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지붕과 지붕 사이, 계단 하나
오거리에서 언덕 쪽으로 방향을 틀면 걸음의 리듬이 달라진다. 이 골목은 걷는 골목이 아니라 오르는 골목이다.
- 글
- alleymag.
- 발행
- 2026.02.14
- 골목
-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오거리 안내판 앞에서 언덕 쪽으로 방향을 틀면 길이 좁아지기 시작한다. 평평하던 바닥이 어느 순간부터 계단으로 바뀌고,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엔 빠듯한 폭이 이어진다. 유달동의 골목은 걷는 골목이 아니라 오르는 골목이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색이 다르다. 오래 볕을 받은 시멘트벽은 흰빛이 바래 얼룩덜룩하고, 그 옆으로 누군가 나무 한 그루를 그려 넣은 담장은 아직 선명한 하늘색이다. 집집마다 문 앞에 놓인 화분과 고무통, 종이상자가 계단 폭만큼 비집고 나와 있다.
지붕이 만드는 두 번째 길
고개를 들면 또 다른 길이 보인다. 초록과 주황, 파란 함석지붕이 서로 다른 각도로 이어지며 산 쪽으로 층층이 올라간다. 지붕과 지붕 사이의 좁은 틈으로 전깃줄이 어지럽게 지나가고, 그 위로 물탱크와 위성안테나가 삐죽 솟아 있다. 골목이 끝나는 자리마다 지붕이 다시 시작된다.

공기에서도 냄새가 겹친다. 낮은 담장을 넘어오는 된장 끓는 냄새와, 바람을 타고 올라오는 바다 냄새가 한 골목 안에서 뒤섞인다. 어느 냄새가 먼저인지는 계단을 오르는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할 것이다.
좁은 계단을 오르는 동안 숨이 조금씩 가빠진다. 중간중간 놓인 철제 난간을 붙잡고 숨을 고르면, 그제야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방금 지나온 골목이 아래로 까마득히 멀어져 있고, 그 너머로 바다와 항구가 펼쳐진다.
이 언덕에서는 소리도 다르게 들린다. 아래쪽 오거리의 차 소리는 거의 닿지 않고, 대신 빨래 너는 소리와 문 여닫는 소리, 멀리서 오는 뱃고동 소리가 섞여 든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오거리와는 완전히 다른 시간이 이 골목 위쪽에는 흐른다.

낮 시간, 사람이 뜸한 골목에서는 그림자의 각도로 시간을 가늠하게 된다. 담장의 그늘이 계단 몇 칸을 덮었는지를 보면 대략 몇 시쯤인지 짐작이 간다. 시계를 보지 않고도 이 골목은 스스로 시간을 알려주는 셈이다.
오래 산 사람들의 눈금
이 언덕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어느 계단이 미끄러운지, 어느 담장 아래 그늘이 가장 먼저 지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는 사진 찍기 좋은 골목이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에게는 매일 오르내리는 생활의 동선이다.
어느 집 대문 앞에는 화분이 층층이 놓여 있고, 어느 담장에는 떼어낸 자리 없이 오래된 문패가 그대로 붙어 있다. 새로 바른 페인트와 낡은 시멘트가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인다. 이 골목이 한꺼번에 정비된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그런 사소한 흔적들이 말해 준다.

지붕 위로 해가 낮게 걸리는 시간이 되면, 함석지붕들이 저마다 다른 색으로 반짝인다. 초록 지붕은 짙어지고 주황 지붕은 더 붉어진다. 그 빛이 오거리 아래 붉은 벽돌 건물들에도 똑같이 내려앉지만, 이 언덕 위에서 보는 노을은 유리창이 아니라 함석 위로 떨어진다는 점에서 다르다.
계단을 다 오르고 나면 골목은 거짓말처럼 넓어진다. 시야가 트이고, 방금까지 걸어온 좁은 길들이 지도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오거리에서 시작한 걸음이 결국 이 언덕 위에서 끝난다는 사실을, 처음 이 골목에 들어설 때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다시 계단을 내려가는 길은 오를 때보다 짧게 느껴진다. 오거리에 가까워질수록 차 소리가 다시 커지고, 언덕에서 들리던 소리들은 하나씩 뒤로 물러난다. 그 경계를 다시 넘는 순간, 이 골목이 관광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동네였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