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6 MON
스팟 데이터베이스 555 ABOUT
alleymag. 골목을 걷고, 재고,
기록하는 로컬 아카이브
기록한 골목92
발행 아티클2192
등록 스팟555
실측 업소0
기록 시작2026.09

(전주 한옥마을) 성벽이 무너진 자리에 한옥을 세웠다

전주 한옥마을은 전통이 오래 쌓여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성벽이 뜯겨나간 자리에서, 사람들이 맞서기 위해 택한 방식이 한옥이었다.

글
alleymag.
발행
2026.01.16
골목
전주 한옥마을
성벽이 무너진 자리에 한옥을 세웠다
Artwork by alleymag.

경기전의 문은 붉다. 이 문 안쪽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자리가 있고, 1410년 태종 10년에 처음 세워졌다.

그런데 이 경기전도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소학교가 이 자리 옆에 들어서면서 경기전의 규모는 크게 줄어들었다. 육백 년 넘은 자리도 그 시대를 비껴가지는 못한 셈이다.

이 문을 지나 골목 쪽으로 몇 걸음만 걸어 나오면, 풍경의 나이가 갑자기 젊어진다. 붉은 기와지붕이 빽빽하게 들어선 그 골목은 경기전보다 한참 늦게, 그것도 평화가 아니라 맞섬 속에서 생겨났다.

성벽이 사라진 자리

을사조약 이후인 1905년부터 일본인 상인들이 전주성 서쪽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1911년 성곽이 헐리자 그 상권은 성 안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지키고 있던 담이 사라진 자리로, 낯선 간판들이 걸어 들어온 셈이다.

조선인들이 택한 방법은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었다. 1910년대부터 효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모아 지었고, 그렇게 세워진 집들이 지금 이 골목의 뼈대가 됐다. 이 골목은 오래 쌓인 전통이 남긴 자리가 아니라, 한 세대가 맞서기 위해 한 번에 세운 자리에 가깝다.

Artwork by alleymag.

그렇게 지어진 집들은 전통 한옥이라 부르기도 조심스럽다. 전주 한옥마을의 건물들은 근대에 상업과 주거를 함께 담으려고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다. 처마 아래 살림집이 있고 그 옆으로 가게가 붙어 있는 구조는, 살기 위한 집이면서 동시에 벌기 위한 집이었다는 뜻이다.

지금도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한지와 부채, 옻칠을 다루는 공방들이 이어진다. 벽에는 그 손을 인정하는 명패가 붙어 있고, 그 아래로 사람들이 만든 작은 것들이 진열장 안에서 빛을 받는다. 백 년 전에도 이 골목은 만드는 사람들의 자리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니 이 골목을 걷다가 만나는 담벼락 하나, 처마 하나도 그냥 오래된 것이 아니다. 성벽이 사라진 자리를 다시 채워야 했던 사람들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새로 지을지 하나하나 결정하며 쌓아 올린 결과다. 오래돼 보이는 것과 실제로 오래된 것은 이 골목에서 종종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Artwork by alleymag.

부촌에서 낙후지로, 다시 재생 사업으로

1970년대의 이 동네는 문화연필과 백양메리야스 같은 이름난 기업들이 자리를 잡은, 전주에서 손꼽히는 부촌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서부신시가지 등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이 골목은 상대적으로 낙후되기 시작했다. 사람도 돈도 새 동네로 옮겨 갔고, 오래된 집들만 이 자리에 남았다.

그 흐름이 다시 바뀐 것은 2000년대 초, 김완주 시장이 구도심 재생 정비사업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이면서다. 노후한 건물을 철거하고 한옥을 새로 짓는 일이 이 시기에 대규모로 진행됐다. 낡아서 버려질 뻔한 골목이, 낡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다시 불려 나온 셈이다.

그렇게 되살아난 골목은 이번에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기울었다. 재생사업이 끝난 자리마다 카페와 기념품점이 들어섰고, 살던 자리였던 이 골목은 동시에 보여주는 자리로도 쓰이기 시작했다.

골목을 벗어나 몇 블록만 걸으면 전동성당이 서 있다. 도시형 한옥과는 전혀 다른 시간에서 온 벽돌 건물이 이렇게 나란히 서 있다는 사실이, 이 동네가 한 가지 시간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한옥마을은 결국 여러 시간이 겹쳐 쌓인 자리다.

