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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군산 신흥동·월명동 근대문화거리) 쌀이 산처럼 쌓이던 부두였다

군산항이 문을 연 순간부터 이 동네의 주인은 몇 번이나 바뀌었고, 그 시절 세워진 건물들만 남아 지금 거리의 얼굴이 되어 있다.

글
alleymag.
발행
2026.01.15
골목
군산 신흥동·월명동 근대문화거리
쌀이 산처럼 쌓이던 부두였다
Artwork by alleymag.

신흥동과 월명동 사이, 지금 근대문화거리라 부르는 이 일대를 걷다 보면 마주치는 건물들은 대개 백 년 안팎의 나이를 하고 있다.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남은 것들이다. 왜 하필 이 골목에 이런 건물들이 남았는지는, 이 동네가 처음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따라가 보면 알 수 있다.

군산항은 1899년 5월 1일에 문을 열었다. 대한제국이 외국 배에 내준 항구 가운데 여섯 번째였다. 한 달 뒤인 6월 2일에는 지금의 영화동과 장미동, 중앙로 1가 일대 넓은 땅에 조계지가 그어졌다. 외국인이 따로 모여 살 수 있는 구역이 이 작은 항구도시 한복판에 생긴 것이다.

그 구역은 오래 비어 있지 않았다. 1907년, 이 자리에 살던 일본인은 이천구백쉰여섯 명이었다. 원래 이 땅의 주인이던 한국인은 이천구백세 명. 항구가 열린 지 팔 년 만에 두 숫자의 크기가 바뀌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으로 조계지 제도 자체가 사라졌다. 더 이상 구역을 나눌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일본은 이때부터 군산을 직접 다스리기 시작했다.

Artwork by alleymag.

조계지라는 울타리가 사라졌다고 해서 이 동네에 살던 사람들의 자리가 넓어진 것은 아니었다. 울타리 대신 통치라는 더 큰 틀이 그 자리를 대신했을 뿐이다.

쌀이 산처럼 쌓이던 자리

군산 시내에는 정미소 열 곳이 밤낮없이 돌아갔다. 부두에는 쌀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고 전한다. 1933년 한 해에만 국내에서 거둔 쌀의 53.4퍼센트가 일본으로 실려 나갔고, 이듬해인 1934년에는 군산항을 거쳐 일본으로 간 쌀이 이백만 석을 넘어섰다. 이 거리의 이름 앞에 '근대'라는 말이 붙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새로운 시절이 열려서가 아니라, 곡식을 실어 나르기 위해 다급하게 세운 시절이었다.

그 다급함을 지금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물이 있다. 구 군산세관 본관이다. 1908년, 대한제국이 독일인의 설계를 받아 벨기에에서 들여온 붉은 벽돌로 지었다. 그런데 짓고 나서 채 이 년이 지나지 않아 이 건물의 쓰임이 바뀌었다. 1910년부터 해방을 맞을 때까지, 세관은 조선에서 거둔 쌀과 곡식을 일본으로 내보내는 통로로 쓰였다. 대한제국이 세운 건물이 일제의 수탈 창구가 된 셈이다.

Artwork by alleymag.

종교와 주거로 남은 자리

1913년에는 일본 승려가 절을 하나 세웠다. 원래 이름은 금강선사였고, 지금은 동국사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군산에 살던 일본인들이 신앙을 두던 자리였다.

신흥동에도 일본인의 살림집이 남아 있다. 1925년 무렵, 일본인 히로쓰 기치사브로가 이 자리에 집을 지었다. 정확한 해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보지만, 이 시기 일본인 거주지역의 살림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지금까지 가장 잘 보여주는 건물로 꼽힌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남은 것

이 거리의 건물들이 법으로 보호받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2001년 등록문화재 제도가 생기면서 군산의 근대 건축물들도 체계적으로 관리받기 시작했다. 구 군산세관 본관은 1994년 시도기념물 제87호로 먼저 지정됐다가, 2018년에는 사적 제545호로 격이 올랐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는 월명동 일대에서 근대문화도시를 만드는 사업이 두 단계로 나뉘어 진행됐다. 낡아서 헐릴 뻔했던 자리들이 이 시간을 지나며 하나씩 남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구 군산세관 본관과 동국사, 신흥동의 일본식 가옥은 지금 한 묶음으로 불린다. 서로 다른 이유로 세워졌지만, 남은 이유는 같다. 헐리지 않고 이십 년 가까운 보존의 시간을 함께 통과했기 때문이다.

