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원도심 칠성로) 창 안과 밖, 두 개의 칠성로
소품 가게 통유리 너머로 낮의 골목이 내려다보이고, 몇 골목 건너에는 밤에만 문을 여는 나무 문이 있다. 같은 이름의 거리인데, 시간마다 다른 얼굴을 한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2.15
- 골목
- 제주 원도심 칠성로

같은 골목인데, 창 안에서 보는 풍경과 창 밖에서 보는 풍경이 다르다.
동문시장 어귀에서 몇 걸음만 들어서면 공기가 달라진다. 번화한 시장통 바로 곁인데도, 골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면 조용한 정원과 한옥의 결이 펼쳐진다. 대로에서는 묻혀 있던 소리들이 이 안에서는 하나씩 따로 들린다.
이 골목은 동문시장에서 걸어서 몇 분이면 닿는 자리라, 여행 동선에 넣기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지붕이 있는 재래시장과 가까워서, 비 오는 날의 일정으로도 딱 맞는다는 이야기도 함께 따라온다. 날이 궂으면 시장 지붕 아래로 몸을 피했다가, 비가 잦아들면 다시 이 골목으로 넘어오면 된다.
소품 가게 이 층 창가에 서면 그 반대편 풍경이 보인다. 블라인드 틈으로 내려다보이는 것은 광장과 가로수, 그리고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의 정수리다. 창 안쪽에는 얼룩무늬가 있는 그릇과 컵이 줄지어 놓여 있고, 그 옆에서 화분 하나가 볕을 받고 있다. 안과 밖이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이 골목은 걷다 보면 방향을 잃기 쉽다. 동문시장 주변으로 골목이 여러 갈래로 뻗어 있고, 처음 온 사람이라면 주차할 자리를 찾는 것부터가 일이다. 그래서 다녀간 이들은 근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걸어서 돌아보라고 권한다. 차를 두고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골목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가까운 건물 안에서는 다른 냄새가 난다. 커피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원두를 고르고 향을 맡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대표와 직원이 손님 한 명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날 어울리는 한 잔을 찾아 주고, 산미가 있는지 베리 향이 도는지를 두고 짧은 대화가 오간다. 같은 골목 안인데도, 몇 걸음 차이로 커피 냄새가 났다가 사라진다.
낮의 골목은 고즈넉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다녀간 이들은 이 근방을 두고 한적하고 고즈넉한 골목길이라 적어 두었고, 냉소바와 돈까스를 파는 어느 식당 앞에서는 칠성로 특유의 그 정취와 잘 어울리는 소박한 외관이라 적었다. 소박하다는 말이 이 골목에 자주 붙는 것은, 화려함보다 낡음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시간, 골목 한쪽의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는 다른 하루가 흘러간다. 어르신들의 하루도 아침부터 알차게 시작되고, 손끝으로 작은 조각을 맞추다 보면 이게 뭐가 될까 하는 기대감에 눈이 반짝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 골목 바로 옆에서, 누군가는 그저 오늘 하루를 살아 내고 있다.
여행자의 걸음과 생활자의 걸음은 같은 보도블록을 밟으면서도 속도가 다르다. 한쪽은 사진 한 장을 위해 잠시 멈춰 서고, 다른 한쪽은 매일 다니는 길이라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간다. 이 골목은 그 두 속도를 동시에 품고 있다.
저녁이 가까워지면 작은 식당 안쪽 풍경도 바뀐다. 테이블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가게에서는 간격이 적당하면서도 좁게 느껴진다는 말이 나온다. 그럼에도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고, 벽면 어딘가에서는 주인의 손길이 느껴진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주말에는 저녁 식사도 가능한 곳이라, 고즈넉한 골목 정취와 소박한 외관이 그대로 이어진다.

해가 지고 나서
해가 지면 골목의 표정이 한 번 더 바뀐다. 나무로 마감한 벽에 이자카야라는 글자가 밝게 켜지고, 그 앞에는 배달용 오토바이 한 대가 세워져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벽면 가득한 조명 아래 술병들이 줄지어 빛난다.
혼자 온 사람도 어색하지 않은 자리라는 말이 이 술집을 다녀간 이들 사이에서 반복된다. 과하지 않고 깔끔하게 이어진 인테리어 속에서, 여행 중 혼자 온 손님들끼리 옆자리에서 말을 트고 칵테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낮 동안 조용했던 골목이, 밤이 되면 오히려 말이 늘어나는 자리로 바뀐다.
누군가는 낮의 창가 자리만 기억하고 돌아가고, 누군가는 밤의 문 앞 오토바이만 기억하고 돌아간다. 같은 골목을 걷고도 서로 다른 장면을 안고 떠나는 셈이다.
낮의 칠성로는 창 너머로 내다보는 골목이고, 밤의 칠성로는 문을 열고 들어가 말을 트는 골목이다. 하루 안에 이렇게 다른 두 개의 얼굴을 가진 거리를, 우리는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