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6 MON
스팟 데이터베이스 555 ABOUT
alleymag. 골목을 걷고, 재고,
기록하는 로컬 아카이브
기록한 골목92
발행 아티클2192
등록 스팟555
실측 업소0
기록 시작2026.09

(황학동 풍물시장) 도깨비가 떠난 자리

한때 해 질 녘이면 감쪽같이 사라진다고 해서 도깨비시장이라 불렸다. 이제 그 시장은 다른 동네에서 다른 이름을 걸고 있다.

글
alleymag.
발행
2026.01.14
골목
황학동 풍물시장
도깨비가 떠난 자리
Artwork by alleymag.

8·15해방 이후, 청계천변에는 고물을 이고 지고 나온 이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팔 것이 마땅치 않던 시절, 남의 집에서 나온 낡은 물건을 내다 파는 일이 하루하루의 생계가 되었다.

고물상들이 옮겨 다니는 동안에도 손님은 꾸준히 있었다. 남들이 버린 물건에서 아직 쓸 만한 부분을 찾아내려는 사람들이, 새로 자리 잡은 곳마다 다시 모여들었다.

1960년대 말, 청계천 복개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청계3가와 4가에 있던 고물상들이 청계천8가 쪽으로 밀려왔다. 물길을 덮는 공사가 구간마다 끝날 때마다, 상인들은 다음 자리를 찾아 다시 짐을 꾸려야 했다.

1977년 12월, 청계천 전체가 마침내 콘크리트 아래로 사라졌다. 그 위로 넓은 도로가 났고, 그제야 황학동에는 독립된 상권 하나가 제 이름을 걸고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도로가 난 자리 아래로는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았다. 그 대신 그 위로 상인과 손님이 오가는 발걸음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밤마다 사라지는 시장

사람들은 이 골목을 도깨비시장이라 불렀다. 낡고 을씨년스러운 물건들이 오가는 모습에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고, 해 질 녘이면 노점들이 감쪽같이 걷혀 사라지는 모습에서 비롯했다는 설도 있다.

Artwork by alleymag.

두 가지 설 모두 이 시장의 성격을 정확히 짚는다. 낮에는 무엇이든 쌓여 있다가, 밤이 되면 정말로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골목이 비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또 다른 물건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이 골목의 상인들에게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아무리 낡고 망가진 물건이라도, 이곳 상인의 손을 한 번 거치면 다시 쓸 만한 물건으로 돌아온다고 알려졌다. 고치는 손이 곧 이 골목의 재주였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골목에 가면 없는 게 없다는 말이 돌았다. 실제로 무엇이 있는지보다, 무엇이든 있을 것 같다는 그 기대가 이 골목을 찾게 만든 힘이었다.

1970년대 이후로는 삼일아파트를 중심으로 전자골목과 가구골목, 자동차 부속품골목, 의류골목이 차례로 들어섰다. 노점들은 그 사이사이 긴 줄을 이루며 골목 하나를 빈틈없이 채웠다.

골목 하나에 전자골목과 가구골목, 자동차 부속품골목과 의류골목이 나란히 붙어 있다는 것은, 이 동네가 어느 한 가지 물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복원이 밀어낸 자리

그렇게 반세기 가까이 이어지던 풍경은 2003년에서 2005년 사이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사업을 밀어붙이면서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던 노점들이 하나둘 철거 대상이 되었다.

Artwork by alleymag.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켜 온 노점들에게 철거는 단순한 공사 안내문 한 장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다져 온 자리를 두고 다시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일이었다.

2004년 1월, 동대문운동장 안에 황학동시장을 본뜬 풍물시장이 새로 문을 열었다. 갈 곳을 잃은 노점상들은 짐을 꾸려 그리로 집단 이전했다. 시장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있던 자리는 사라졌다.

머무를 수 있는 시간도 길지 않았다. 2006년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막 자리를 잡은 풍물시장에는 다시 재이전이 결정되었다. 두 번째 이사였다.

2008년 4월 26일, 풍물시장은 동대문구 신설동의 옛 숭신여자중학교 부지로 최종 이전했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서울풍물시장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얻었다. 황학동에서 태어난 시장이 다른 동네에서 새 이름표를 달게 된 셈이다.

두 번의 이전을 거치는 동안, 도깨비시장이라는 이름은 점점 옅어지고 서울풍물시장이라는 이름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름이 바뀌는 사이에도, 황학동은 그 시장이 태어난 자리로 남았다.

Artwork by alleymag.

