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마산 창동예술촌)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지도를 들고 와도 한 번에 찾아지지 않는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그렇게 헤매는 재미로 걷는 골목이 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창원 마산 창동예술촌

안내 지도를 받아 들고도 한 번에 길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지도를 보고도 엉뚱한 쪽으로 걸어가 버리는 일이 흔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게 짜증스럽지 않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걷다 보면 다음 골목에 대한 예측이 생기고, 모퉁이를 돌면 그 예측이 맞을 때도 있고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질 때도 있다. 그 어긋남이 이 골목을 걷는 재미의 절반을 차지한다.
날이 더워도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불어오는 바람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사람이 있다. 걸으면서 만나는 골목 풍경이 다음 골목을 짐작하게 만들고, 그 짐작이 들어맞는 순간마다 작은 확신이 쌓인다. 벽에 붙은 벽화 하나, 천장이 낮은 공방 하나를 지날 때마다 이 길에 누가 먼저 지나갔는지가 어렴풋이 보인다.
벽마다 남은 손
골목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것은 대개 벽화다. 아기 천사, 마산의 예술 흔적을 새긴 트리,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 시인의 시구를 옮겨 적은 벽면. 하나씩 세어 가며 걷다 보면 어느새 처음 봤던 벽화를 다시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니라, 이 골목이 원래 그렇게 여러 번 겹쳐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다.

좁은 통로를 지날 때는 유독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는 말도 있다. 통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방과 공방이 어깨를 맞대고 있고, 문 앞에 내놓은 작은 화분이나 손글씨 메뉴판이 그 집의 성격을 말해 준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간판 하나에도 눈이 머무는 것은, 이 골목이 걷는 속도를 자연스럽게 늦춰 놓기 때문일 것이다.
서점 안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공기가 기다린다. 문을 열자마자 책 냄새가 확 밀려온다고, 약간은 시골집 냄새 같기도 하다고 적은 방문자가 있다. 겉에서 보면 그리 크지 않아 보이는데 막상 들어서면 생각보다 훨씬 넓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지하까지 서가가 이어진다. 참고서부터 어린이책, 베스트셀러까지 책장 사이를 걷다 보면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낡은 소파도 눈에 띈다. 겉모습과 속이 이렇게 다른 공간이 이 골목에는 드물지 않다.
해가 지고 나서야 보이는 것
낮과 밤의 얼굴이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서 걸어서 찾아온 어느 방문자는, 골목 구석구석 그려진 벽화에 은은한 조명이 겹쳐지면서 낮과는 완전히 다른 감성이 쌓이는 풍경을 봤다고 적었다. 빛바랜 벽면과 현대적인 조명이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화려한 낮보다 어둠이 내린 밤에 오길 잘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고도 했다.

그 밤, 젊은 사람들은 예쁜 불빛 아래서 사진을 찍으며 웃고 있었다. 오래된 골목이 가진 연륜과 그 활기찬 모습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에, 이 골목이 지나온 시간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한때는 번화가였다가, 한때는 빈 점포만 남은 쓸쓸한 거리였다가, 지금은 조명 아래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돌아온 자리.
국밥 한 그릇과 오래된 얼굴들
이 골목에 자취방을 구한 친구를 보러 왔다는 기록도 있다. 창동예술촌에서 일하게 된 친구의 새 출발을 핑계 삼아, 며칠 함께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일요일 오후, 셋은 창동 거리의 국밥집으로 향했다. 까만 뚝배기에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한가득 담겨 나왔고, 숟가락으로 파와 돼지고기를 휘휘 저어 한 입 크게 떠먹었다고 적었다. 타지를 맴돌다 돌아온 익숙한 동네에서 오랜 친구들과 마주 앉아 들이켠 그 국물은, 빈속을 든든하고 편안하게 다독여 주었다고 했다.
국밥으로 배를 채운 뒤에는 초록색 입간판이 서 있는 작은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는 자연스레 셋이 마산에서 함께 자라던 학창 시절로 흘러갔다. 학교를 마치면 늘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곤 했는데, 하루는 엉뚱한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새벽 세 시가 다 되도록 낯선 도시를 헤맨 적도 있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한 그날 밤의 소동도, 이 골목의 카페 한 자리에 앉으면 다시 꺼내 보게 되는 모양이다.

비슷한 풍경은 식당 안에서도 벌어진다. 메밀묵집에 들렀다는 한 동네 주민은, 옆 테이블에 앉은 작가들이 막걸리와 메밀온국수를 시켜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적었다. 여주인의 밝은 미소가 좋았다는 짧은 감상도 함께였다. 거창한 설명 없이도, 그 한 문장만으로 이 골목이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가 전해진다.
골목을 다 돌고 나와도 지도에 그려진 길을 전부 걸었는지는 끝내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그 확신 없음이야말로 이 골목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그래서 여전히 걸어 볼 구석이 남아 있다는 쪽으로 읽히는 게 아닐까.
다음에 다시 온다면 이번에 놓친 골목부터 걷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다짐이 몇 번이고 되풀이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 골목이 한 번에 다 보여 주지 않는다는 증거일 것이다. 와 본 사람도 다시 걷고 싶어지는 길,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에게는 처음 밟아 보는 낯선 골목이고,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러 오는 길이다. 이 골목은 그 둘을 굳이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품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