Artwork by alleymag.

그렇게 남은 건물들이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2018년에 개봉한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신흥동의 근대건축물을 그대로 배경으로 썼다. 히로쓰 가옥은 '타짜'를 비롯한 여러 영화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이제는 군산의 문화유산 관광을 대표하는 자리가 됐다.

지금 이 일대에 '근대문화거리'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은 그래서다. 새것을 자랑하는 거리가 아니라, 옛것을 잃지 않으려 애쓴 이십 년 가까운 시간이 남긴 이름이다.

구영길의 어느 골목, 오래된 가옥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카페 하나가 그 흐름 위에 앉아 있다. 안에는 이 동네의 역사적인 의미를 담은 소품과 그림이 놓여 있고, 말차로 만든 디저트가 나온다. 반려동물과 함께 들어갈 수 있고, 단체로 예약도 받는다. 백 년 전 쌀을 실어 나르던 자리에서, 지금은 사람들이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앉아 쉬어 간다.

쌀이 산처럼 쌓였던 부두는 이제 없다. 대신 그 시절 급하게 세운 벽돌 건물들이 남아, 이 거리가 왜 다른 곳과 다른 낯을 하고 있는지 말없이 알려 준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오래된 가옥의 지금
sophie_0_0b가 찍은 군산 카페 신민회의 모습입니다. 오래된 가옥의 느낌을 살린 공간에 역사적 의미를 담은 소품과 그림이 놓여 있습니다.sophie_0_0b가 찍은 군산 카페 신민회의 모습입니다. 오래된 가옥의 느낌을 살린 공간에 역사적 의미를 담은 소품과 그림이 놓여 있습니다.
▲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구영7길 55 · 2026.05 / 사진 sophie_0_0b · https://blog.naver.com/sophie_0_0b/224270991619 sophie_0_0b가 찍은 군산 카페 신민회의 모습입니다. 오래된 가옥의 느낌을 살린 공간에 역사적 의미를 담은 소품과 그림이 놓여 있습니다. 근대문화거리를 걷다 잠시 쉬어 가는 자리입니다.
SCENE 02 :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sophie_0_0b가 찍은 카페 신민회 내부입니다. 오래된 가옥의 고즈넉한 분위기 안에서 말차 디저트를 앞에 두고 쉬어 가는 사람들의 자리를 보여줍니다.sophie_0_0b가 찍은 카페 신민회 내부입니다. 오래된 가옥의 고즈넉한 분위기 안에서 말차 디저트를 앞에 두고 쉬어 가는 사람들의 자리를 보여줍니다.
▲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구영7길 55 · 2026.05 / 사진 sophie_0_0b · https://blog.naver.com/sophie_0_0b/224270991619 sophie_0_0b가 찍은 카페 신민회 내부입니다. 오래된 가옥의 고즈넉한 분위기 안에서 말차 디저트를 앞에 두고 쉬어 가는 사람들의 자리를 보여줍니다.
이 글의 연도와 사실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국가유산포털, 디지털군산문화대전, 우리역사넷 등 공개 자료로 확인된 내용만 썼다. 구 군산세관 본관은 대한제국이 1908년에 건립했고, 일제가 이를 수탈에 사용한 것은 1910년 이후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의 건립 연도는 1925년 무렵으로 전하며, 정확한 해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다. 카페 관련 서술은 2026년 방문 기록을 참고했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방문 기록이 있으면 사진과 내용을 갱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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