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만의 고유한 온도와 아날로그의 역사를 압축한 첫 문장
한때 해 질 녘이면 감쪽같이 사라진다고 해서 도깨비시장이라 불렸다. 이제 그 시장은 다른 동네에서 다른 이름을 걸고 있다.
1969년부터 이 자리에 있던 부대의 이름이, 부대가 사라진 뒤에도 골목의 이름으로 남았다. 그 이름을 딛고 자란 골목은 한 번은 넘
압구정 로데오라는 이름은 이 골목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태평양 건너 거리의 이름을 빌려 붙인 자리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시절을
군사가 주둔하던 성 밖 벌판은 대사관과 요정과 문인의 시간을 차례로 통과하며, 서울에서 담장이 가장 높은 동네가 되었다.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과 프로방스마을은 한 걸음 차이로 닿아 있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시간대를 품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만들어진
송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에도 이 골목엔 이미 저녁이 있었다. 그 이름이 자리를 잡은 뒤로는, 호수와 타워가 함께 보이는 자리마다
광교신도시는 처음부터 호수공원을 계획했다. 어떤 건물의 주차장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거닐 쉼터를 만들었고, 그 물가에 카페 상권이 자
조선시대부터 이씨 집성촌으로 알려졌던 동편마을이 반세기 만에 택지 단지로, 그리고 카페거리로 변모했다. 이 골목의 지명처럼, 이 자리
한강신도시 개발이 남긴 것은 아파트만이 아니었다. 상업과 문화를 담은 수변 운하, 야간이 되면 조명과 음악분수로 변신하는 거리. 베네
일산의 주택가는 길 하나를 경계로 둘로 나뉜다. 한쪽은 수십 년을 고이 자리를 지키는 원주민 마을이고, 다른 한쪽은 지난 십 년을 우
2003년 일산에 처음 선 스트리트형 쇼핑몰은 거리를 상품화하는 법을 보여줬다. 23년이 지난 지금, 이 골목에 남아 있는 것은 수평
2016년 신분당선이 흙을 헤친 자리에 역이 세워지고, 그 위에 사람이 내렸다. 철로 담장처럼 가른 역 동쪽과 서쪽, 두 개의 다른
국방부가 자리 잡은 지 아홉 해 만에, 그 앞 골목에 대구탕집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강풀의 순정만화 속 배경이 성내동 골목의 벽면으로 물질화했다. 2013년 시작된 도시재생 사업은 낙후된 주택가를 만화 거리로 만들었고
1884년 러시아공사관이 들어섰던 자리에서 시작된 이 골목은, 구한말 외교의 중심지에서 근대 종교·교육의 요람으로 변모했다. 덕수궁
서울의 경리단길을 따라 이름을 붙은 행리단길.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주택가가 스스로 카페거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도봉산 등산로 입구, 첫차를 타고 온 이들의 발걸음이 닿기도 전에 가마솥에는 이미 김이 오른다. 1970년대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한
조선 도성의 문이 섰던 자리에서, 백 년이 지나 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엔 동쪽 끝 광희문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앉은 골목 전체가 하
1981년 서울프랑스학교가 내려왔을 때 서래마을은 아직 프랑스인의 마을이 아니었다. 그저 강남 부자들이 모여드는 한 동네였다. 그런데
조선시대 기우제를 지내던 무릎 꿇은 자리에서 시작된 이태원 우사단길. 오래된 골목은 기우제의 어떤 성질, 빌고 바라는 마음, 하늘과
북촌한옥마을이 주거지에서 관광지로 바뀌어 온 변화 자체가 이 골목의 정체성이 되었다
관광객이 늘수록 주민의 밤은 깊어졌다. 2006년 도시예술 프로젝트로 시작된 벽화마을이 십 년 뒤, 주민들 손으로 벽화를 지우던 일이
조선 초기부터 미술을 담아온 거리가, 일제강점기에는 골동품 상점의 무덤이 되었고, 1980년대에는 화방과 공예점의 요람이 되었다. 그
명동은 500년을 한 자리에서 살아온 동네가 아니다. 조선부터 일제를 거쳐 해방, 고도 성장, 글로벌 시대까지 시대마다 몸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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