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6 MON
스팟 데이터베이스 555 ABOUT
alleymag. 골목을 걷고, 재고,
기록하는 로컬 아카이브
기록한 골목92
발행 아티클2192
등록 스팟555
실측 업소0
기록 시작2026.09

(광주 1913송정역시장) 기차가 멈추자, 장이 섰다

광주송정역 맞은편, 백 년도 더 전에 역과 함께 생겨난 시장이 있다. 한 번은 청년의 손으로 다시 태어났고, 지금은 그 다음을 묻고 있다.

글
alleymag.
발행
2026.10.05
골목
광주 1913송정역시장
기차가 멈추자, 장이 섰다
Artwork by alleymag.

광주송정역 3번 출구를 나와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시장이 시작된다. 역이 보이는 자리에 시장이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시장은 애초에 역 때문에 생겼다.

광주송정역의 전신인 송정리역은 1913년 10월 1일, 호남선 개통과 함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역이 문을 열자 그 앞으로 사람과 물자가 오갔고, 그 틈에 '매일송정역전시장'이라는 이름의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기차가 먼저 섰고, 장은 그다음에 섰다.

송정리역은 2009년 4월 1일 광주송정역으로 이름을 바꿨다. 역 이름은 몇 글자 고치는 일로 끝났지만, 그 앞의 시장이 백 년을 건너오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광주공항에서 기차를 타러 가던 한 여행자가 택시 기사에게 점심 먹을 곳을 물었던 적이 있다. 기사는 시장 입구에서 손님을 내려 주며 '국밥도 유명하고 먹을 것도 여러 가지 있다'고 알려 주었다. 광주를 잘 모르는 사람도, 광주를 매일 오가는 사람도 이 시장을 가리켜 하는 말은 비슷하다. 역에서 내리면, 바로 이 시장이다.

Artwork by alleymag.

이름에 연도를 새긴 이유

지금 이 시장의 간판에는 '1913'이라는 숫자가 먼저 걸려 있다. 원래 이름이 아니었다. 2015년 1월부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현대카드가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당시 55개 점포 가운데 35퍼센트에 이르던 빈 점포 중 열 곳을 먼저 고쳐 썼다.

2016년 4월, 그렇게 비어 있던 자리마다 청년 상인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그리고 그해, 시장은 자신의 나이를 숨기지 않기로 했다. 개설 연도를 그대로 이름에 박아 '1913송정역시장'이라 고쳐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백 년 묵은 시장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간판으로 내걸었다.

그 시기 들어온 가게 중에는 지금도 이 시장을 대표하는 얼굴들이 있다. 우리밀 식빵을 내걸고 문을 연 또아식빵, 전통 부각을 현대적인 간식으로 재해석해 들어선 느린먹거리by부각마을. 모두 그 무렵, 빈 점포였던 자리에서 시작했다.

부각을 파는 가게 앞을 지나면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기름 향이 먼저 코를 잡아끈다. 김부각은 물론이고 다시마, 감자, 연근, 우엉 같은 재료에 찹쌀풀을 일일이 발라 바짝 말린 뒤 튀겨 낸다. 한 입 베어 물면 바삭,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고소한 찹쌀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진다. 인공적인 양념 맛이 아니라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남는다는 것이, 이 가게를 두고 자주 나오는 말이다. 수제 양갱부터 신선한 식빵, 옛날 방식 그대로 튀겨내는 튀김집까지 늘어선 골목은 그래서 하나의 커다란 먹거리 박물관처럼 보이기도 한다.

Artwork by alleymag.

백 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이 거리가, 청년 상인들의 감각적인 아이디어와 오랜 노포의 푸근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평을 듣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다. 기차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둘러보기에 완벽한 동선을 제공한다는 말은, 이 거리가 단순히 오래된 상점가가 아니라 걸으며 소비할 수 있는 하나의 경험으로 다시 설계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2018년부터는 거리 전체를 레트로 감성으로 다시 손봐 상업 활성화를 이어갔고, 한동안 이 시장은 전통시장 재생의 모범 사례로 자주 인용됐다. 그러나 2026년 들어 나온 몇몇 보도는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점포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 거리 분위기가 점차 산만해졌고, 한때의 활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다.

Artwork by alleymag.

그 평가가 전부는 아니다. 시장 골목 한편에는 여전히 오래전부터 자리를 지켜 온 가게들이 있다. 방앗간 간판을 내건 서울떡방앗간과 개미네방앗간, 냄비와 파리채를 늘어놓고 파는 영광상회 같은 곳들이다. 이들은 청년 상인들이 들고 나는 동안에도 한 번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역과 시장 사이, 백 년의 거리

지금도 매일 아침,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 골목으로 건너온다. 반나절 생활권이 된 KTX 덕분에, 이 시장은 광주를 지나치는 사람들에게도 잠깐 들렀다 가는 자리가 됐다. 그러나 애초에 이 길이 생긴 이유는 관광이 아니었다. 역이 섰고, 그 앞에 사람이 모였고, 장이 섰다. 백 년이 더 지난 지금도 그 순서는 바뀌지 않았다.

