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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스팟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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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2026.09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은행이었던 자리, 영사관이었던 자리

목포 오거리 언덕을 걷다 보면 자꾸 옛 문패와 마주친다. 영사관이었다가 시청이 되고, 은행이었다가 음악당이 된 건물들이 이 골목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글
alleymag.
발행
2026.01.17
골목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은행이었던 자리, 영사관이었던 자리
Artwork by alleymag.

목포항이 문을 연 것은 1897년 7월 4일이다. 고종의 칙령으로 개항이 알려졌고, 그날부터 이 작은 포구는 다른 항구들과는 다른 속도로 몸집을 불렸다. 개항 이후 목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조선의 4대 항구이자 6대 도시로 꼽히는 근대도시로 자랐다.

그 성장의 흔적이 가장 짙게 남은 곳이 오거리다. 다섯 갈래 길이 만나는 이 언덕 일대로 외국 문물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들어왔다. 동본원사, 호남은행 목포지점, 양동교회, 일본영사관, 일본인 가옥이 잇따라 들어섰고, 그 건물들은 백 년 넘게 지난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름이 다섯 번 바뀐 건물

오거리 위쪽 언덕에 자리한 붉은 벽돌 건물은 원래 일본영사관이었다. 1900년, 지금 자리에 2층짜리 건물로 새로 지어졌다. 이후 이 건물의 문패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함께 바뀌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에는 목포 이사청,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에는 목포부청이 됐고, 해방 뒤에는 목포시청으로, 1974년부터는 목포시립도서관으로, 1990년부터는 목포문화원으로 쓰였다.

Artwork by alleymag.

지금은 2014년부터 목포근대역사관 1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영사관에서 관공서로, 관공서에서 도서관과 문화원으로, 그리고 다시 역사를 설명하는 전시실로. 이 건물은 한 번도 비어 있던 적이 없다. 이 건물은 1981년 9월 25일 사적으로 지정되어, 그때부터 따로 관리를 받아 왔다.

오거리 반대편에는 또 다른 근대건축물이 있다.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이다. 지금은 목포근대역사관 2관으로 쓰인다. 두 건물 모두 처음 지어질 때의 쓰임과 지금의 쓰임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이 골목의 오래된 벽돌들이 어떤 식으로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준다.

두 역사관 사이를 걷다 보면, 이 골목이 그저 옛 건물을 모아 놓은 곳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영사관이던 자리와 척식회사 지점이던 자리는 모두 지배의 도구로 세워졌던 건물들이다. 그 건물들이 지금은 그 시절을 설명하고 기록하는 자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이 골목을 걷는 내내 마음에 걸린다.

Artwork by alleymag.

은행이 음악당이 된 사정

오거리에서 몇 걸음만 더 가면 붉은 벽돌 건물 하나가 또 나온다.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이다. 리모델링 공사 도중 상량문이 나왔는데 거기 적힌 연도는 1926년이었다. 목포시가 펴낸 자료 일부에는 1929년으로 적혀 있어, 정확히 몇 년에 지어졌는지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말한다.

확실한 것은 이 건물이 은행 창구로 오래 쓰이다가 한동안 비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2022년 9월 23일 목포시가 이 건물을 고쳐 '목포 대중음악의 전당'으로 열었다는 사실이다. 돈을 세던 창구 자리에 지금은 스피커가 놓여 있고, 이난영을 비롯해 목포에서 나고 자란 가수들의 이야기가 벽을 채우고 있다.

근처 골목에는 동본원사 목포별관과, 일본식 목조 가옥을 고쳐 쓰는 카페도 있다. 처마의 곡선과 오래된 나무 창틀은 그대로 두고, 안에서 파는 것만 완전히 다른 시대의 것으로 바뀌었다. 겉은 백 년 전이고 속은 지금인 건물들이 이 골목에는 유난히 많다.

Artwork by alleymag.

