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 그 뷰에는 값이 매겨졌다
지붕을 내려다보는 자리마다 카페가 들어섰고, 오래 이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옮기고 있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30
- 골목
- 전주 한옥마을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 골목은 고요하다. 검게 반짝이는 기와가 파도처럼 이어지고, 그 사이로 좁은 골목길 하나가 조명을 받으며 곧게 뻗어 있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 이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보는 자리 자체가, 요즘 이 골목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상품이 됐다.
지붕을 파는 카페들
몇 해 전만 해도 살림집이거나 공방이었을 법한 건물들이, 지금은 저마다 '전망'을 내세운 카페로 바뀌어 있다. 창을 낼 수 있는 각도마다 테이블이 놓이고, 사람들은 커피 한 잔 값을 내고 그 창 너머로 기와지붕을 내려다본다.
이 골목의 간판은 유난히 자주 바뀐다. 몇 달 전 왔을 때 있던 가게가 다음 방문에는 다른 이름을 달고 있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다. 뷰가 좋은 자리일수록 그 교체 속도는 더 빠르다고 한다.
이 골목의 옛 상권을 이루던 태조로와 은행로 일대 임대료는 최근 크게 뛰었다. 오래 자리를 지키던 상인들 중 상당수가 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이 골목을 떠났다. 떠난 자리에는 대개 전망이 좋은 새 가게가 들어선다.

주말이면 골목 주변 도로와 공영주차장은 이미 자리가 없다. 동문상인회 주차장까지 밀려나 차를 대고 한참 걸어 들어오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이 골목이 감당해야 하는 사람의 수는, 이 골목에 마련된 자리의 크기를 이미 훌쩍 넘어선 지 오래다.
골목이 파는 것이 바뀌었다
전통과 무관한 치즈구이나 즉석식품을 파는 가게들이 이 골목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 한지를 뜨던 자리, 부채를 만들던 자리 옆으로 이런 가게들이 하나씩 끼어들 때마다, 이 골목이 원래 무엇을 만들던 곳이었는지는 조금씩 희미해진다.
한지와 부채, 옻칠을 다루던 공방들은 아직 골목 안쪽에 남아 있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 예전만큼 수월하지는 않다. 임대료가 큰길에서 멀어질수록 낮아지다 보니, 공방들이 점점 더 안쪽 골목으로 밀려 들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2023년 한 해 동안 이 골목을 지나간 사람은 1,500만 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그런데 이 골목 자체는 298,260제곱미터, 947개의 건물이 전부인 자리다. 그 좁은 땅에 그만큼의 사람이 몰려들면서, 이 골목의 원래 얼굴이었던 손의 일들은 자꾸 뒤로 밀려난다.

평일 저녁, 골목 어귀에는 일방통행 표지판과 함께 국가유산야행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 아래로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지나간다. 주말이 아니어도, 늦은 시간이 아니어도 이 골목의 인파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이 골목에 사는 원주민들은 요일과 시간을 가리지 않고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생기는 소음과 악취, 위생 문제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살림집 담장 너머로 밤늦도록 말소리가 들리고, 아침이면 전날 밤의 흔적이 골목에 남아 있는 일이 낯설지 않다.
관광객에게는 하루 지나면 잊힐 풍경이지만, 이 골목에 사는 사람에게는 매일 되풀이되는 생활이다. 같은 골목을 두고 두 쪽이 느끼는 시간의 길이가 이렇게 다르다.
큰길에서 벗어나 공예명품길 쪽으로 들어서면 아직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그런데 이 안쪽마저 언제까지 지금의 조용함을 지킬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뷰가 되는 자리는 이미 큰길에서 안쪽으로 조금씩 옮겨 오고 있다.

전망 카페 안쪽에는 노트북을 펴 놓은 사람도 있고, 창밖 지붕만 한참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는 이 골목이 커피와 함께 파는 풍경일 뿐이지만, 바로 그 창 아래 골목에서는 누군가 오늘도 짐을 정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 창 안쪽에 앉은 사람들이 보는 것과, 그 아래 골목을 실제로 사는 사람들이 겪는 것은 같은 풍경이 아니다. 한쪽은 사진 몇 장을 남기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다른 한쪽은 그 풍경 속에서 내일도 문을 열어야 한다.
뷰가 좋은 자리일수록 임대료가 높고, 임대료가 높은 자리일수록 오래 있던 사람이 버티기 어렵다. 그 셈이 이 골목에서 반복되는 동안, 원래 여기 살던 사람들이 어디로 옮겨 가고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제대로 세어보지 않았다.
이 골목은 원래 물러나지 않으려고 지어진 자리였다. 성벽이 무너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떠나는 대신 짓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지금 이 골목에서 조용히 자리를 옮기고 있는 쪽은, 정작 그 골목을 오래 지켜온 사람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