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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김해 봉리단길) 봉황이 내려앉은 자리에, 커피 간판이 켜진다

조선 후기의 부사는 이 구릉의 생김새를 보고 봉황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로부터 이백 년 가까이 지나, 그 날개 아래 골목은 또 한 번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글
alleymag.
발행
2026.10.05
골목
김해 봉리단길
봉황이 내려앉은 자리에, 커피 간판이 켜진다
Artwork by alleymag.

경남 김해시 봉황동, 야트막한 구릉 하나가 동네 한가운데 솟아 있다. 조선 후기 이 고을을 다스리던 부사 정현석은 그 구릉의 생김새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날개를 활짝 편 봉황을 닮았다며 봉황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동네 이름도 거기서 따와 봉황동이 되었다.

그 구릉 아래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이름보다 훨씬 오래된 시간이 묻혀 있다. 1907년, 이 자리에서 국내 최초의 고고학 조사가 이뤄졌다. 금관가야 사람들이 살던 집터였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됐고, 2001년에는 그 범위가 한 번 더 넓어졌다. 고상가옥과 망루가 복원돼 지금도 구릉 한쪽에 서 있다. 이천 년 전 사람이 살던 자리 바로 옆에서, 지금 사람들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복원된 고상가옥은 기둥만으로 바닥을 땅에서 띄운 구조라, 처음 보는 사람은 한참을 멈춰 선다. 망루에 올라서면 구릉 아래로 펼쳐진 지금의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천 년 전에도 누군가 비슷한 높이에서 이 들판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 시선과 지금 카페 창가에 앉은 사람의 시선이 같은 땅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다가온다.

Artwork by alleymag.

이 골목으로 걸어 들어오는 길도 그 시간을 한 번 더 통과하게 되어 있다. 걸음이 느린 사람은 수로왕릉 쪽에서부터 시작한다. 초록빛 고분 언덕을 지나 왕릉의 돌담길을 걷고, 가야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지나 골목 안 작은 카페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적은 방문객이 적지 않다. 붉은 홍살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도심의 소음이 한 걸음씩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고도 한다.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오래 머물게 되는 길이라는 말도 뒤따른다. 가야를 세운 사람의 무덤에서 시작한 걸음이, 그 후손들이 살던 자리를 지나, 지금 사람들이 커피를 내리는 가게 앞에서 끝난다. 하나의 산책으로 묶이는 이 동선 자체가 이 골목의 정체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지도일지도 모른다.

이름 없이 불리던 길

구릉 바로 아래 골목은 오랫동안 특별할 것 없는 동네였다. 낡은 가정집과 작은 상점이 늘어선 구도심, 그 풍경이 바뀌기 시작한 건 2016년 무렵부터다. 김해 원도심을 되살리려는 사업이 이 골목까지 번졌고, 2020년에 걸쳐 감각 있는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열었다. 2018년부터 2021년 사이에는 간판과 벽면, 가로시설을 정비하는 조성사업도 이어졌다.

Artwork by alleymag.

그 사이에도 많은 집은 겉모습을 바꾸지 않았다. 오래된 나무와 낮은 돌담, 단정하게 정리된 길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돌담 하나를 끼고 돌면 느닷없이 카페 간판이 나타난다. 평범한 가정집 대문 안쪽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작은 화분 몇 개가 창가에 줄지어 있다. 여기에 카페가 있다고, 처음 걷는 사람은 두 번 돌아보게 된다.

김해에 처음 오는 사람이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면 대개 수로왕릉이 가장 먼저 뜬다. 역사에 관심이 있어서든 없어서든 일단 그 순서를 따라 걷다가, 네 곳 정도를 지나고 나서야 이 감성 골목을 만난다는 사람이 많다.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이천 년 전의 역사와 지금의 카페 골목을 한나절 안에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김해 역사 여행의 의외의 매력이라고 적은 방문객도 있었다. 왕릉을 먼저 보고 온 사람일수록 이 골목의 가벼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두 번째로 받은 이름

구릉을 닮아 봉황동이라는 이름이 생긴 뒤로도, 이 골목은 한동안 제 이름이 따로 없었다. 가게들이 들어서고 사람이 모이자 누군가 봉황동과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합쳐 봉리단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빌려온 이름이었지만 금세 입에 붙었다.

