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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스팟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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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제주 원도심 칠성로) 한 건물 안에 네 개의 시절이 쌓여 있다

엘리베이터 안내판 하나로 올라가면 칠성뷔페가 있고, 그 위아래로 롤러스케이트장과 볼링장이 있다. 칠성로의 지금은 이렇게 층마다 다른 시절을 얹어 놓은 모습이다.

글
alleymag.
발행
2026.02.02
골목
제주 원도심 칠성로
한 건물 안에 네 개의 시절이 쌓여 있다
Artwork by alleymag.

엘리베이터 앞에 붙은 안내판 하나가 이 골목의 지금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의 면면도 한 가지 색이 아니다. 단체 회식을 위해 예약 전화를 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골목 안쪽 작은 가게를 골라 들어가는 여행객도 있다. 오래전부터 이 동네를 지켜 온 이들과, 최근 몇 년 사이 새로 자리를 잡은 이들이 같은 보도블록 위를 걷는다.

제주시 관덕로 11길, 비버리힐이라는 이름의 건물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층과 일 층엔 시티 오브 드림스, 삼 층엔 케이팝 롤러스케이트, 사 층엔 칠성뷔페, 오 층엔 탑볼링장. 육 층은 아직 오픈 준비 중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한 건물 안에 서로 다른 시절에 유행했던 것들이 층마다 나란히 쌓여 있는 셈이다.

칠성뷔페로 들어서면 그 안은 또 다른 시절의 공기다. 큰 원형 테이블과 룸이 갖춰져 있고, 단체 손님을 받을 채비가 되어 있다. 칠성로에서 쇼핑을 실컷 하고 뷔페로 배를 채우던 시절의 동선을 그대로 옮겨 놓은 구조다.

Artwork by alleymag.

입구에서 인원수에 맞게 계산하면 코인을 하나씩 나눠준다. 큰 코인으로는 소고기와 양갈비 스테이크를, 작은 코인으로는 구슬 아이스크림이나 뽑기 기계를 이용할 수 있다. 어른과 아이가 각자 다른 코인을 손에 쥐고 존마다 옮겨 다니는 구조는, 이 자리가 여전히 단체 회식과 가족 모임을 위해 짜인 공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같은 골목 안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빈자리를 채우려는 움직임도 있다. 최근 이 근방 부동산 매물을 소개하는 글에는 원도심 살리기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제주의 명동이라 불리던 칠성통과 관덕정 일대가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유입과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 매물 중 하나는 십 년 넘게 자리를 지켜 온 돈까스 가게다. 소개 글은 이 가게를 무권리로 승계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새로 들어올 사람이 권리금 부담 없이 십 년 노하우를 그대로 넘겨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가게가 살아남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 그 글에 함께 적혀 있다.

Artwork by alleymag.

실제로 이 골목의 도시재생을 맡은 기관은 상점가 안의 빈 공간 열일곱 곳을 골라 새로 문을 열 사람을 찾는 창업캠프를 열었다. 낡은 건물에 감성을 입힌 카페와 편집숍이 하나둘 들어서고, 대형 프랜차이즈보다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가게가 자리를 지키는 쪽으로 조금씩 무게가 옮겨 가고 있다는 것이 이 골목을 지켜본 이들의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칠성로를 그대로 걸어 보면, 네 곳 중 한 곳은 아직 비어 있다. 불 켜진 가게와 셔터 내린 가게가 나란히 붙어 있는 풍경이 드물지 않다. 도시재생의 서사와 빈 점포의 숫자는, 같은 골목 안에서 동시에 사실이다.

공실과 창업은 이 골목에서 비슷한 속도로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도시재생 창업캠프가 열일곱 개의 빈 공간을 채우려 애쓰는 동안에도, 다른 자리에서는 또 새로운 공실이 생겨난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빠른지는 아직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칠성뷔페가 있는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내판을 다시 떠올려 본다. 오래된 뷔페와 볼링장이 있고, 그 사이 어딘가에 아직 오픈 준비 중이라는 빈 칸이 남아 있다. 이 골목이 앞으로 채워 나갈 자리도 아마 그런 모습일 것이다.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도, 완전히 그대로 남는 것도 아닌, 층마다 다른 시절이 겹쳐 쌓이는 방식으로.

Artwork by alleymag.

실제로 그 새로 채워지는 자리 중 하나가 동문시장 근방, 현무암을 쌓아 만든 아치 입구를 가진 가게다. 제주의 돌담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외관 안쪽으로 들어서면 물고기 모양 조명이 걸려 있고, 백 퍼센트 제주산 생선만 취급한다는 문구가 통유리에 크게 적혀 있다. 오래된 돌과 새로 단 조명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방식은, 이 골목이 지금 스스로를 채워 나가는 방식과 닮아 있다.

낡은 뷔페 옆에 감성을 입힌 가게가 들어서고, 빈 점포 옆에는 새로 문을 여는 점포가 생긴다. 칠성로는 지금 완성된 모습이 아니라, 여러 시절이 한 건물 안에서 층을 이루며 공존하는 중이다. 이 골목이 다음에 채울 층은 어떤 시절의 것일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결국 이 골목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소고기 코인을 손에 쥔 단체 손님과, 무권리로 가게를 넘겨받으려는 신규 창업자와, 여전히 불이 꺼진 채인 점포가 같은 시간에 이 거리 위에 공존한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층마다 다른 시절
칠성뷔페가 있는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내판입니다. 한 건물 안에 롤러스케이트장, 볼링장, 뷔페가 층마다 나란히 들어서 있습니다. 뷔페 로비는 단체 손님을 맞을 채비가 되어 있습니다.칠성뷔페가 있는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내판입니다. 한 건물 안에 롤러스케이트장, 볼링장, 뷔페가 층마다 나란히 들어서 있습니다. 뷔페 로비는 단체 손님을 맞을 채비가 되어 있습니다.
▲ 제주 제주시 관덕로 · 2026.07 / 사진 dullehouse · https://blog.naver.com/dullehouse/224334116139 칠성뷔페가 있는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내판입니다. 한 건물 안에 롤러스케이트장, 볼링장, 뷔페가 층마다 나란히 들어서 있습니다. 뷔페 로비는 단체 손님을 맞을 채비가 되어 있습니다.
SCENE 02 : 새로 채워지는 자리
동문시장 근방에 새로 자리 잡은 생선요리 전문점입니다. 현무암을 쌓아 만든 아치 입구와 물고기 모양 조명이, 오래된 골목에 새로 들어온 가게의 방식을 보여줍니다.동문시장 근방에 새로 자리 잡은 생선요리 전문점입니다. 현무암을 쌓아 만든 아치 입구와 물고기 모양 조명이, 오래된 골목에 새로 들어온 가게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 제주 제주시 일도일동 · 2026.09 / 사진 s2lililils2 · https://blog.naver.com/s2lililils2/224417423070 동문시장 근방에 새로 자리 잡은 생선요리 전문점입니다. 현무암을 쌓아 만든 아치 입구와 물고기 모양 조명이, 오래된 골목에 새로 들어온 가게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이 글은 2026년 이 골목을 다녀간 이들의 방문 기록과,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의 칠성로 상점가 창업캠프 관련 보도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방문 기록이 있으면 사진과 내용을 갱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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