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카메라는 언덕 아래까지는 안 온다
드라마가 다녀간 자리마다 사람이 몰린다. 그런데 오거리에서 몇 걸음만 언덕으로 올라가면, 그 붐과는 상관없는 얼굴을 한 골목이 나온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1.31
- 골목
-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최근 목포 원도심이 들썩인 것은 드라마 덕이다. 2026년 7월 31일부터 9월 12일까지 방영한 MBC 드라마 '유부녀 킬러'가 남교동 트윈스타 앞을 촬영지로 쓰면서, 방영 이후 이 일대를 찾는 촬영지 관광이 새로 늘었다. 다만 이곳은 오거리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이긴 해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근대역사문화공간 구역 안은 아니다. 같은 원도심이지만 행정동이 다르다.
근대역사문화공간 안에서 먼저 카메라가 다녀간 곳은 따로 있다. 2019년 방영된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다. 이지은과 여진구가 주연한 이 드라마는 목포근대역사관, 구 일본영사관 건물의 외관을 촬영지로 썼다. 방영 이후 20대와 30대 방문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이야기가 여러 방문 후기에 반복해서 남아 있다.

재생사업이 먼저 손댄 자리
이 붐이 갑자기 생긴 건 아니다. 목포시는 2019년부터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을 이어오며, 낡은 근대건축자산을 하나씩 고쳐 전시·체험·창업 공간으로 바꿔 왔다.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이 2022년 9월 '목포 대중음악의 전당'으로 다시 문을 연 것도 그 결과다. 일본식 목조 가옥을 고쳐 카페로 쓰는 자리도, 근대건축물 1층에 베이커리가 들어선 자리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재생사업이 손댄 자리들은 하나같이 오거리에서 가깝다. 걷기 좋게 정돈된 가로와 안내판, 주차장, 물품보관함까지 갖춰져 있다. 목포근대역사관 입구 한쪽에는 VR 헤드셋을 쓰고 즐기는 체험 프로그램 안내판도 세워져 있는데, 고종과 근대 대중음악의 주역들을 등장시켜 백 년 전 목포로 데려가겠다는 내용이다. 이 일대를 처음 찾는 사람이 오거리 근처에서 받는 인상은 꽤 말끔하고, 꽤 적극적으로 관광객을 향해 있다.

언덕 위는 다른 속도로 간다
그런데 오거리에서 몇 걸음만 더 벗어나 언덕 쪽으로 올라가면 전혀 다른 골목이 나온다. 슬레이트 지붕과 함석지붕이 층층이 이어진 유달동의 오래된 주택가다. 좁은 계단길과 담벼락 사이로 물탱크와 위성안테나가 그대로 노출돼 있고, 재생사업이 정돈한 오거리의 가로와는 확실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안내판도, 물품보관함도, VR 체험관도 이 언덕까지는 올라오지 않았다. 재생사업의 예산과 손길은 근대건축물이 몰려 있는 오거리 아래쪽에 먼저 쓰였고, 그 위쪽 주택가는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거나 애초에 사업 범위 밖일 가능성이 크다. 같은 근대역사문화공간이라는 이름 아래 두 개의 서로 다른 속도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 언덕은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지정한 구역 안에 있으면서도, 관광객의 동선과는 조금 떨어져 있다. 근대건축물을 보러 온 발걸음은 대개 오거리 아래쪽에서 머물다 돌아가고, 언덕 위쪽까지 올라오는 경우는 드물다. 재생사업과 드라마 붐이 오거리 아래쪽 건물들의 쓰임을 바꾸는 동안, 언덕 위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공간으로 남아 있다.

골목 어귀에서 만나는 안내판에는 근대건축물의 연혁이 자세히 적혀 있지만, 그 안내판이 언덕 위 주택가까지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관광의 언어가 아직 닿지 않은 자리인 셈이다. 오거리를 소개하는 글은 많아도, 그 뒤편 언덕을 소개하는 글이 드문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카메라와 관광객이 오거리 아래를 채우는 시간에도, 언덕 위에서는 빨래가 널리고 화분에 물이 주어진다. 붉은 벽돌 건물의 용도가 두 번, 세 번 바뀌는 동안 언덕의 집들은 애초에 바뀔 용도가 따로 없었다. 그 사실이 이 골목을 한 번 더 다르게 보게 만든다.
드라마 촬영지 관광이 다음에는 어느 골목으로 옮겨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카메라가 어디를 비추든 이 언덕의 계단은 여전히 같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닳아 갈 것이라는 점이다. 오거리의 시간과 언덕의 시간은 같은 골목 안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