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만의 고유한 온도와 아날로그의 역사를 압축한 첫 문장
시청이 떠난 뒤 한동안 이 거리는 불이 꺼진 채였다. 그 자리를 다시 채운 것은 관공서가 아니라 작업실 스물일곱 개였다.
속초관광수산시장 안쪽, 닭을 팔던 좁은 통로 하나가 고속도로 하나와 방송 한 번을 지나며 전국이 줄을 서는 골목이 됐다. 그런데도 머
법정동 이름이 있고, 행정이 붙인 사업명이 있고, 몇 해 전부터 사람들 입에 붙은 애칭이 있다. 순천 원도심의 이 거리는 같은 골목을
안산역을 나서 몇 블록만 걸으면 한글 간판이 드물어진다. 이 거리가 지금의 얼굴을 갖게 된 데에는, 공장이 사람을 불러들이고 외환위기
대형마트에 밀리고 화재와 외환위기까지 겹쳐 발길이 끊겼던 원주중앙시장 2층. 2016년, 그 막막한 공간에 청년들이 들어와 길을 냈다
양림동이 선교사들의 동네가 된 것은 풍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가장 싼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 흔한 이유 하나가 백 년 넘게 이
이름조차 하늘에서 빌려 온 골목이 있다. 한때 제주에서 가장 밝았던 이 거리는, 지금 다시 불을 켜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제민천은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하천이다. 그 이름이 무색하게 오래 낡아 있던 이 물줄기 옆으로, 최근 몇 년 새 다시
시장은 이름을 세 번 바꾸고 한 번 불에 탔다. 그러고도 입구에 걸린 그 숫자만은 지우지 않았다.
청주읍성은 백 년도 더 전에 헐렸다. 그런데 이 거리는 여전히 성 안쪽 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울산 최초의 기차역이 있던 이 자리는 산업도시의 스물 몇 살들이 밤늦도록 서성이던 골목이 됐고, '젊음의거리'라는 이름은 지금도 그대
밀물 때 배를 대던 다리는 이제 없다. 그런데 이 골목은 여전히, 무언가를 건너게 하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통영 중앙시장 뒷산의 낡은 동네는 한때 지도 위에서 지워질 계획이었다. 그 언덕을 지킨 것은 행정이 아니라 벽에 칠해진 물감이었다.
목포 오거리 언덕을 걷다 보면 자꾸 옛 문패와 마주친다. 영사관이었다가 시청이 되고, 은행이었다가 음악당이 된 건물들이 이 골목의 뼈
여수 낭만포차거리에는 오래된 유래담이 없다. 있는 것은 2012년의 노래 한 곡과, 다리 밑으로 옮겨 앉은 2019년의 결정이다.
가수는 다섯 살에 이 골목을 떠났지만, 골목은 서른 해도 더 지나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신포(新浦), 새롭게 번창하는 포구라는 뜻이다. 개항과 함께 지어진 이 이름은 백 년 넘게 이 동네가 스스로를 고쳐 부르는 방식이 되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은 이 자리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이태원의 골목에서 건너온 이름이 신라 고분 곁에 내려앉기까지, 이 골목이 밟아 온
전주 한옥마을은 전통이 오래 쌓여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성벽이 뜯겨나간 자리에서, 사람들이 맞서기 위해 택한 방식이 한옥이었다.
부산이 임시수도였던 시절, 사거리 노점에서 시작된 자리가 칠십 년을 건너 스무 몇 개의 간판으로 남았다.
명주라는 이름은 천 년 가까이 강릉을 대표하던 행정의 중심이었다. 시청이 떠나고 골목이 빛바랜 뒤, 이 자리를 다시 채운 것은 낡은
군산항이 문을 연 순간부터 이 동네의 주인은 몇 번이나 바뀌었고, 그 시절 세워진 건물들만 남아 지금 거리의 얼굴이 되어 있다.
대전역 뒤편, 철도 노동자들이 살던 사택은 부서지는 대신 남는 쪽을 택했다. 백 년을 버틴 지붕 아래서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다른 시
방산이라는 두 글자에는 반어가 숨어 있다. 그리고 그 반어가 시작된 자리는 과자에서 인쇄로, 인쇄에서 포장재로, 업종을 세 번 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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