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리단길) 이름은 이 거리보다 늦게 왔다
송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에도 이 골목엔 이미 저녁이 있었다. 그 이름이 자리를 잡은 뒤로는, 호수와 타워가 함께 보이는 자리마다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13
- 골목
- 송리단길

송리단길이라는 이름은 이 거리보다 늦게 왔다.
이름이 붙기 전에도 이 자리엔 이미 동네가 있었다. 석촌호수를 낀 골목마다 반찬가게와 오래된 밥집이 먼저 자리를 잡았고, 동네 사람들은 그저 가까운 상권으로 여기며 무심히 드나들었다. 이 일대 상권은 지금의 이름이 붙기 한참 전부터 근린 상권으로 있어 왔다고 전한다. 이름이 없어도 골목은 골목으로서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의 이름이 이 거리에 붙은 것은 2018년 무렵이다. 몇 해 앞서 경리단길이 뜨면서 전국의 골목마다 리단길이라는 말이 따라붙던 시절이었다. 망리단길에 이어 이 거리는 두 번째로 그 이름을 빌려 왔다고 전해진다. 유행하던 작명법을 그대로 가져온 이름인 셈인데, 그 사정을 아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다.
그 사정을 몰라도 이 골목을 걷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이름은 결국 나중에 찾아온 사람들을 위한 표지판 같은 것이라서, 원래 여기 살던 이들에게는 그저 늘 다니던 길일 뿐이다.

이 골목이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금을 긋기는 사실 쉽지 않다. 좁게는 석촌호수와 백제고분로를 잇는 한 줄기 골목을 가리키지만, 넓게는 석촌호수로를 따라 늘어선 카페 거리 전체를 부르는 말로도 쓰인다. 정확한 경계는 몰라도, 걷다 보면 공기가 달라지는 지점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빌려 온 이름치고는 꽤 오래 붙어 있는 셈이다. 한때는 그저 유행어에 가까웠던 이 이름이 이제는 지도 위에도 익숙하게 찍힌다. 동네가 먼저 있었고 이름이 나중에 왔는데, 그 순서가 뒤바뀐 줄도 모를 만큼 이 거리는 그 이름을 제 것처럼 두르고 걷는다. 원래 있던 얼굴 위에 새 이름표 하나가 덧붙은 정도로 여기면 될 일이다.
롯데타워가 보이는 자리부터
이 거리가 지금의 얼굴을 갖추게 된 데는 비교적 뚜렷한 계기가 있다. 2014년 롯데월드몰이 완공되고 석촌호수 둘레가 새로 정비되면서, 이 일대는 데이트 코스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난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이 골목으로 이어졌고, 그 흐름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호수와 타워가 함께 눈에 들어오는 자리는 지금도 이 골목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몰리는 곳이다. 카페 앞에 서서 하늘과 타워가 한 프레임에 담기는 사진을 남기고 나서야, 이 거리에 제대로 왔다는 느낌이 든다고 다들 말한다. 그 한 장을 찍으려고 일부러 줄을 서는 사람도 있고, 사진을 다 찍고 나서야 비로소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는 사람도 있다.
정작 그 자리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 매일 같은 창밖을 보며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는 사람에게 호수와 타워는 배경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방문객의 걸음과 그곳에 상주하는 이의 걸음이 같은 골목 위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겹친다.
지금 이 골목에 채워진 것
지금 이 거리를 걸으면 카페와 브런치집, 그 사이사이를 메운 작은 쿠키 가게와 와인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래전부터 있던 반찬가게 곁으로 새로 생긴 디저트 가게가 나란히 서 있고, 해가 지면 술집 앞으로 삼삼오오 줄이 늘어선다. 낮과 밤의 얼굴이 이렇게 다른 골목도 흔치 않다.

우드톤 인테리어에 조명을 낮춘 카페가 유독 많은 것도 이 골목의 얼굴이다. 테이블 사이 간격을 넉넉하게 둔 곳들이 많아서, 어느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공간처럼 느껴진다는 말도 자주 들린다. 혼자 와서 창가에 앉아도 어색하지 않은 골목이라는 뜻이고, 그래서인지 평일 낮에도 자리는 자주 찬다.
이 거리를 오래 다닌 사람들은 그 변화를 몸으로 기억한다. 몇 해 전만 해도 드문드문했던 자리에 지금은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그 사이로 여전히 오래된 간판 하나가 버티고 서 있는 걸 보면 묘한 안도감이 든다.
그 밀도를 만든 것은 결국 이 자리를 찾는 사람들의 반복이다. 처음엔 호수와 타워를 보러 왔던 걸음이 몇 번 오가는 사이 단골 카페 하나를 찾는 걸음으로 바뀐다. 방문객이었던 이가 어느새 이 골목의 일부가 되는 순간이다.
이름은 나중에 왔지만 동네는 원래 거기 있었다. 그 사실을 굳이 기억하며 이 골목을 걷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호수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뒷모습만이, 이 거리가 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는지를 가장 조용히 말해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