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원도심 칠성로) 별이 먼저 내려앉은 자리
이름조차 하늘에서 빌려 온 골목이 있다. 한때 제주에서 가장 밝았던 이 거리는, 지금 다시 불을 켜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19
- 골목
- 제주 원도심 칠성로

칠성로라는 이름은 하늘에서 왔다.
탐라시대, 제주 성안에는 일곱 곳에 돌로 쌓은 단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북두칠성의 자리를 따라 놓았고, 그 가운데 첫 별을 세운 곳이 지금 이 골목이었다. 사람들은 여기를 칠성골이라 불렀다. 별을 따서 이름을 붙인 골목은 흔치 않은데, 이 거리는 시작부터 그런 이름을 얻었다.
이름의 유래가 하나만 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제주 신화 칠성본풀이에는 함덕리에서 들어온 뱀신 일곱 마리가 이 골목에 살던 송대정 집안의 조상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어느 쪽을 따르든, 일곱이라는 숫자가 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같다.
지금도 그 흔적은 골목 안쪽에 남아 있다. 번화한 동문시장 바로 곁인데도 골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면 공기가 달라진다. 조용한 정원과 오래된 건물의 결이 펼쳐지고, 대로에서 나던 소리가 한 겹 걸러져 들린다.
지금도 골목 어귀 표지판에는 칠성골이라는 옛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공영주차장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문구 바로 옆에, 오래전 이름이 아무렇지 않게 나란히 적혀 있다.

별이 가장 밝았던 시절
일제강점기에 이 거리는 일본식 가로명을 따라 칠성통이라 불렸다. 근대적인 상점들이 이 무렵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칠성로는 곧 제주 상권의 중심지가 되었다. 제주 상권의 원조지라는 말이 붙은 것도 이때부터다. 지금의 이름인 칠성로를 갖게 된 것은 1960년대 후반의 일이다.
1950년대에는 다방이 이 골목의 얼굴이었다. 1954년 동백다방에서는 화가 강태석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그림을 걸어 둘 벽이 있었고, 그 앞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상점만 늘어선 거리가 아니라, 사람이 모여 말을 섞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원도심 중앙로의 건물 안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커피들로 채워진다. 원두를 고르고 향을 맡아 보고, 대표와 직원들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날그날 어울리는 한 잔을 찾아 준다. 큰 브랜드와 작은 브랜드가 한자리에 모이고, 사람들은 밝은 표정으로 서로를 맞이한다.

그 다방 문화의 기억은 지금도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원도심에서 커피 행사가 열리면 어김없이 칠성로의 옛 다방 이야기가 다시 소환된다. 그 시절 다방에서 틀어 주던 노래를 다시 들려주고, 그때의 방식대로 사진을 찍어 주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한다. 골목은 평소엔 잊고 있다가도, 누군가 물으면 그제야 기억을 꺼내 온다.
1973년, 도내에서 처음으로 백화점 형태의 대형 매장인 아리랑백화점이 이 거리에 문을 열었다. 칠성로는 그때 가장 큰 호황을 누렸고, 사람들은 이 골목을 제주의 명동이라 불렀다. 별을 딴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밝던 시절이었다.
별이 흐려진 시간
밝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1980년대 들어 칠성로는 쇠락하기 시작했다. 골목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신작로가 생겼고, 지하상가가 들어섰다. 연동과 노형동을 중심으로 신제주라는 새 시가지가 조성되면서 인구와 상권이 그쪽으로 옮겨 갔고, 칠성로의 힘은 빠르게 옅어졌다.
지금 이 골목을 걸으면 점포 네 곳 중 한 곳이 비어 있다. 불 꺼진 간판 옆에 또 다른 간판은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는, 그런 풍경이 이 골목의 지금이다.

다시 흐르는 물길 곁에서
칠성로 바로 곁에는 산지천이 흐른다. 물길을 따라 걸으면 이 골목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만큼 서로 맞닿아 있다. 이 하천은 1966년부터 1980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복개되었고, 그 위로 건물이 올라섰다. 물길이 사라진 자리에 도시가 들어선 셈이다.
그러다 환경 문제가 불거지자 1996년 그 구조물을 걷어냈고, 2002년에는 하천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 복원은 훗날 서울 청계천 복원사업의 모델이 되었다. 덮였다가 다시 흐르게 된 물길과, 밝았다가 흐려진 골목은 같은 시간을 나란히 지나온 셈이다.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가 칠성로 상점가의 빈 공간 열일곱 곳을 골라 다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시도를 시작한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상권은 흥하고 기울기를 반복했지만, 이름만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새로 들어온 가게들도 간판 어딘가에 여전히 칠성이라는 두 글자를 즐겨 쓴다. 오래된 이름을 빌려 쓰는 방식으로, 이 골목은 스스로의 내력을 잊지 않으려 한다.
별을 따서 이름을 지은 골목은, 그 이름값을 다시 한번 할 수 있을까. 물길이 그랬듯, 이 골목에도 다시 빛이 돌아올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