2019년, 김해시는 정식 도로명을 정하려고 주민들에게 물었다. 결과는 봉황대길 62퍼센트, 봉리단길 20퍼센트. 그해 9월, 길의 이름은 봉황대길로 공식 변경됐다. 가야 역사와 그 시대 설화가 서린 지명을 되찾겠다는 뜻이었다.

Artwork by alleymag.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 길을 봉리단길이라 부른다. 표지판에는 봉황대길이라 적혀 있고, 블로그와 지도 앱에는 봉리단길이라 쓰여 있다. 어느 이름으로 검색해도 같은 골목이 나온다는 것, 그것이 지금 이 길의 가장 정확한 설명일지도 모른다.

처음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이 두 이름이 자주 혼란을 준다. 내비게이션에 봉황대길을 쳤는데 주차장 이름은 봉리단길로 나오고, 블로그 후기는 둘을 섞어 쓴다. 그래도 길을 잘못 찾는 사람은 드물다. 봉황동유적 패총전시관 표지판 하나만 보여도, 혹은 카페 간판 하나만 보여도 여기가 맞는 골목이라는 걸 금방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이름은 두 개지만 길은 하나다.

두 이름이 나란히 쓰이는 동안에도 골목 자체는 계속 채워지고 있다. 간판을 새로 단 가게가 생기고, 몇 해째 같은 자리를 지키는 가게도 있다. 이름을 둘러싼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걸어도 골목은 그저 걷기 좋은 길로 느껴질 테지만, 그 이름 하나에 봉황을 닮은 구릉과 이천 년 전 마을, 그리고 빌려 썼다가 돌려준 또 하나의 이름까지 겹쳐 있다는 걸 알고 걸으면 같은 길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봉황대길 46번지
다녀온 블로거 dlwldus3213이 골목 초입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돌기둥에 박힌 봉황대길 46번지 표지판과, 그 옆 오래된 옷가게 진열창이 함께 담겼습니다.다녀온 블로거 dlwldus3213이 골목 초입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돌기둥에 박힌 봉황대길 46번지 표지판과, 그 옆 오래된 옷가게 진열창이 함께 담겼습니다.
▲ 경남 김해시 봉황동 · 2026.10 / 사진 dlwldus3213 · https://blog.naver.com/dlwldus3213/224428776577 다녀온 블로거 dlwldus3213이 골목 초입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돌기둥에 박힌 봉황대길 46번지 표지판과, 그 옆 오래된 옷가게 진열창이 함께 담겼습니다. 산자락을 등진 이 거리가 공식 도로명과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 두 이름을 함께 쓰고 있다는 것을 표지판 하나가 보여줍니다.
SCENE 02 : 담장 안쪽, 또 다른 시간
같은 블로거가 카페 마당과 그 창 안쪽에서 담은 두 장입니다. 낮은 돌담과 우체통, 마당의 조약돌 길이 옛집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같은 블로거가 카페 마당과 그 창 안쪽에서 담은 두 장입니다. 낮은 돌담과 우체통, 마당의 조약돌 길이 옛집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 경남 김해시 봉황동 · 2026.10 / 사진 dlwldus3213 · https://blog.naver.com/dlwldus3213/224428842865 같은 블로거가 카페 마당과 그 창 안쪽에서 담은 두 장입니다. 낮은 돌담과 우체통, 마당의 조약돌 길이 옛집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안에서 내다본 창 너머로는 기와지붕을 인 옆집이 걸립니다. 오래된 살림집 곁에 카페가 들어선 이 골목의 풍경이 한 프레임 안에 담겼습니다.
이 글의 역사 서술은 국제신문, 김해시보, 디지털김해문화대전, 위키백과 등 공개 자료로 확인한 사실만 담았다. 2026년 10월 기준 공식 도로명은 봉황대길이며, 봉리단길은 지금도 널리 쓰이는 통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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