선을 하나가 아니라 면으로 그은 이유

이 건물들이 낱개로 보존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2018년 8월 6일, 오거리를 포함한 만호동·유달동 일대가 국가등록문화재 제718호로 지정됐다. 건물 하나하나를 따로 지정하는 대신 구역 전체를 하나로 묶어 지정한, 국내 최초의 사례였다.

개항 당시 목포 각국 거류지의 총면적은 726,024제곱미터, 약 22만 평에 달했다. 그중 근대건축물이 가장 밀집한 핵심 지역만 골라 문화재로 등록했으니, 지금 우리가 걷는 오거리 골목은 그 22만 평 가운데서도 가장 진한 부분인 셈이다.

2019년부터는 목포시가 이 일대의 재생 활성화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낡은 근대건축자산을 보수하고 전시·체험·창업 공간으로 쓰게 하면서, 유달동과 만호동의 가로경관을 조금씩 정돈해 왔다. 문패가 네 번, 다섯 번 바뀌는 동안에도 벽돌은 그대로 남았다. 이 골목이 지금의 얼굴을 갖게 된 것은, 그 벽돌을 부수지 않기로 한 결정들이 백 년에 걸쳐 쌓인 결과에 가깝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언덕 위의 붉은 벽돌
and_a0412가 촬영한 목포근대역사관(구 일본영사관) 외경입니다. 오거리 언덕 위 붉은 벽돌 건물과 '근대역사문화 1번지 유달동' 표지판이 함께 보이고,and_a0412가 촬영한 목포근대역사관(구 일본영사관) 외경입니다. 오거리 언덕 위 붉은 벽돌 건물과 '근대역사문화 1번지 유달동' 표지판이 함께 보이고,
▲ 전남 목포시 영산로29번길 6 · 2026.05 / 사진 and_a0412 · https://blog.naver.com/and_a0412/224295185804 and_a0412가 촬영한 목포근대역사관(구 일본영사관) 외경입니다. 오거리 언덕 위 붉은 벽돌 건물과 '근대역사문화 1번지 유달동' 표지판이 함께 보이고, 계단 위로 올려다본 두 번째 사진에서 건물의 대칭적인 구조가 드러납니다.
SCENE 02 : 남은 자리들
setup_space가 촬영한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현 목포 대중음악의 전당) 건물과, hydeyukimi가 촬영한 동본원사 목포별관입니다.setup_space가 촬영한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현 목포 대중음악의 전당) 건물과, hydeyukimi가 촬영한 동본원사 목포별관입니다.
▲ 2026.04 / 사진 setup_space · hydeyukimi · https://blog.naver.com/setup_space/224241585593 / https://blog.naver.com/hydeyukimi/224369219366 setup_space가 촬영한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현 목포 대중음악의 전당) 건물과, hydeyukimi가 촬영한 동본원사 목포별관입니다. 오거리 인근에 남은 근대건축물들이 저마다 다른 쓰임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SCENE 03 : 새겨진 기록
and_a0412가 촬영한 현장 안내판입니다. 각각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의 개요와 구 목포 일본영사관의 연혁을 국가유산청이 정리해 세워 둔 것으로,and_a0412가 촬영한 현장 안내판입니다. 각각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의 개요와 구 목포 일본영사관의 연혁을 국가유산청이 정리해 세워 둔 것으로,
▲ 2026.05 / 사진 and_a0412 · https://blog.naver.com/and_a0412/224295185804 and_a0412가 촬영한 현장 안내판입니다. 각각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의 개요와 구 목포 일본영사관의 연혁을 국가유산청이 정리해 세워 둔 것으로, 이 글이 인용한 역사 사실의 원 출처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2026년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다녀간 이들의 방문 기록과, 웹 검색으로 확인한 역사 자료를 함께 종합했다. 건물의 정확한 건립연도처럼 자료마다 엇갈리는 부분은 그 사실을 그대로 밝혀 두었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방문 기록이 있으면 사진과 내용을 갱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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