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6 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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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스팟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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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광주 1913송정역시장) 알전구가 켜지기 전과 후

같은 골목이 아침과 밤에 전혀 다른 숨을 쉰다. 한쪽은 적막하고, 한쪽은 북적인다. 그 사이 어디쯤에서 이 시장은 매일 몇 번이고 표정을 바꾼다.

글
alleymag.
발행
2026.10.05
골목
광주 1913송정역시장
알전구가 켜지기 전과 후
Artwork by alleymag.

오전 여덟 시 반, 이 골목은 아직 아무도 깨지 않은 것 같다. 북적이는 시장의 활기 대신, 낮게 내려앉은 아침 햇살과 시원한 공기만이 골목을 채운다. 빛바랜 간판과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로, 밤새 꺼지지 않은 알전구 줄이 하늘을 가로지른다.

이 시간의 시장은 적막하리만큼 고요하다. 세월의 흐름 속에 현대적인 감각이 살짝 얹어졌지만, 아침 공기 속에 드러난 시장의 민낯은 여전히 정겨운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백 년 전 이 길을 걸었을 이들의 발걸음을 상상해 보게 되는 시간이다.

사투리로 쓰인 환영

시장 입구, 화단으로 쓰이는 노란 나무 상자들에는 손글씨가 적혀 있다. '아야, 머시매 쪼까 반반허네', '뭣이 중헌디', '감시롱 옴시롱 좋음시롱'. 전라도 사투리로 적힌 다정한 글귀들이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이 글귀들을 하나씩 읽다 보면, 지나가던 사람도 절로 웃음이 난다.

이 화단을 지나면 시장 골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거리라 차량 걱정 없이 걸을 수 있다. 오래된 점포 간판 아래로 새로 들어온 가게의 간판이 나란히 걸려 있고, 그 사이를 걷는 동안에는 두 세대의 시차가 한눈에 들어온다.

Artwork by alleymag.

시장 골목 간판에는 각 점포의 영업 시작 연도가 적혀 있다고 한다. 오래된 점포일수록 더 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그 숫자들을 하나하나 올려다보며 걷는 것만으로도, 이 거리가 지나온 시간이 가늠된다.

낮, 냄새로 걷는 길

해가 조금 더 높이 뜨면 이 골목은 냄새로 먼저 말을 건넨다. 부각을 튀기는 가게 앞에서는 담백하고 고소한 기름 향이 코끝에 와 닿고, 몇 걸음 더 가면 식빵 굽는 냄새가 그 향을 밀어낸다. 어느 한 곳에 멈춰 서지 않아도, 걷는 것만으로 이 거리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방앗간 앞을 지날 때는 사장님이 먼저 말을 건네기도 한다. 유리창에 적힌 글귀를 가리키며 읽어 보라 하고, 매장 안쪽까지 들어와 찍어 보라고 권하는 식이다. 그 말을 따라 들어간 자리에는 참기름 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고소한 냄새가 공기 중에 낮게 깔려 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의 자부심이 이렇게 냄새와 말투로 먼저 전해지는 거리다.

점심때가 가까워지면 국밥집 문 앞으로 줄이 생긴다. 한자리가 비면 누군가 재빨리 앉고, 그 뒤로 또 줄이 선다. 뜨거운 국물 냄새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뒤섞이는 이 짧은 순간이, 아침의 적막과 가장 멀리 떨어진 풍경이다.

Artwork by alleymag.

비가 한 차례 쓸고 간 날의 이 골목은 또 다르다. 물기를 머금은 보도블록 위로 처마 끝 빗물이 떨어지고, 국숫집 안쪽에서는 뜨끈한 국물이 평소보다 더 반갑게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다. 날이 궂으면 궂은 대로, 이 거리는 나름의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맑은 날엔 맑은 날대로, 흐린 날엔 흐린 날대로, 이 골목을 걷는 사람의 마음까지 함께 젖었다 마르는 셈이다.

역과 시장 사이, 삼 분

광주송정역에서 시장 입구까지는 걸어서 삼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기차 시간이 어정쩡하게 남은 여행자들이 대합실 대신 이 골목으로 건너오는 이유다. 길지 않은 일자형 골목이라 왕복 십오 분이면 시장 전체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캐리어를 끌고 온 사람들이 시장 골목으로 들어선다. 기차 시간에 쫓기는 여행객에게는 역과의 거리가 무엇보다 큰 장점이다. 짐을 맡길 보관함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도, 결국 발걸음은 고소한 냄새가 나는 쪽으로 향한다.