주말이 되면 이 거리는 또 한 번 표정을 바꾼다. 토요일이면 플리마켓 셀러들이 부스를 세우고, 버스킹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이 거리 곳곳에서 열린다. 평일 낮의 시장과 주말의 시장은 같은 간판 아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사이를 캐리어를 끌고 지나가는 여행객과, 장바구니를 든 동네 주민이 같은 보폭으로 걷는다.

한 번은 청년의 손으로 다시 태어났던 이 시장이 다음 십 년을 어떻게 건너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역 쪽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있는 한, 이 시장의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역 건너편의 시장
h2333170님이 광주송정역에서 도보로 시장까지 걸어가며 남긴 사진입니다. 전광판에 환영 문구가 흐르고 머리 위로는 알전구가 줄지어 걸려 있습니다. 1913이라는 숫자 대신,
▲ 광주 광산구 송정동 · 2026.08 / 사진 h2333170 · https://blog.naver.com/h2333170/224394149629 h2333170님이 광주송정역에서 도보로 시장까지 걸어가며 남긴 사진입니다. 전광판에 환영 문구가 흐르고 머리 위로는 알전구가 줄지어 걸려 있습니다. 1913이라는 숫자 대신, 거리 자체의 표정으로 시장의 나이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SCENE 02 : 1913, 간판에 새긴 나이
treeeast님이 이른 아침 시장을 찾아 남긴 사진입니다. 입구의 아치 조형물에는 1913이라는 숫자와 송정역시장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걸려 있고,treeeast님이 이른 아침 시장을 찾아 남긴 사진입니다. 입구의 아치 조형물에는 1913이라는 숫자와 송정역시장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걸려 있고,
▲ 광주 광산구 송정로8번길 13 · 2026.09 / 사진 treeeast · https://blog.naver.com/treeeast/224407835817 treeeast님이 이른 아침 시장을 찾아 남긴 사진입니다. 입구의 아치 조형물에는 1913이라는 숫자와 송정역시장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걸려 있고, 그 아래로 진입금지 표지판과 오래된 상점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시장이 스스로의 나이를 간판으로 선언하는 방식입니다.
SCENE 03 : 옛 사진과 새 간판
lsl652님이 시장 골목에서 발견한 안내판입니다. 나무 벽에 걸린 사진 속에는 시계탑에 불이 켜진 밤의 시장 풍경이 담겨 있고,
▲ 광주 광산구 송정로8번길 13 · 2026.10 / 사진 lsl652 · https://blog.naver.com/lsl652/224428156657 lsl652님이 시장 골목에서 발견한 안내판입니다. 나무 벽에 걸린 사진 속에는 시계탑에 불이 켜진 밤의 시장 풍경이 담겨 있고, 그 아래로 기존 상인과 청년 상인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시장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이 거리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방식이 고스란히 담긴 장면입니다.
SCENE 04 : 걸어 들어가는 길
wlsa7님이 공영주차장 쪽에서 시장으로 들어서며 남긴 사진입니다. 나무 사이로 1913송정역시장이라 적힌 옥상 간판이 보이고, 모퉁이를 돌면 또 다른 아치형 입구가 나타납니다.wlsa7님이 공영주차장 쪽에서 시장으로 들어서며 남긴 사진입니다. 나무 사이로 1913송정역시장이라 적힌 옥상 간판이 보이고, 모퉁이를 돌면 또 다른 아치형 입구가 나타납니다.
▲ 광주 광산구 송정동 · 2026.09 / 사진 wlsa7 · https://blog.naver.com/wlsa7/224409457369 wlsa7님이 공영주차장 쪽에서 시장으로 들어서며 남긴 사진입니다. 나무 사이로 1913송정역시장이라 적힌 옥상 간판이 보이고, 모퉁이를 돌면 또 다른 아치형 입구가 나타납니다. 역에서 몇 걸음이면 닿는 거리라는 것이 사진만으로도 느껴집니다.
송정리역의 개통(1913년 10월 1일)과 광주송정역으로의 명칭 변경(2009년 4월 1일), 2015~2016년 청년몰 조성 프로젝트(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현대카드)와 2018년 레트로 거리 조성, 2026년 상권 평가 관련 서술은 디지털광주문화대전, 나무위키, 한국일보(2016.09.08), 위키백과, 그 외 2026년 보도를 확인해 정리했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방문 기록이 있으면 사진과 내용을 갱신한다.
1913송정역시장광주광산구송정동전통시장앨리매거진alleymag

바로가기 등록하시면, 더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