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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대구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벽에 그린 것은 얼굴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가수는 다섯 살에 이 골목을 떠났지만, 골목은 서른 해도 더 지나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글
alleymag.
발행
2026.01.16
골목
대구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벽에 그린 것은 얼굴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Artwork by alleymag.

1945년, 해방 직후 재일교포와 만주에서 돌아온 이주민들이 신천 제방을 따라 좌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땅히 갈 곳 없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그 좌판이 방천시장의 시작이었다.

몇 해 뒤 한국전쟁이 터지자 이 자리는 또 다른 역할을 떠안았다. 전쟁을 피해 남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이 신천 변 이 터에 몸을 뉘었고, 그렇게 방천시장은 대구의 역사적 거점으로 자리를 넓혀갔다.

1960년, 이 좌판들은 정식 등록시장이 되었다. 가장 번성했던 1960년대에는 천 개가 넘는 점포가 골목을 채웠고, 그중에서도 쌀을 팔던 싸전과 떡을 팔던 떡전이 유독 이름을 날렸다.

그로부터 몇 해 뒤인 1964년 1월 22일, 이 시장 안 번개전업사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훗날 한국 포크 음악을 대표하는 목소리가 되는 가수 김광석이다.

그가 이 골목에 머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다섯 살까지 방천시장에서 자랐고, 그 뒤로 가족이 어디로 옮겨 갔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한 사람의 유년이 이 골목에 새겨진 시간은 그렇게 짧게 끝났다.

Artwork by alleymag.

다섯 해라는 시간은 한 사람의 생애에서 아주 짧은 토막이다. 그런데도 이 골목은 그 짧은 시간 하나를 붙들고 오늘까지 그의 이름을 걸어 두고 있다.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던 셈이다.

쇠퇴와 재생 사이

시장은 그가 떠난 뒤에도 오래 활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도심이 하나둘 비기 시작했고,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재래시장을 찾는 걸음이 눈에 띄게 줄었다.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풍경은 어느 재래시장에서나 낯설지 않다. 다만 이 골목의 경우, 그 침체의 한복판에서 뜻밖의 이름 하나가 다시 불려 나왔다는 점이 다르다.

그 침체를 막기 위해 나선 것이 2010년의 전통시장 살리기 사업이었다. 2010년 6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열여덟 개 사업이 방천시장 문전성시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추진됐고, 그중 하나가 시장 옆 골목 담벼락에 그의 얼굴과 노래를 그려 넣는 일이었다.

Artwork by alleymag.

2010년 11월 20일, 신천 둔치를 따라 선 담벼락 350미터에 백여 점의 벽화가 걸렸다. 대구시 중구청과 열한 팀의 작가들이 함께 참여한 작업이었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태어났다. 같은 날, 그의 노래와 유품과 공연 영상을 모아 보여주는 김광석 스토리하우스도 문을 열었다.

골목 하나를 온통 새로 칠하는 일에는 적지 않은 손이 필요했을 것이다. 담 하나마다 붓을 든 사람이 다르고 그리는 방식도 달랐을 텐데도, 그 담들이 이어져 결국 하나의 길이 되었다. 350미터라는 길이는 천천히 걸어도 채 십 분이 걸리지 않는다. 그 짧은 구간 안에 여러 사람의 손길과 백 년 가까운 시간이 층층이 눌러 담겼다.

다시 그리기라는 이름은 정확했다. 이 담에 그려진 것은 다섯 살 아이의 얼굴이 아니라,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어진 시간이었다. 골목은 그가 살았던 자리를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새로 그려 넣은 것에 가까웠다.

이듬해인 2011년,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그 앞을 겨냥해 조성된 이 문화예술 거리는 이후 해마다 백만 명이 찾는 대구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Artwork by alleymag.

국제 대회를 앞두고 서둘러 정비된 거리라는 인상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그 서두름 속에서도 이 골목이 끝내 붙든 것은 화려한 조형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노래였다.

이 재생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두 가지 힘이 함께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나는 그의 노래를 오래 기억해 온 사람들의 마음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자체가 앞장서 이 골목을 관광지로 다듬어 낸 손길이었다. 사람의 마음과 행정의 결정이 함께 그려낸 그림인 셈이다.

그렇게 갈라진 두 골목

벽화거리가 사람을 불러 모으는 동안, 정작 그 옆 방천시장은 같은 걸음을 걷지 못했다. 벽화거리는 시장 인근의 골목으로 따로 조성되어 별개의 이름을 얻었을 뿐, 시장 자체가 그대로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두 자리는 나란히 붙어 있으면서 서로 다른 속도로 나이 들어간다.

다섯 살 아이는 이 골목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 담을 다시 그렸고, 그 그림은 지금도 채 마르지 않았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지도 위에 놓인 이름
nyh1202가 촬영한 골목 초입의 안내판입니다. 왼쪽 표지는 김광석 스토리하우스로 가는 방향을, 오른쪽 지도는 방천시장과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나란히 놓인 위치를 보여줍니다.nyh1202가 촬영한 골목 초입의 안내판입니다. 왼쪽 표지는 김광석 스토리하우스로 가는 방향을, 오른쪽 지도는 방천시장과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나란히 놓인 위치를 보여줍니다.
▲ 대구 중구 대봉동 · 2026.06 / 사진 nyh1202 · https://blog.naver.com/nyh1202/224310650750 nyh1202가 촬영한 골목 초입의 안내판입니다. 왼쪽 표지는 김광석 스토리하우스로 가는 방향을, 오른쪽 지도는 방천시장과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나란히 놓인 위치를 보여줍니다.
SCENE 02 : 다시 그려진 골목
kblifepartner1이 촬영한 김광석 스토리하우스 외관과 담벼락 벽화입니다. 무대를 닮은 건물 입구와,kblifepartner1이 촬영한 김광석 스토리하우스 외관과 담벼락 벽화입니다. 무대를 닮은 건물 입구와,
▲ 대구 중구 대봉동 · 2026.04 / 사진 kblifepartner1 · https://blog.naver.com/kblifepartner1/224238646074 kblifepartner1이 촬영한 김광석 스토리하우스 외관과 담벼락 벽화입니다. 무대를 닮은 건물 입구와, 우산을 든 인물을 그린 벽화가 이 골목이 예술로 다시 채워진 자리임을 보여줍니다.
SCENE 03 : 벽 위에 남은 얼굴과 마음
youtop344가 촬영한 벽화 골목과 방문객 칠판입니다. 벽면 가득한 그의 얼굴 옆으로, 다녀간 이들이 직접 남긴 추모와 방문 소감이 칠판 가득 적혀 있습니다.youtop344가 촬영한 벽화 골목과 방문객 칠판입니다. 벽면 가득한 그의 얼굴 옆으로, 다녀간 이들이 직접 남긴 추모와 방문 소감이 칠판 가득 적혀 있습니다.
▲ 대구 중구 대봉동 · 2026.05 / 사진 youtop344 · https://blog.naver.com/youtop344/224281371863 youtop344가 촬영한 벽화 골목과 방문객 칠판입니다. 벽면 가득한 그의 얼굴 옆으로, 다녀간 이들이 직접 남긴 추모와 방문 소감이 칠판 가득 적혀 있습니다.
역사 서술은 대구역사문화대전(방천시장·김광석 항목), 위키백과(김광석다시그리기길·방천시장·김광석 항목), 매일신문·한국일보 보도를 종합해 검증한 사실만 실었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방문 기록이 있으면 사진과 내용을 갱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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