Artwork by alleymag.

숫자로 늘어난 자리

지금 전주 한옥마을은 298,260제곱미터, 947개의 건물이 들어선 규모다. 그중 735채가 한옥이고 212채는 현대식 건물이다. 그리고 이 골목 안에는 여전히 2,202명이 산다. 낮이면 관광객으로 가득 차는 이 골목에서, 밤이 되면 그 숫자만큼의 사람이 자기 집 문을 잠그고 잠자리에 든다.

2010년 이 마을은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되고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그해 이곳을 찾은 사람은 300만 명이었다. 이듬해인 2011년에는 '한국관광의 으뜸명소'로 이름을 올리며 400만 명으로 늘었다. 그리고 2023년, 한 해 동안 이 골목을 지나간 사람은 1,500만 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성벽이 무너진 자리에서 사람들이 지어 올린 그 도시형 한옥이, 백 년이 조금 넘은 지금 다시 다른 무언가와 마주하고 있다. 이번에 밀려드는 것은 상인이 아니라 관광객이고, 이 골목이 거기에 맞서는 방식이 이번에도 짓는 것일지, 아니면 조용히 물러나는 것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어진을 지키는 문
yeohee__이 촬영한 경기전 정문입니다. 저녁 빛 속에 한복을 입은 사람이 참도를 걸어 들어가는 장면과, 매표소 앞 안내판이 함께 담겼습니다.yeohee__이 촬영한 경기전 정문입니다. 저녁 빛 속에 한복을 입은 사람이 참도를 걸어 들어가는 장면과, 매표소 앞 안내판이 함께 담겼습니다.
▲ 2026.08 / 사진 yeohee__ · https://blog.naver.com/yeohee__/224395249383 yeohee__이 촬영한 경기전 정문입니다. 저녁 빛 속에 한복을 입은 사람이 참도를 걸어 들어가는 장면과, 매표소 앞 안내판이 함께 담겼습니다. 이 골목보다 훨씬 오래된 자리가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SCENE 02 : 골목 안쪽, 공방이 이어지는 길
jeonjuhanok1004가 촬영한 공예명품길 안쪽 골목입니다. 좁은 돌길 양옆으로 한옥 지붕과 공방 간판이 늘어서 있고, 벽에는 전통공예명인 명패가 붙어 있습니다.jeonjuhanok1004가 촬영한 공예명품길 안쪽 골목입니다. 좁은 돌길 양옆으로 한옥 지붕과 공방 간판이 늘어서 있고, 벽에는 전통공예명인 명패가 붙어 있습니다.
▲ 2026.09 / 사진 jeonjuhanok1004 · https://blog.naver.com/jeonjuhanok1004/224412214660 jeonjuhanok1004가 촬영한 공예명품길 안쪽 골목입니다. 좁은 돌길 양옆으로 한옥 지붕과 공방 간판이 늘어서 있고, 벽에는 전통공예명인 명패가 붙어 있습니다. 지금도 만드는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는 골목입니다.
SCENE 03 : 골목 옆, 다른 시간의 건물
mill59가 촬영한 전동성당 낮 풍경입니다. 붉은 벽돌 아치와 첨탑이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습니다. 도시형 한옥과는 전혀 다른 시간대의 건축이 골목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mill59가 촬영한 전동성당 낮 풍경입니다. 붉은 벽돌 아치와 첨탑이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습니다. 도시형 한옥과는 전혀 다른 시간대의 건축이 골목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2026.09 / 사진 mill59 · https://blog.naver.com/mill59/224402966096 mill59가 촬영한 전동성당 낮 풍경입니다. 붉은 벽돌 아치와 첨탑이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습니다. 도시형 한옥과는 전혀 다른 시간대의 건축이 골목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역사 서술은 전주 한옥마을 관련 공개 자료로 확인된 사실만을 썼다. 경기전·성곽 철거·재생 정비사업 관련 연도와 규모, 관광객 수는 웹 검색으로 확인한 자료를 따랐다. 방문 정서는 2026년 9월 블로그 게시물 64건을 참고했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사실이 있으면 내용을 갱신한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방문 기록이 있으면 사진과 내용을 갱신한다.
전주한옥마을완산구전주경기전도시형한옥앨리매거진alleymag

바로가기 등록하시면, 더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