남은 사람들

도깨비시장이 신설동으로 완전히 옮겨간 뒤, 황학동 중구 일대에 남은 것은 주방거리와 만물시장이었다. 지금도 이 골목에서는 중고 주방기구와 가구, 가전제품이 오간다.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사이에 뚜렷한 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점을 하던 이들 다수가 신설동으로 옮겨갔고, 이미 건물 안에 가게를 낸 이들은 굳이 옮길 이유가 없어 그 자리에 남았다.

만물시장은 1960년대부터 형성된 중고시장 가운데 하나로, 한때는 도깨비시장의 일부이기도 했다. 도깨비시장이 떠난 자리에서, 만물시장은 떠나지 않고 남은 쪽이었다.

이 일대에는 약 1천여 개에 이르는 상점이 자리한다. 골동품과 중고 가구, 가전제품, 시계, 보석, 피아노, 카메라, 각종 기계와 공구류까지, 팔 수 있는 물건의 종류만큼이나 상점 하나하나의 얼굴도 저마다 다르다.

간판을 하나씩 올려다보면 업종을 짐작하기 어려운 가게들도 있다. 그 안에 무엇이 쌓여 있는지는 문을 열고 들어가 봐야 안다. 셈이 아니라 눈과 손으로 물건을 알아보던 시절의 방식이 아직 이 골목에는 남아 있다.

도깨비는 원래 해 질 녘이면 자취를 감췄다가 다음 날 다시 제자리에 나타나는 존재였다. 이번에 감쪽같이 사라진 시장도, 신설동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그 이름값을 하며 문을 열고 있을 것이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황학시장 간판
jhbluesss가 촬영한 황학시장 입구입니다. 오렌지색 간판 아래로 도소매와 창업 상담까지 적혀 있어 지금도 상권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jhbluesss가 촬영한 황학시장 입구입니다. 오렌지색 간판 아래로 도소매와 창업 상담까지 적혀 있어 지금도 상권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서울 중구 황학동 · 2026.08 / 사진 jhbluesss · https://blog.naver.com/jhbluesss/224368130152 jhbluesss가 촬영한 황학시장 입구입니다. 오렌지색 간판 아래로 도소매와 창업 상담까지 적혀 있어 지금도 상권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해 질 녘에는 네온사인이 하나둘 켜지며 다른 얼굴을 보입니다.
SCENE 02 : 다른 동네를 가리키는 이정표
jsyou2994가 촬영한 청계천 교차로와 만물상 골목 입구입니다. 신호등 옆 이정표가 서울풍물시장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지금은 다른 동네에 있는 그 시장의 흔적을 보여줍니다.jsyou2994가 촬영한 청계천 교차로와 만물상 골목 입구입니다. 신호등 옆 이정표가 서울풍물시장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지금은 다른 동네에 있는 그 시장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 서울 중구 황학동 · 2026.09 / 사진 jsyou2994 · https://blog.naver.com/jsyou2994/224422487931 jsyou2994가 촬영한 청계천 교차로와 만물상 골목 입구입니다. 신호등 옆 이정표가 서울풍물시장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지금은 다른 동네에 있는 그 시장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골목 안쪽에는 여전히 중고 물건들이 좌판처럼 쌓여 있습니다.
SCENE 03 : 지금 남은 골목
robot179가 촬영한 황학동 가구거리와 주방거리의 현재 모습입니다. 의자와 탁자가 거리로 나와 진열돼 있고, 주방기기 매장에는 스테인리스 조리대가 가득합니다.robot179가 촬영한 황학동 가구거리와 주방거리의 현재 모습입니다. 의자와 탁자가 거리로 나와 진열돼 있고, 주방기기 매장에는 스테인리스 조리대가 가득합니다.
▲ 서울 중구 황학동 · 2026.08 / 사진 robot179 · https://blog.naver.com/robot179/224394564678 robot179가 촬영한 황학동 가구거리와 주방거리의 현재 모습입니다. 의자와 탁자가 거리로 나와 진열돼 있고, 주방기기 매장에는 스테인리스 조리대가 가득합니다. 도깨비시장이 떠난 자리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상권입니다.
황학동 도깨비시장과 서울풍물시장에 관한 연도와 사실 관계는 한국일보, 경향신문, 동대문구 기억여행, 서울풍물시장 공식 자료, 서울기록원 등을 확인해 정리했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방문 기록이 있으면 사진과 내용을 갱신한다.
황학동중구도깨비시장서울풍물시장만물시장앨리매거진alleymag

바로가기 등록하시면, 더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