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1913송정역시장) 기차가 멈추자, 장이 섰다
광주송정역 맞은편, 백 년도 더 전에 역과 함께 생겨난 시장이 있다. 한 번은 청년의 손으로 다시 태어났고, 지금은 그 다음을 묻고 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10.05
- 골목
- 광주 1913송정역시장

광주송정역 3번 출구를 나와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시장이 시작된다. 역이 보이는 자리에 시장이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시장은 애초에 역 때문에 생겼다.
광주송정역의 전신인 송정리역은 1913년 10월 1일, 호남선 개통과 함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역이 문을 열자 그 앞으로 사람과 물자가 오갔고, 그 틈에 '매일송정역전시장'이라는 이름의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기차가 먼저 섰고, 장은 그다음에 섰다.
송정리역은 2009년 4월 1일 광주송정역으로 이름을 바꿨다. 역 이름은 몇 글자 고치는 일로 끝났지만, 그 앞의 시장이 백 년을 건너오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광주공항에서 기차를 타러 가던 한 여행자가 택시 기사에게 점심 먹을 곳을 물었던 적이 있다. 기사는 시장 입구에서 손님을 내려 주며 '국밥도 유명하고 먹을 것도 여러 가지 있다'고 알려 주었다. 광주를 잘 모르는 사람도, 광주를 매일 오가는 사람도 이 시장을 가리켜 하는 말은 비슷하다. 역에서 내리면, 바로 이 시장이다.

이름에 연도를 새긴 이유
지금 이 시장의 간판에는 '1913'이라는 숫자가 먼저 걸려 있다. 원래 이름이 아니었다. 2015년 1월부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현대카드가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당시 55개 점포 가운데 35퍼센트에 이르던 빈 점포 중 열 곳을 먼저 고쳐 썼다.
2016년 4월, 그렇게 비어 있던 자리마다 청년 상인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그리고 그해, 시장은 자신의 나이를 숨기지 않기로 했다. 개설 연도를 그대로 이름에 박아 '1913송정역시장'이라 고쳐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백 년 묵은 시장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간판으로 내걸었다.
그 시기 들어온 가게 중에는 지금도 이 시장을 대표하는 얼굴들이 있다. 우리밀 식빵을 내걸고 문을 연 또아식빵, 전통 부각을 현대적인 간식으로 재해석해 들어선 느린먹거리by부각마을. 모두 그 무렵, 빈 점포였던 자리에서 시작했다.
부각을 파는 가게 앞을 지나면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기름 향이 먼저 코를 잡아끈다. 김부각은 물론이고 다시마, 감자, 연근, 우엉 같은 재료에 찹쌀풀을 일일이 발라 바짝 말린 뒤 튀겨 낸다. 한 입 베어 물면 바삭,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고소한 찹쌀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진다. 인공적인 양념 맛이 아니라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남는다는 것이, 이 가게를 두고 자주 나오는 말이다. 수제 양갱부터 신선한 식빵, 옛날 방식 그대로 튀겨내는 튀김집까지 늘어선 골목은 그래서 하나의 커다란 먹거리 박물관처럼 보이기도 한다.

백 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이 거리가, 청년 상인들의 감각적인 아이디어와 오랜 노포의 푸근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평을 듣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다. 기차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둘러보기에 완벽한 동선을 제공한다는 말은, 이 거리가 단순히 오래된 상점가가 아니라 걸으며 소비할 수 있는 하나의 경험으로 다시 설계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2018년부터는 거리 전체를 레트로 감성으로 다시 손봐 상업 활성화를 이어갔고, 한동안 이 시장은 전통시장 재생의 모범 사례로 자주 인용됐다. 그러나 2026년 들어 나온 몇몇 보도는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점포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 거리 분위기가 점차 산만해졌고, 한때의 활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다.

그 평가가 전부는 아니다. 시장 골목 한편에는 여전히 오래전부터 자리를 지켜 온 가게들이 있다. 방앗간 간판을 내건 서울떡방앗간과 개미네방앗간, 냄비와 파리채를 늘어놓고 파는 영광상회 같은 곳들이다. 이들은 청년 상인들이 들고 나는 동안에도 한 번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역과 시장 사이, 백 년의 거리
지금도 매일 아침,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 골목으로 건너온다. 반나절 생활권이 된 KTX 덕분에, 이 시장은 광주를 지나치는 사람들에게도 잠깐 들렀다 가는 자리가 됐다. 그러나 애초에 이 길이 생긴 이유는 관광이 아니었다. 역이 섰고, 그 앞에 사람이 모였고, 장이 섰다. 백 년이 더 지난 지금도 그 순서는 바뀌지 않았다.
주말이 되면 이 거리는 또 한 번 표정을 바꾼다. 토요일이면 플리마켓 셀러들이 부스를 세우고, 버스킹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이 거리 곳곳에서 열린다. 평일 낮의 시장과 주말의 시장은 같은 간판 아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사이를 캐리어를 끌고 지나가는 여행객과, 장바구니를 든 동네 주민이 같은 보폭으로 걷는다.
한 번은 청년의 손으로 다시 태어났던 이 시장이 다음 십 년을 어떻게 건너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역 쪽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있는 한, 이 시장의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