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리단길) 이름을 빌려온 골목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은 이 자리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이태원의 골목에서 건너온 이름이 신라 고분 곁에 내려앉기까지, 이 골목이 밟아 온 순서가 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16
- 골목
- 경주 황리단길

황리단길은 경주시 황남동과 사정동에 걸쳐, 내남사거리에서 황남초등학교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그런데 이 이름은 이 골목이 지은 것이 아니다. 신라 고분 곁에서 나고 자란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지역명 '황남동'과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의 뒷글자를 이어 붙여 만든 합성어다.
그 경리단길이라는 이름도 따지고 보면 신라나 조선과는 무관하다. 1969년부터 그 자리에 있던 육군중앙경리단, 지금의 국군재정관리단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군의 살림을 맡던 기관 하나가 남긴 이름이, 훗날 전국 여러 동네의 별명으로 번져나갈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태원의 그 골목이 카페 거리로 바뀐 것도 그리 오래전 일은 아니다. 임대료가 오르면서 밀려난 소상인들이 옆 골목으로 옮겨 붙기 시작한 것이 대략 2011년에서 2012년 사이였다. 황남동이 비슷한 변화를 겪은 것은 그로부터 삼사 년 뒤, 2014년에서 2016년 무렵이다. 서울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셈이다.

이름이 전국에 알려진 계기도 이 골목 스스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2017년 한 지역 신문이 이곳을 소개하는 기사를 냈고, 그 기사를 기점으로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이 여행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알려지는 순서마저 누군가의 손을 거친 셈이다.
'○리단길'이라는 이름을 쓰는 골목은 황남동 하나가 아니다. 경리단길을 원본으로 2016년에서 2017년 사이 전국에 퍼진 이 작명법을 따라간 자리가, 2021년 한국관광공사가 조사했을 때 이미 서른세 곳이었다.
황리단길이 그 흐름을 처음 만든 것은 아니다. 순서로 보면 경리단길이 먼저고, 황리단길은 그 이름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옮겨와 쓰기 시작한 초기 추종 사례에 가깝다. 다만 그 뒤를 따르면서도 이 골목은 신라 고분이라는 이 동네만의 유산을 이름 곁에 나란히 두었고, 그렇게 다른 '-리단길'과는 조금 다른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빌린 이름 앞에 있던 것
이름을 빌리기 전, 이 동네에는 이미 다른 시간이 쌓여 있었다. 1960~70년대의 황남동은 낮은 한옥과 점집, 작은 가게들이 모인 조용한 주거지였다. 카페가 들어서기 한참 전부터 사람이 살아가던 자리였다는 뜻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대릉원 고분과 고분 사이의 빈 공간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 무덤과 무덤 사이에 살림을 차렸다는 것이 지금 생각으로는 낯설게 들리지만, 그것이 이 동네가 오래도록 이어져 온 방식이었다. 지금처럼 정비된 모습을 갖춘 것은 그보다 한참 뒤, 현대에 들어서 이뤄진 일이다.
관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
황리단길의 초기 변화를 이끈 것은 지자체의 계획도, 대기업의 투자도 아니었다. 이 동네에 남아 있던 한옥에 눈을 돌린 지역 청년들이 하나둘 가게를 열면서 시작됐다. 관 주도가 아닌 자발적인 움직임이었다는 점에서, 이 골목은 이후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로도 자주 언급된다.
낡은 한옥을 허물고 새 건물을 올리는 대신, 처마와 기와는 그대로 두고 안쪽만 고쳐 가게를 들였다. 그 선택 하나가 지금 황리단길을 다른 '-리단길'과 구분 짓는 지점이다. 카페 거리라는 틀은 빌려왔어도, 그 틀을 채운 재료는 이 동네에 먼저 있던 한옥이었다.

그렇게 한옥 처마 아래 새로 걸린 간판을 보면, 이 골목이 두 개의 시간을 동시에 걷고 있다는 게 눈에 들어온다. 기와지붕은 옛 건축이고, 그 아래 걸린 조명과 메뉴판은 이번 주에 새로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도 가짜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 골목을 낯설고도 편안하게 만든다.
이름보다 오래된 배경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을 걷어내고 나면, 그 자리에는 처음부터 신라가 있었다. 대릉원은 이 일대에 자리한 신라시대 고분군으로, 나지막한 봉분 스물세 기가 모여 있다. 카페 거리가 생기기 훨씬 오래전부터 이미 거기 있던 풍경이다.
해가 지면 사람들의 발걸음은 대개 이 고분 쪽으로, 또 첨성대 쪽으로 옮겨간다. 낮 동안 간판과 메뉴를 보며 걷던 걸음이, 저녁이 되면 오래된 능선 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름은 이태원에서 빌려왔지만, 그 이름이 결국 가리키는 곳은 이 동네가 원래부터 갖고 있던 무덤과 첨성대다.
빌려온 이름을 쓰는 골목은 전국에 서른세 곳이 넘는다. 그 이름들 중 상당수는 카페 몇 곳이 문을 닫으면 함께 잊힐 것이다. 황리단길이 그 목록에서 조금 다르게 남는다면, 그건 이름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이름 뒤에 무덤 스물세 기와 오래된 능선이 여전히 버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