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개항로(신포동)) 새 포구라는 이름을 걸었다
신포(新浦), 새롭게 번창하는 포구라는 뜻이다. 개항과 함께 지어진 이 이름은 백 년 넘게 이 동네가 스스로를 고쳐 부르는 방식이 되어 왔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16
- 골목
- 인천 개항로(신포동)

인천은 1876년 부산, 1880년 원산에 이어 1883년에 항구를 열었다. 조선이 세 번째로 연 개항장이었다. 지금의 신포동 자리는 그 개항과 동시에 외국인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조계였다. 사람이 갑자기 몰려든 자리였고, 그 인구가 이 동네의 첫 얼굴을 만들었다.
'신포(新浦)'는 새롭게 번창하는 포구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정(新町)이라 불렸고, 해방 이후에야 지금 이름을 되찾았다. 이름을 잃었다가 되찾는 과정 자체가 이 동네의 역사를 압축한다.
개항이라는 사건은 이 동네에 사람만 데려온 것이 아니었다. 전에 없던 제도와 건물, 낯선 말과 낯선 먹거리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좁은 포구 마을이었던 자리가 몇 해 사이 국적이 뒤섞인 거리로 바뀌었다. 지금 신포동을 걸을 때 마주치는 붉은 벽돌 건물들은 대개 그 짧고 급격했던 시절의 흔적이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대가 다른 건물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지금의 풍경도, 어쩌면 그 급격한 시작에서부터 예고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 포구를 먹여 살린 것은 시장이었다. 19세기 말 제물포에서 생선을 사 와 파는 상인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고, 뒤이어 채소를 파는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중국 산동성 출신 상인들이 그때껏 낯설던 서양 채소를 처음 재배해 팔았는데, 인천에 살던 일본인과 서양인들이 그 채소를 즐겨 찾으면서 시장에 국제라는 수식이 붙었다. 1929년 12월에는 해산물을 취급하는 공설시장이, 1932년 7월에는 청과물 중심의 공설시장이 잇따라 들어서며 지금 신포국제시장의 틀이 갖춰졌다. 한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 아케이드 시장은 신포동의 중심이고, 개항로와 개항장거리는 그 양옆에 붙은 곁가지에 가깝다.
붉은 벽에 새겨진 시간
개항장 골목을 걷다 보면 붉은 벽돌 창고 한 채가 눈에 띈다. 한국근대문학관이다. 1892년과 1941년에 지어져 물류창고와 김치공장으로 쓰이던 건물 네 동을 이어 붙여 2013년에 문을 열었다. 국내 최초의 공공종합문학관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건물 자체가 먼저 말을 건다. 짐을 부리던 자리가 이제는 문장을 들여다보는 자리가 됐다.

그 골목 끝에는 홍예문이 있다. 1905년 공사를 시작해 1908년에 완공됐다. 일본군 공병대가 설계와 시공을 맡았지만 조선 정부의 보조금이 더해졌고,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들이 함께 돌을 쪼았다. 화강암을 약 10미터 높이로 쌓아 올린 이 터널은 제물포 항구에서 축현역과 만석동 방면으로 물자를 옮기기 위해 뚫렸다. 한 시대가 필요에 의해 산을 깎았고, 그 구멍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골목에 다시 붙은 이름
이 골목에는 2026년 2월 새 이름이 하나 더 붙었다. 인천 중구가 신포동 개항길 일대를 제4호 골목형상점가로 지정한 것이다. 46개 점포가 걸린 2,510제곱미터 남짓한 구역이 이 이름 아래 묶였다. 전통시장 구역에 들지 못해 온누리상품권이나 지자체 지원을 받기 어려웠던 작은 가게들이, 비로소 제도 안으로 들어왔다.
골목의 쓰임도 함께 바뀌었다. 법인카드를 들고 우르르 몰려오던 점심 회식과, 취기 오른 채 2차를 찾아 헤매던 밤이 이 골목의 오래된 얼굴이었다면, 지금은 그 사이사이로 디저트 가게와 소품샵이 새로 자리를 잡는다. 옛 얼굴과 새 얼굴이 한 골목에 나란히 있다는 사실은, 이 동네가 이름을 붙였다 떼는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를 넘어 다시 묶이다
2026년 7월에는 동네를 감싸는 행정 구역 자체가 바뀌었다. 그동안 나뉘어 있던 인천 중구와 동구가 통합돼 제물포구로 출범했다. 2024년 1월에 관련 법이 만들어졌고, 그 법이 정한 날짜에 맞춰 신포동도 새 이름의 구 소속이 됐다. 중구에 속해 있던 영종과 용유 지역은 이때 따로 떨어져 나가 영종구가 됐다.
포구, 조계, 신정, 신포, 골목형상점가, 제물포구. 이 작은 동네를 불러온 이름은 백 년 넘게 계속 바뀌었다. 행정 구역의 경계가 바뀌고 상권의 이름이 바뀌는 동안에도, 골목의 좌표 자체는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자리를 오간 사람들의 국적과 옷차림과 말투만 몇 번이고 새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이름들을 나란히 늘어놓고 보면 한 가지는 변하지 않는다. 새로 온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새로 온 이름을 걸고, 또 한 번 번창해보려 한다는 것. 신포라는 두 글자에 처음부터 새겨져 있던 그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