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시장) 냄새 나던 자리에, 향기라는 이름을 걸었다
방산이라는 두 글자에는 반어가 숨어 있다. 그리고 그 반어가 시작된 자리는 과자에서 인쇄로, 인쇄에서 포장재로, 업종을 세 번 넘게 갈아타며 지금에 이르렀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14
- 골목
- 방산시장

방산시장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고 이 골목에 들어서면, 방(芳) 자가 향기를 뜻한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진다. 포장재를 실은 손수레가 지나가고, 종이 상자 더미가 처마 밑까지 쌓인 이 거리 어디에도 꽃향기는 없다. 이름과 눈앞의 풍경이 자꾸 어긋나는 느낌, 그런데 그 낯섦이야말로 이 이름이 태어난 이유다.
조선시대 이 일대는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악취로 악명이 높았다고 전한다. 그 악명을 지우고 싶었던 것인지, 사람들은 오히려 정반대의 글자를 골랐다. 향기가 날 방(芳) 자. 냄새나던 자리에 향기라는 이름을 얹는 것으로, 이 골목은 시작부터 반어법 하나를 품게 됐다. 없는 것을 이름으로 미리 불러 두는 방식, 그것이 이 거리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첫 문장이었다.
이름이 붙던 때와 실제로 시장이 들어선 때 사이에는 긴 시간의 간극이 있다. 향기로운 이름을 얻은 땅이 정말로 사람과 물건으로 채워지기까지, 이 자리는 여러 세대를 그저 흘려보내야 했다.

시장이 제 모습을 갖춘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1976년이다. 폐교한 방산국민학교 자리에 방산종합시장이 들어섰다. 광복 이후 미군이 주둔하던 시절에는 을지로6가 쪽 일부가 '양키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초기 방산시장을 채운 것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품목이었다. 1960년대의 이 골목은 통조림과 조미료, 과자류를 파는 식료품 도매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트럭이 부려 놓는 상자마다 사탕과 비스킷 냄새가 배어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 이 거리를 오가던 트럭은 설탕과 밀가루, 통조림을 실어 날랐다. 지금처럼 상자와 리본이 아니라, 사람이 먹는 것들이 이 골목의 주인이었던 시절이다.
그 풍경을 뒤바꾼 것은 6.25전쟁이었다. 전쟁을 지나며 과자 상인들의 자리가 위축되자, 그 빈틈을 인쇄업자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활자와 잉크를 다루는 손이 사탕을 세던 손을 밀어낸 셈이다.
인쇄기가 밤낮으로 돌아가고, 활자를 맞추는 손이 바빠지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사탕을 세던 저울 대신, 종이 뭉치를 세는 손저울이 가게마다 놓였다. 같은 거리, 같은 간판 자리에서 사람들이 세는 것만 완전히 바뀐 셈이다.

몇 번이고 업종을 갈아탄 거리
인쇄업이 자리 잡은 뒤에도 이 거리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국내 제지업이 발달하고 비닐 같은 합성수지 제품이 들어오면서, 방산시장은 전국의 포장재를 거래하는 큰 시장으로 몸집을 키웠다. 1980년대 말부터는 가공식품 산업이 줄어들고 그 자리에 포장재 상가가 들어서면서, 포장업이 이 골목의 주업종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종이 상자와 리본, 포장지가 쌓인 지금의 풍경은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과자에서 인쇄로, 인쇄에서 포장재로. 이 거리는 업종을 세 번 넘게 갈아타며 살아남았고, 그때마다 간판만 바꿔 단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손끝이 다루는 재료 자체가 바뀌었다.
지금도 이 거리 어딘가에서는 흰 종이 박스 하나가 완성된 포장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재단된 판지가 상자의 모양을 갖추고, 그 위에 브랜드의 이름이 인쇄되어 나온다. 대체로는 과자를 담던 상자가, 이제는 누군가의 커피나 초콜릿을 담는다.

완성된 상자 하나가 나오기까지, 종이를 고르고 재단하고 접고 인쇄하는 손은 여럿을 거친다. 이 거리에 도매 간판이 유독 촘촘히 붙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료마다, 공정마다 전문으로 하는 가게가 저마다 따로 있어서다.
지금 이 거리를 채운 것
2010년대 이후로는 또 한 번 풍경이 달라졌다. 초콜릿과 베이킹 재료를 파는 가게가 늘었고, 향초와 디퓨저를 파는 가게도 마흔 곳 남짓 모여들었다. 리본과 포장 끈, 브랜드 이름을 짜 넣은 라벨까지, 이 거리는 이제 무언가를 예쁘게 담아내는 일 전체를 도맡는다.
지금 방산시장에는 약 250개의 점포가 지류와 인쇄, 인테리어와 제과 관련 도매업을 이어가고 있다. 과자를 팔던 자리에서 인쇄를 했고, 인쇄를 하던 자리에서 포장을 시작했고, 포장을 하던 자리 옆에는 초콜릿과 향초가 들어섰다. 업종이 바뀔 때마다 이 거리를 떠난 사람도 있었겠지만, 자리 자체를 완전히 비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이 거리가 정말로 지켜온 것은 어떤 품목 하나가 아니라, 무엇이든 담아내고 감싸는 일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