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6 MON
스팟 데이터베이스 555 ABOUT
alleymag. 골목을 걷고, 재고,
기록하는 로컬 아카이브
기록한 골목92
발행 아티클2192
등록 스팟555
실측 업소0
기록 시작2026.09

(통영 동피랑벽화마을) 무너뜨리는 대신 칠하기로 했다

통영 중앙시장 뒷산의 낡은 동네는 한때 지도 위에서 지워질 계획이었다. 그 언덕을 지킨 것은 행정이 아니라 벽에 칠해진 물감이었다.

글
alleymag.
발행
2026.01.17
골목
통영 동피랑벽화마을
무너뜨리는 대신 칠하기로 했다
Artwork by alleymag.

통영 중앙시장 뒤로 난 오르막을 오르면 낡은 산동네 하나가 나온다. 이 마을은 한때 지도 위에서 지워질 계획이었다.

동피랑이라는 이름부터가 이 마을의 지형을 그대로 옮긴 말이다. 동쪽을 뜻하는 '동'에 벼랑과 비탈을 가리키는 통영 사투리 '비랑'이 붙었다. 마을이 앉은 언덕 자체가 이름이 된 셈이다.

이 언덕 꼭대기에는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의 동포루가 있었다. 동쪽을 지키던 포루가 서 있던 자리에,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곳이 지금의 동피랑이다.

2000년대 중반, 통영시는 이 낡은 산동네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동포루를 복원해 공원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오래된 집들이 헐리고 그 자리에 새 정자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Artwork by alleymag.

칠하기로 한 사람들

그런데 2007년 10월, 시민단체 푸른통영21이 다른 제안을 내놓았다. 헐기 전에 벽에 그림을 그려보자는 것이었다. '동피랑 색칠하기 전국벽화공모전'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공모전에 전국 미술대학 재학생과 개인 등 열여덟 팀이 모였고, 낡은 담벼락마다 붓이 지나갔다.

칠이 마르기도 전에 입소문이 났다.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 하나둘 늘었고, 늘어난 발걸음은 이 마을을 두고 보자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결국 통영시는 철거 방침을 접었다. 언덕 꼭대기의 집 세 채만 동포루 복원을 위해 헐렸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았다.

Artwork by alleymag.

지우려던 마을 전체에서 남은 것은 세 채를 뺀 나머지 전부였다. 벽에 칠한 물감 몇 통이, 행정 계획 하나를 통째로 뒤로 물린 셈이다.

골목 입구에는 마을 전체를 그린 지도 안내판이 서 있다. 어디서부터 걸음을 시작해도 결국 언덕 꼭대기 동포루 근처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있는 길이라, 처음 온 사람도 크게 헤매지 않는다. 안내판 옆으로는 '몽마르다 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샛길도 따로 갈라져 나간다.

지금도 덧그려지는 그림

지금도 동피랑의 벽화는 고정된 그림이 아니다. 공모전과 축제를 통해 낡은 그림 위에 새 그림이 계속 덧그려지고, 골목을 도는 사람들은 지난번과 다른 벽을 마주친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전혀 다른 장면이 나타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Artwork by alleymag.

철거를 면한 골목 꼭대기에는 결국 동포루가 복원되어 서 있다. 성벽을 따라 걸으면, 마을을 지키던 자리가 지금은 마을을 내려다보는 자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덕을 다 오르면 파란 바다와 크고 작은 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좁은 골목을 헐지 않고 색을 입히기로 한 그 오래된 결정이 지켜낸 것은, 어쩌면 이 풍경을 오르는 걸음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 언덕을 오르는 사람 대부분은 이 동네가 한때 통째로 사라질 뻔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벽화 사진만 찍고 내려간다. 그래도 골목 어딘가에는 그 사연을 짐작하게 하는 흔적이 남아 있다. 새로 칠한 벽 옆에, 색이 바래도 지우지 않고 남겨 둔 오래된 벽화 한 자락 같은 것들이다.

FIELD PHOTOS : 현장에서 모은 사진
SCENE 01 : 언덕이 시작되는 자리
동피랑벽화마을 공식 안내판과 지도, 그리고 '안녕, 동피랑' 인사말이 적힌 초입 벽화입니다. 벽화 축제 현수막도 함께 걸려 있어,동피랑벽화마을 공식 안내판과 지도, 그리고 '안녕, 동피랑' 인사말이 적힌 초입 벽화입니다. 벽화 축제 현수막도 함께 걸려 있어,
▲ 경남 통영시 동피랑1길 · 2026.09 / 사진 zlzlgkgk3 · https://blog.naver.com/zlzlgkgk3/224417939324 동피랑벽화마을 공식 안내판과 지도, 그리고 '안녕, 동피랑' 인사말이 적힌 초입 벽화입니다. 벽화 축제 현수막도 함께 걸려 있어, 이 마을이 지금도 벽화를 새로 그리며 스스로를 갱신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SCENE 02 : 헐리지 않은 지붕들
언덕을 따라 색색으로 칠해진 집들의 옆모습과, 마을 꼭대기에 복원된 동포루의 성벽입니다. 철거 대신 남기로 한 지붕들과,언덕을 따라 색색으로 칠해진 집들의 옆모습과, 마을 꼭대기에 복원된 동포루의 성벽입니다. 철거 대신 남기로 한 지붕들과,
▲ 경남 통영시 동피랑1길 · 2026.07 / 사진 dearjin81 · https://blog.naver.com/dearjin81/224347933789 언덕을 따라 색색으로 칠해진 집들의 옆모습과, 마을 꼭대기에 복원된 동포루의 성벽입니다. 철거 대신 남기로 한 지붕들과, 애초에 이 자리에 있었던 포루가 한 골목 안에 함께 있습니다.
SCENE 03 : 오르막 끝의 바다
'소소한 골목길 동피랑' 벽화와 벽화 축제 현수막, 그리고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통영항과 바다입니다. 골목을 다 오른 사람만 만나는 풍경입니다.'소소한 골목길 동피랑' 벽화와 벽화 축제 현수막, 그리고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통영항과 바다입니다. 골목을 다 오른 사람만 만나는 풍경입니다.
▲ 경남 통영시 동피랑1길 · 2026.09 / 사진 hello_7653 · https://blog.naver.com/hello_7653/224421267131 '소소한 골목길 동피랑' 벽화와 벽화 축제 현수막, 그리고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통영항과 바다입니다. 골목을 다 오른 사람만 만나는 풍경입니다.
이 글의 역사 서술은 2026년 9월 웹 검색으로 확인한 사실만 담았다. 방문 기록은 2026년 여름부터 가을 사이 이 마을을 다녀간 이들의 기록 48건을 종합했다. 발행 이후 새로 확인되는 방문 기록이 있으면 사진과 내용을 갱신한다.
#통영#동피랑#벽화마을#경남#동포루앨리매거진alleymag

바로가기 등록하시면, 더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