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원도심 칠성로) 한 건물 안에 네 개의 시절이 쌓여 있다
엘리베이터 안내판 하나로 올라가면 칠성뷔페가 있고, 그 위아래로 롤러스케이트장과 볼링장이 있다. 칠성로의 지금은 이렇게 층마다 다른 시절을 얹어 놓은 모습이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2.02
- 골목
- 제주 원도심 칠성로

엘리베이터 앞에 붙은 안내판 하나가 이 골목의 지금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의 면면도 한 가지 색이 아니다. 단체 회식을 위해 예약 전화를 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골목 안쪽 작은 가게를 골라 들어가는 여행객도 있다. 오래전부터 이 동네를 지켜 온 이들과, 최근 몇 년 사이 새로 자리를 잡은 이들이 같은 보도블록 위를 걷는다.
제주시 관덕로 11길, 비버리힐이라는 이름의 건물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층과 일 층엔 시티 오브 드림스, 삼 층엔 케이팝 롤러스케이트, 사 층엔 칠성뷔페, 오 층엔 탑볼링장. 육 층은 아직 오픈 준비 중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한 건물 안에 서로 다른 시절에 유행했던 것들이 층마다 나란히 쌓여 있는 셈이다.
칠성뷔페로 들어서면 그 안은 또 다른 시절의 공기다. 큰 원형 테이블과 룸이 갖춰져 있고, 단체 손님을 받을 채비가 되어 있다. 칠성로에서 쇼핑을 실컷 하고 뷔페로 배를 채우던 시절의 동선을 그대로 옮겨 놓은 구조다.

입구에서 인원수에 맞게 계산하면 코인을 하나씩 나눠준다. 큰 코인으로는 소고기와 양갈비 스테이크를, 작은 코인으로는 구슬 아이스크림이나 뽑기 기계를 이용할 수 있다. 어른과 아이가 각자 다른 코인을 손에 쥐고 존마다 옮겨 다니는 구조는, 이 자리가 여전히 단체 회식과 가족 모임을 위해 짜인 공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같은 골목 안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빈자리를 채우려는 움직임도 있다. 최근 이 근방 부동산 매물을 소개하는 글에는 원도심 살리기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제주의 명동이라 불리던 칠성통과 관덕정 일대가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유입과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 매물 중 하나는 십 년 넘게 자리를 지켜 온 돈까스 가게다. 소개 글은 이 가게를 무권리로 승계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새로 들어올 사람이 권리금 부담 없이 십 년 노하우를 그대로 넘겨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가게가 살아남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 그 글에 함께 적혀 있다.

실제로 이 골목의 도시재생을 맡은 기관은 상점가 안의 빈 공간 열일곱 곳을 골라 새로 문을 열 사람을 찾는 창업캠프를 열었다. 낡은 건물에 감성을 입힌 카페와 편집숍이 하나둘 들어서고, 대형 프랜차이즈보다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가게가 자리를 지키는 쪽으로 조금씩 무게가 옮겨 가고 있다는 것이 이 골목을 지켜본 이들의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칠성로를 그대로 걸어 보면, 네 곳 중 한 곳은 아직 비어 있다. 불 켜진 가게와 셔터 내린 가게가 나란히 붙어 있는 풍경이 드물지 않다. 도시재생의 서사와 빈 점포의 숫자는, 같은 골목 안에서 동시에 사실이다.
공실과 창업은 이 골목에서 비슷한 속도로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도시재생 창업캠프가 열일곱 개의 빈 공간을 채우려 애쓰는 동안에도, 다른 자리에서는 또 새로운 공실이 생겨난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빠른지는 아직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칠성뷔페가 있는 건물의 엘리베이터 안내판을 다시 떠올려 본다. 오래된 뷔페와 볼링장이 있고, 그 사이 어딘가에 아직 오픈 준비 중이라는 빈 칸이 남아 있다. 이 골목이 앞으로 채워 나갈 자리도 아마 그런 모습일 것이다.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도, 완전히 그대로 남는 것도 아닌, 층마다 다른 시절이 겹쳐 쌓이는 방식으로.

실제로 그 새로 채워지는 자리 중 하나가 동문시장 근방, 현무암을 쌓아 만든 아치 입구를 가진 가게다. 제주의 돌담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외관 안쪽으로 들어서면 물고기 모양 조명이 걸려 있고, 백 퍼센트 제주산 생선만 취급한다는 문구가 통유리에 크게 적혀 있다. 오래된 돌과 새로 단 조명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방식은, 이 골목이 지금 스스로를 채워 나가는 방식과 닮아 있다.
낡은 뷔페 옆에 감성을 입힌 가게가 들어서고, 빈 점포 옆에는 새로 문을 여는 점포가 생긴다. 칠성로는 지금 완성된 모습이 아니라, 여러 시절이 한 건물 안에서 층을 이루며 공존하는 중이다. 이 골목이 다음에 채울 층은 어떤 시절의 것일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결국 이 골목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소고기 코인을 손에 쥔 단체 손님과, 무권리로 가게를 넘겨받으려는 신규 창업자와, 여전히 불이 꺼진 채인 점포가 같은 시간에 이 거리 위에 공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