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마산 창동예술촌) 창고 마을이 예술촌이 되기까지
이름부터가 창고였던 동네다. 세곡을 쌓아 두던 자리가 번화가가 되었다가 텅 비었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다시 상품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창원 마산 창동예술촌

창동(倉洞)이라는 이름부터가 창고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인 1760년, 세곡으로 거둔 쌀을 보관하던 창고 조창(漕倉)이 이 자리에 섰다. 관원과 상인이 그 창고로 대동미를 실어 나르던 수레길이 지금도 쪽샘길이라는 250m 길로 남아 있다. 이름 하나가 이렇게 오래 버틴다는 것은, 이 동네가 한 번도 완전히 다른 자리가 되지는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창고 마을은 이후로도 계속 무언가를 쌓고 나누는 자리였다. 조선의 곡식이 상인의 물건으로 바뀌었고, 물건은 다시 사람을 불러 모았다. 1970~80년대 마산자유무역지역과 한일합섬, 한국철강 같은 산업이 번창하면서 마산은 전국 7대 도시로 꼽혔고, 창동은 서울 명동에 비견되는 번화가로 불렸다. 극장과 음악다방과 서점이 늘어선 골목에서 친구를 만나고 연인을 기다리던 중장년의 기억이 지금도 이 거리 곳곳에 남아 있다.
다시 비워진 자리
번영은 오래가지 않았다. 1970년대 후반 마산역과 마산시외버스터미널이 마산회원구로 옮겨가고, 1980년대 후반 수출자유지역이 쇠퇴하면서 창동의 상권도 함께 기울었다.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간판만 남았다. 명동이라 불리던 거리가 빈 점포만 덩그러니 남은 쓸쓸한 구도심으로 가라앉는 데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쇠락한 원도심을 되살리기 위해 창원시는 빈 점포 50곳을 임차해 2012년 5월 창동예술촌을 열었다. 1차로 입주한 작가는 50명이었다. 창작 작업실과 체험 공방, 갤러리가 비어 있던 상가 자리를 채웠고, 골목은 문신예술골목·마산예술흔적골목·에꼴드창동골목이라는 세 개의 테마로 나뉘어 다시 이름을 얻었다.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의 이름을 딴 골목, 마산 예술의 흔적을 모은 골목, 상점과 예술을 함께 놓은 골목. 셋은 서로 다른 입구에서 시작해 결국 같은 골목 안에서 만난다.
지금도 약 400m 골목에 공방과 갤러리가 들어차 있고, 어울림센터를 중심으로 아고라광장과 창동예술체험관이 자리를 지킨다. 1955년부터 한 골목을 지켜온 서점 학문당도, 1946년 문을 열어 1995년 문을 닫았다가 2021년 다시 살아난 시민극장도 이 골목 안에 있다. 극장이 두 번째 생을 얻기까지 걸린 시간은 이십육 년이었다. 처음 50곳으로 시작한 빈 점포는 지금 60여 개의 입주 시설로 늘었다고 전해진다. 열 해 남짓한 시간 동안 열 곳 넘는 공방이 새로 더해진 셈이다.

골목 한 켠에는 지역 문학평론가가 살던 옛집도 남아 있다. 지금은 카페로 쓰이는 그 집터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방문 기록이 여럿이다. 간판을 보고 나서야 그곳이 예전에 누군가의 살림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창고였던 자리가 상점이 되고 다시 빈 점포가 되었듯, 살림집이 카페가 되는 일도 이 골목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변화다.
골목에 처음 들어서면 바닥에 새겨진 예술촌 로고와 사방의 벽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로고를 밟고 서서 사진을 찍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한 설렘을 느꼈다는 방문 기록이 있다. 안내 지도를 받아 들어도 골목은 미로처럼 얽혀 있어 한 번에 다 찾아지지 않는다. 그래도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걸어 다니는 재미가 있다고, 여러 사람이 똑같이 적었다. 체험 공방을 운영하는 곳도 적지 않아서, 그저 구경만 하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손을 움직여 볼 기회도 곳곳에 열려 있다.
채워졌다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빈 점포를 공방으로 바꾼다고 해서 그 골목이 예전의 번화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창동예술촌이 하려던 일은 그보다 소박했다. 사람들이 다시 걸어 들어올 이유를 하나씩 만들어 두는 것. 전시를 보러 왔다가 서점에 들르고, 서점에서 나와 오래된 빵집 앞을 지나는 동선을 다시 잇는 일이었다.

창고였던 이름이 끝까지 떨어지지 않은 것도 그래서 묘하게 들린다. 한때는 세곡을 쌓았고, 한때는 상품을 쌓았고, 지금은 캔버스와 책과 공방의 작업대를 쌓아 둔다. 안에 든 것은 매번 달랐지만 쌓아 두는 자리라는 사실만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창동이라는 이름이 삼백 년 가까이 버틴 이유를, 어쩌면 그 안에 든 것보다 그 자리 자체가 가진 어떤 끈기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골목을 걷다 보면 시대마다 붙여진 이름들이 겹쳐 보인다. 조창이 있던 자리라서 창동, 대동미를 실어 나르던 길이라서 쪽샘길, 예술촌의 정문 구실을 한다 해서 상상길. 같은 땅을 두고 시대마다 다른 이름을 붙여 온 셈인데, 그 이름들이 지워지지 않고 나란히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이 골목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 준다. 무엇 하나를 완전히 지우고 새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창고에서 번화가로, 번화가에서 빈 골목으로, 빈 골목에서 다시 예술촌으로. 이름을 바꿔 가며 버텨 온 이 땅의 이력서는, 아직 마지막 줄이 쓰이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