해가 저물면 이 거리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알전구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고, 낮 동안 조용하던 골목이 목소리로 채워진다. 매일 오전부터 밤 열 시경까지 불을 밝히는 이 시장은, 밤에 방문하면 또 다른 야경을 보여 준다는 평을 듣는다.

같은 시간이라도 요일에 따라 공기가 또 달라진다. 평일 저녁은 퇴근길에 들른 사람들이 조용히 장을 보고 흩어지는 정도지만, 금요일 밤이면 어딘가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적막하던 아침과 북적이는 금요일 밤 사이, 이 골목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표정을 짓는다.

Artwork by alleymag.

그런 밤이면 플라스틱 의자 끄는 소리와 맥주잔 부딪히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한데 섞인다. 풍선을 만들어 주는 손길 앞으로 아이들이 줄을 서고, 그 옆 테이블에서는 어른들이 잔을 든다. 낮 동안 장을 보던 사람들의 걸음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이 거리는 밤의 리듬을 탄다.

밤이 깊어도 머리 위의 알전구는 꺼지지 않는다. 동글동글한 조명이 지붕 없는 골목을 따라 길게 이어져, 낮에는 그저 전깃줄로만 보이던 것들이 해가 지면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그 아래로 하루 종일 걸었을 발걸음들이 다시 모여든다. 낮에 본 간판들도 조명 아래서는 색이 달라 보여서, 같은 가게를 두 번 처음 보는 기분이 든다.

동료를 기다리던 어느 아침, 한 방문자는 이 적막한 골목을 걸으며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따뜻한 옛 기억의 온기를 채울 수 있었다고 적었다. 같은 골목이 저녁이 되면 북적이는 소음으로 채워진다는 것을 그는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적막과 소란, 이 두 얼굴을 다 아는 사람만이 이 시장을 온전히 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아침의 벽
treeeast님이 이른 아침 산책길에 남긴 사진입니다. 흰 벽면 가득 1913송정역시장이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 광주 광산구 송정동 · 2026.09 / 사진 treeeast · https://blog.naver.com/treeeast/224407835817 treeeast님이 이른 아침 산책길에 남긴 사진입니다. 흰 벽면 가득 1913송정역시장이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그 위로 아직 꺼지지 않은 알전구 줄과 전깃줄이 아침 하늘을 가로지릅니다. 북적이는 낮의 시장과는 전혀 다른, 적막한 얼굴입니다.
SCENE 02 : 사투리가 적힌 화단
misong0106님이 시장 입구에서 발견하고 웃음이 터졌다고 적은 사진입니다. 노란 나무 화단 상자마다 전라도 사투리로 적힌 글귀가 쓰여 있고,misong0106님이 시장 입구에서 발견하고 웃음이 터졌다고 적은 사진입니다. 노란 나무 화단 상자마다 전라도 사투리로 적힌 글귀가 쓰여 있고,
▲ 광주 광산구 송정동 1913송정역시장 입구 · 2026.05 / 사진 misong0106 · https://blog.naver.com/misong0106/224294544878 misong0106님이 시장 입구에서 발견하고 웃음이 터졌다고 적은 사진입니다. 노란 나무 화단 상자마다 전라도 사투리로 적힌 글귀가 쓰여 있고, 그 옆으로 작은 화초가 심겨 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하나씩 읽게 만드는, 이 시장만의 환영 인사입니다.
SCENE 03 :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treeeast님이 시장으로 건너가기 전 담은 광주송정역의 모습입니다. KTX를 타기 전후로 짧은 틈이 생기면,
▲ 광주 광산구 송정역로 100-7 · 2026.09 / 사진 treeeast · https://blog.naver.com/treeeast/224407835817 treeeast님이 시장으로 건너가기 전 담은 광주송정역의 모습입니다. KTX를 타기 전후로 짧은 틈이 생기면, 역 앞 횡단보도만 건너면 시장이 시작된다는 사실이 이 사진 한 장으로 설명됩니다.
시간대별 분위기 묘사는 2026년 9월 이 시장을 찾은 여러 방문자의 기록을 바탕으로 종합했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방문 기록이 있으면 사진과 내용을 갱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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