던 마을에서 시작해, 관공서가 떠난 자리에 LED로 다시 불을 켠 거리. 화려해진 이름 아래에는 여전히 오래된 결의 가게들이 남아 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13
- 골목
- 대전 은행동 으능정이거리

으능정이라는 이름은 간판보다 오래되었다. 이 일대에 있던 은행나무 정자, 그러니까 은행나무가 서 있던 마을에서 비롯한 이름이라고 전한다. 스카이로드의 LED가 밤마다 거리를 물들이기 훨씬 전부터, 이 자리는 그저 은행나무 아래 모여 앉던 동네였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대전역 앞 중앙로를 중심으로 백화점과 지하상가, 갤러리가 촘촘히 들어서면서 이 거리는 어느새 '대전의 명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 별명은 처음부터 이 거리의 것이 아니었다.
원래 그 이름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중앙로 축에서 가장 번성한 동네는 옛 충남도청을 비롯한 관공서가 모여 있던 선화동이었다고 전한다. 같은 축을 따라 은행동과 대흥동에는 극장과 백화점이 늘어서 있었고, 선화동은 그 축의 중심에서 대전의 명동이자 강남으로 통했다.

그 구도를 흔든 것은 1997년 말이었다. 둔산동에 정부 제3대전청사가 들어서면서 법원과 검찰청, 대전시청 같은 행정기관이 줄줄이 둔산 신도심으로 옮겨갔다. 관공서를 상대하던 서비스업종도 뒤따라 자리를 옮겼고, 중앙로 일대 원도심은 빠르게 식어갔다.
식어버린 자리에 다시 불을 켠 것
그 자리에 다시 불을 켠 것이 스카이로드다. 길이 214m, 너비 13.3m, 높이 20m 규모로 대전역 앞 거리를 뒤덮은 이 LED 영상 아케이드는 2013년 문을 열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아케이드형 영상시설이었다. 머리 위로 펼쳐지는 화면 아래, 사람들은 다시 이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다만 그 불빛이 걸리던 순간이 마냥 순탄하지는 않았다. 조성 당시 대전시는 기존 상권이 위축될 것을 걱정해 은행동 중심상권의 건물주 200여 명에게 계약기간을 지키고 임대료를 과하게 올리지 말아 달라는 서한문을 보내야 했다. 새 이름을 얻는 일에는 그만큼의 조바심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거리에는 무엇이 있는가
지금 으능정이거리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간판은 한 가지 색이 아니다. 옷가게와 소품샵이 있고, 오락실과 인형뽑기 가게가 있고, 경양식 돈까스를 파는 식당과 라멘집, 쌀국수집이 한 골목에 섞여 있다. 커플 마사지숍 간판도, 보드게임카페 간판도 같은 거리에 걸려 있다. 중앙시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칼국수와 튀김, 순대를 파는 가게들이 여전히 줄지어 있다.

그중에는 서른다섯 해째 같은 자리를 지킨다는 경양식집도 있다. 간판은 낡았지만 문은 여전히 열려 있고, 손님은 여전히 옛날 그 식전 스프를 받아 든다. 화려한 LED 조명 몇 걸음 아래, 이 거리는 그렇게 여러 시간대를 한꺼번에 살아내고 있다.
은행나무 정자였던 자리가 명동이 되고, 그 명동이라는 이름을 다시 이 거리가 물려받기까지, 중간에 식어버린 세월이 끼어 있었다는 사실은 간판만 보고는 알 수 없다. 두 번째로 받은 이름이 이 거리를 얼마나 오래 지켜줄지는, 아마 저 오래된 경양식집의 문이 몇 해를 더 열려 있는가가 말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